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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이윤 시스템이 병 창궐의 근본 원인

전염병과 이윤 논리 부족한 안전 인력, 미비한 시설 투자는 위험한 먹거리를 계속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출처 경기도청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질병이 멧돼지와 사육돼지 모두에게 감염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사육돼지 관리를 해도 멧돼지 사이에서 질병이 남아 있으면 다시 사육돼지에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야생 멧돼지 관리가 필수적이다. 최근 정부가 야생 멧돼지를 ‘박멸’ 수준으로 살처분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다.

물론 한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첫 발병이 야생 멧돼지 때문인지, 인간을 통해 오염된 식품 공급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민통선 주변 야생 멧돼지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확진되고 있고 주요 질병 발생 지역이 경기도 북부라는 점 등을 봤을 때 야생 멧돼지를 통한 전파와 감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에서 야생멧돼지 발병이 보고되지 않은 것은 검사 역량 자체가 부족해서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검출을 담당하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은 정규직 7명과 비정규직 9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현직에서 근무 중인 수의사는 팀 내 1명뿐이다. 멧돼지 폐사체 탐색을 충분히 할 인력이 없는 것이다.

첫 발병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농장 간 전파를 차단하는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실제로 처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다섯 곳의 양돈농가 간 직·간접적인 차량 교류가 있었다고 밝혔다. 살아 있는 동물을 옮기는 경우는 물론, 분뇨나 사료를 실은 차량도 전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벨기에의 경우 차량의 바퀴나 신발의 밑창 등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소독 작업이 충분히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최농훈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지난 8월 열린 축산현장 방역 관리 세미나와 이후 인터뷰를 통해 현장 방역의 문제들에 대해 지적해 왔다.

구멍

첫째, 소독약 허가를 위한 표준시험조건을 통과하려면 소독약으로 4℃에서 30분간 처리했을 때 소독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방역현장에서는 1분 만에 소독이 이뤄지고 있고, 겨울철 기온은 영하로 내려간다.

둘째, 현재 차량 소독 시설은 상당수가 안개 분무 방식으로 가동되고 있다. 고압 살수로 차체에 붙어 있는 유기물 덩어리를 제거해야 제대로 된 소독이 될 수 있다.

셋째, 축산 농가는 물론이고 정부가 운영하는 거점소독시설조차 소독제의 적정 희석 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조사한 농가와 거점소독시설의 절반 이상이 적정 농도 희석을 못 해 효과가 없는 소독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소독약 희석 농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적절한 농도를 확인하는 키트나 점검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구제역과 조류독감을 비롯한 여러 전염병이 문제가 된 바가 있는데도 아직까지 키트 개발이 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넷째, 축산 차량은 분뇨가 새지 않도록 만들어져야 함에도 배관을 설치해 도로 위에 분뇨를 뿌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생축(살아 있는 가축) 차량은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원인이 될 수 있고 생축은 소독이 불가능한데, 모든 축산 차량이 일괄적으로 거점소독시설로 이동하고 있다.

요컨대,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부도 이런 점을 알지만 인력과 투자 부족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보니 대대적인 살처분에 의존하고 있다.

살처분은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노출된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부가 인근 500미터 지역을 넘어 10킬로미터로 살처분 지역을 확대한 뒤 아예 발생 지역 전체로까지 살처분 범위를 늘리는 것은 과도한 조처다. 앞서 지적했듯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접촉 감염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구제역과는 달리 소독을 철저히 하기 위한 시설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훨씬 중요하다.

야생 멧돼지의 경우도 정부의 사전 감시 예방 조처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제 와서 야생 멧돼지를 모조리 죽이겠다는 식의 대책은 필요없었을지 모른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에서는 기간 차이가 있지만 이 전염병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 지적된 많은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통제는 상당 부분 운에 맡겨야 할 상황이다. 그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돼지가 불필요하게 살처분될 것이고 전국으로 확산되면 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 수 있다. 돼지고기 등 식료품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이윤 중심주의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확대시키는 주요 요인이었고, 여전히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관련기사: ‘아프리카돼지열병 한국 첫 발생 — 자본주의가 부추긴 질병의 확산’, 〈노동자 연대〉 298호) 이 확산이 언제 멈출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언젠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지라도 먹거리 공급을 자본주의와 시장에 계속 맡겨 둔다면 비슷한 일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윤 논리 때문에 정부와 기업들이 일상적으로 전염병 예방에 인력과 자원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는커녕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완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윤이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 전염병에 대처하기 쉬운 사육 방식이 발전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인류의 전염병 대응 역량을 늘려나가야 한다. 개별 사안이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확대돼야 한다.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보다 군사비에 대한 투자와 기업 간·국가 간 경쟁이 우선되는 자본주의가 끝장나고, 직접 생산자들(노동자들)이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주의 사회가 돼야 이런 역량이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야생 멧돼지가 어쩌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2주에 한 번 꼴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최신 동향을 보고하고 있다. 최신 보고에 의하면 9월 27일~10월 10일에 전 세계에서 새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507건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사육돼지에서 발병 보고가 더 많은 반면, 유럽에서는 주로 야생 멧돼지에서 발병 보고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야생 멧돼지 서식 밀도는 2017년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가 진행한 조사에서 100ha당 5.6마리로 나타났다. 1985년 2.4마리에서 30년 사이에 두 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산림지대 멧돼지가 농가에 피해를 주는 일은 1970년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벌어진 일인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도시에도 멧돼지가 출몰하기 시작해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멧돼지의 개체수가 늘어난 것은 상위 육식 포유류의 멸종과 관련이 있다. 단기간의 이익을 위한 서식지 파괴와 밀렵 등으로 곰이나 늑대, 여우, 호랑이 같은 육식 포유류들이 멸종하자 멧돼지의 개체수가 점차 늘어난 것이다. 또 환경 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들거나, 먹이가 되는 씨앗이나 열매를 과도하게 채집해서 먹이가 줄어들면 인간 거주지역에 멧돼지가 더 나타나게 된다.

멧돼지의 개체수와 행동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더라도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자연과 동물(인간을 포함해)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동물에 대한 극단적 조치를 취할 때 직접적 효과 외에도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여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지속적인 경쟁 압력 때문에 단기적 이윤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문제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소홀하다. 이윤 추구 압력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도 고스란히 가해진다. 앞서 소개한 한국 멧돼지의 서식 밀도는 2017년에 27명의 조사원이 포유류 24종, 조류 227종 등을 함께 조사한 것의 일부다. 생태계에서 자연과 동물(인간을 포함해)들이 맺는 긴밀한 관계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려면 더 많은 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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