지난해 승민 씨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 날씨가 정말 맑고 나무가 푸르러서 슬프고 서러웠던, 그래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을 떠난 승민 씨가 맑은 날씨를 좋아했다고 하네요. 저처럼 푸른 하늘과 녹색의 자연, 그걸 바라보고 걷는 즐거움을 좋아하고 감사해 하고 아마도 더 간절히 그리워했겠죠.
올 봄에 잘 싸우고 있다고, 동지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승민 씨 집 근처에서 몇 동지들과 같이 만났어요. 비바람이 불던 날씨가 밥 먹고 나오니 쨍 하고 개어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춰, 같이 막 신기해 했었죠.
승민 씨가 늘 산책하던 공원에서 나란히 걸었던 시간,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우스운 얘기를 나누고 웃고 떠들었던 시간. 승민 씨와 마지막으로 나눈 행복한 추억이 됐습니다.
승민 씨가 얼마나 병마와 잘 싸우고 있는지 얘기를 들으며, 저는 승민 씨가 지금껏 부조리한 세상과 깡다구 있게 싸웠듯 어쩌면 싸워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주기를 간절히 빌어 봤습니다.
그러겠다는 뜻인 듯 환히 웃으며 브이 자를 그려 보이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제게 승민씨는 늘 환한 미소로 기억되는 동지입니다. 가깝게 활동한 적이 없는데도 친밀한 느낌을 주는 동지였고요.
아마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선택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을 제가 존경하고 그녀를 신뢰했기 때문일 겁니다. 학창 시절에 전교조 해직 교사를 떠나 보낸 것 같은 비슷한 경험을 한 동갑내기여서일 수도 있고요. 승민 씨 특유의 싹싹하고 명랑한 성격을 좋아해서일 수도, 오랜만에 봐도 웃으며 편하게 다가와 주던 다정한 동지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혁명적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죽음마저 의연하게 맞을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사회주의자로 살아가고 싶은 여러 이유 가운데 또 중요한 이유 하나를 덧붙입니다.
승민 씨에게 동지들이 가족 같았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눈물을 쏟았습니다. 많은 동지들에게 승민 씨가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저도 그녀가 좋아했다는 맑은 날씨에 그녀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많이 슬프겠지만요.
※ 이승민 동지를 기억하는 여러분들의 추모의 글과 사진을 신문사(wspaper@ws.or.kr)로 보내 주세요. 함께 모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