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민,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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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승민을 처음 본 건 어느 회원 토론회에서였다. 청중 토론 시간에 당차게 발언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는 학내 활동을 주로 할 때였고, 지역 회원 중에 저런 멋있는 여성 동지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 2년 정도인가 승민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니 사소하지만 승민과 마주 보며 웃음 짓던 기억이 주로 생각난다. 언젠가 사무실에서 같이 밤을 새면서 일한 적이 있다. 사무실에는 간이침대가 하나 있었다. 새벽이 되자 둘 다 피곤해졌고 우리는
때로 맞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는데
나는 2016년 초가을부터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2018년 늦여름 승민이 투병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매일 얼굴을 맞대고 활동했다. 이때의 승민을 떠올리면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면서, 팔을 공중에 휘저으면서
내가 출판사에서 처음 책임 편집을 맡았을 때, 승민과 공동 작업을 했다. 내가 먼저 번역자의 원고를 교정·교열
처음 그녀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그녀의 건강이 조금씩 악화되고 있다고 전해 들을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7월 5일 아침, 그녀를 만나러 가려고 일찍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빈소에 가는 게 두려웠다. 너무 마음이 무거웠고 내가 빈소에서 너무 울게 돼서 폐를 끼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승민의 장례식은 슬프기만 하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동지들이 각자 떠올리는 승민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몰랐던 그녀의 활동을 생생하게 알게 되면서 나는 눈물짓다가도 이내 웃고, 또 무언가 모를 뜨거움을 느꼈다. 여러 동지들이 쓴 조사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아마도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그녀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일이고 그것은 곧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을 배우는 기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그녀의 빈 책상에 눈길이 가곤 한다. 이전엔 그게 그저 슬프기만 했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승민을 떠올리면, 그녀가 평생을 바친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길을 이어 나가겠다는, 꼭 그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승민, 당신이 나에게 아끼지 않은 애정 어린 조언과 질책, 잊지 않을게. 더 성장해서 당신이 못다 이룬 길을 이어 나갈게. 승민,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