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고 당차던 이승민 동지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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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 속 환히 웃는 이승민 동지를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넬 것 같습니다. 아직 그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승민 동지가 우리와 작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서,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이승민 동지를 아끼고, 좋아하고 존경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곁에 있을 때 이런 얘기를 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마음이 더 아픕니다.
이승민 동지를 생각하면, 꼼꼼하고 규율 있는 유쾌한 조직자로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와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날카로웠지만 자상하게 상대를 헤아릴 줄 아는 활동가였습니다. 그와의 토론은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2006년 저는 고려대 당국의 운동 탄압으로 출교를 당해 대학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이승민 동지는 같은 지역 당원들을 조직해 지지 방문을 와 줬습니다. 주말을 기꺼이 내어 맛있는 음식도 준비해 왔습니다. 천막 앞에서 반갑게 인사했던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합니다.
사실 그때 저를 비롯한 고려대 출교생들은 학교 당국의 탄압과 운동 내 논쟁에 다소 지쳐 있었고 수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투쟁이 고립될까 봐 못내 불안함을 느끼고도, 다른 정치 경향 활동가들을 농담 소재로 삼아 희화화하면서 그런 불안이 없는 양 굴기도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우리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착각하며 말입니다. 연대 투쟁 건설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가져선 안 되는 태도였습니다.
천막에서 대화하다가 이 점을 포착한 이승민 동지는 진지한 태도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출교생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이후 투쟁 건설에서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투쟁 초기에 이런 태도를 고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번 그의 기여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승민 동지는 제가 2012년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 경선에 출마했을 때도 함께했습니다. 선거운동을 다니느라 같이 붙어 있지는 못했지만 그녀 특유의 꼼꼼함이 있었기에 선거 운동이 매끄럽게 이뤄졌을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에 참가하려고 제주도로 내려갈 때 비행기 티켓 구입을 비롯해 여러 실무 준비를 맡아 준 것도 이승민 동지였습니다.
무엇보다 몇해 전 노동자연대 서울 중부지회에서 함께 협력간사로 활동한 경험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는 사상 토론의 주제와 읽을거리를 고르는 데 여러 기여를 했습니다. 토론 주제에 대해 늘 성실히 탐구하고, 질문을 던지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런 기여가 여러 회원들에게 정치적 자극이 됐을 것입니다. 뒤풀이 조직에도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일하면 늘 안심이었습니다.
맑시즘을 조직하는 데서 그녀가 한 기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저는 함께 맑시즘 사회자들을 조직하며 그녀에게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사회 매뉴얼을 손볼 때 그녀는 사회자가 토론회를 이끄는 조직자로서 청중토론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명료하게 표현하도록 꼼꼼히 교정을 봐 줬습니다. 지난해 평가서를 다시 펼치며 그해 맑시즘 사회에서 반영할 점을 알려 주기도 했습니다. 폐막 토론 사회자로 활약한 모습을 기억하는 동지들도 많을 것입니다.
웨딩드레스에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을 달고서 활짝 웃으며 자랑스레 보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제 생일이라며 책상에 케이크를 놓고 가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만났을 때, 미처 끝내지 못한 번역을 걱정하던 철저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런 이승민 동지와 더는 토론하고 활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 자신을 혁명적 사회주의자로 기억해 달라고 한 말이 가슴을 칩니다. 그는 토론과 논쟁을 주저하지 않았고, 신문 판매에 앞장 섰습니다. 집회 참가와 투쟁 지원 활동, 각종 조직 활동에도 빠짐 없이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그가 남긴 번역서들이 여러 활동가에게 읽히며 운동의 전진에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 대부분을 사회주의 활동에 헌신한 이승민 동지가 밟아 온 그 길을 저를 포함해 더 많은 동지들이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 이승민 동지를 기억하는 여러분들의 추모의 글과 사진을 신문사(wspaper@ws.or.kr)로 보내 주세요. 함께 모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