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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노동자·청년들이 보내는 이승민 동지 추모의 글

아래 글은 노동자연대 울산 지회 회원들의 추모 글을 모은 것이다.

이승민 동지의 모습은 지금도 제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996년 김영삼 ‘문민’ 정부 때, 국제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은 반합(반만 합법)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서울 모 대학에서 모임을 하고 뒤풀이에서 인사를 나눴는데, 서로 이전에 만났던 동지처럼 껴안을 정도로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1992년 초 탄압(비합법) 받기 전, 비슷한 시기에 가입했던 거였어요. 그 당시 중학생이 조직에 가입했다고 들었을 때, 저는 ‘우리 정치가 참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동지 한 번 만나길 기대했는데, 그 모임에서 만났으니까 정말 기뻤죠. 이승민 동지도 제 얘기 많이 들었고 꼭 만나길 원했다고 말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18년 동안 매년 맑시즘 때 이승민 동지를 볼 때마다 대견하고 뿌듯했는데, 올해는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정동석(현대차 노동자)

제가 기억하는 이승민 동지는 언제나 큰 기복 없이 혁명적 활동을 해 나가는 굳건한 혁명가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활동가들이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압력에 흔들리기 일쑤였는데 말입니다. 저는 이승민 동지가 활동에서 잠시라도 멀어졌다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습니다.

수년 전 저는 잠시 이승민 동지와 같은 기구에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 처리가 매우 꼼꼼해서, 항상 덜렁대며 실수를 남발하던 저와 대비되는 동지였습니다. 그런 그가 몇 달 전 저를 만나 환하게 웃으며 “우리 지태가 많이 달라졌어”하고 칭찬(?)을 했고, 저는 제 과거를 부정하며 티격태격했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웃으며 장난을 친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울산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이승민 동지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훌륭하게 번역한 책들을 읽으며 그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몇 개월 전 그는 제게 번역 작업의 고통을 생생하게 말해줬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철의 규율’을 실천하며, 책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승민 동지의 경험담은 평소 나태함을 고민하고 있던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이승민 동지의 고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함께 활동하는 한 현대중공업 회원은 이승민 동지가 번역한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을 읽고, 무릎을 탁 치며 “이건 내 얘기인데?”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이승민 동지의 작업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동지가 보여 준 규율과 헌신, 일관성을 가슴 깊이 새기고, 동지처럼 계급투쟁의 발전에 도움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지태

이 더러운 체제가 소중한 동지를 병들게 만들었고 우리 곁을 떠나게 만들었네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서울에 갔을 때 찾아 뵙지 못한 것이 큰 후회로 남습니다.

이승민 동지가 평생을 바쳐 이룩하려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함께하며 그녀를 기억하겠습니다.

권준모(현대중공업 노동자)

삼가 명복을 빕니다. 고인 이승민 동지!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살아온 과정을 읽어보니 왠지 뜨거운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혁명가 이승민 동지”!

김성수(현대차 노동자)

한 번은 꼭 정말 뵙고 싶었는데, 주어진 시간이 이렇게 짧을지 몰랐습니다.

여러 동지들에게 얘기로만 들었던 꼭 뵙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김경택(현대중공업 노동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불꽃같은 삶을 산 동지네요.

가슴이 저립니다.

김미경(전교조 교사)

이승민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김정구(현대중공업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