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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잘못된 상식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경제가 높은 성장을 구가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제조업 공동화를 낳고, 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노동운동 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다. 금속연맹은 올해 핵심 투쟁 사안으로 비정규직(불법파견) 문제와 산업 공동화 저지를 내세우고 있다.

올해 1월 현대차·기아차 사측이 부품 공급업체들에게 중국산 부품을 40퍼센트 이상 역수입(바이백)해 공급하라고 강요하자 노동운동 진영은 이것이 산업 공동화와 내수 붕괴를 낳는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현대차·기아차 사측이 추진하는 바이백 지침의 핵심은 부품 공급업체들에게 단가 인하를 강요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글로벌 아웃소싱이나 기업의 해외 이전 때문에 제조업 공동화가 진행되고 실업이 늘어난다는 생각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더욱이 1997년 이래로 ‘고용 없는 성장’이 특징인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실업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기업의 해외(특히 중국) 진출을 꼽고 있다.

일반으로 말해 제조업 공동화는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소위 산업구조 고도화로 인한 제조업 비중 감소는 국민경제 침체나 고용 감소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공동화 현상’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기업의 해외진출 때문인지 살펴보자.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97년 이래로 한국의 제조업 총부가가치, 국내총자본형성, 제조업 취업자가 모두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조업 공동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

산업자원부의 조사분석을 보면, 기업의 해외 진출 이유 중 인건비 등 비용절감이 전체의 48.5퍼센트이고, 현지시장 개척이 28퍼센트, 협력업체 해외이전으로 인한 해외진출이 10.1퍼센트 등이다. 기업규모별로 분석하면, 대기업의 경우 현지시장 개척이 54.6퍼센트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인건비 등 비용절감이 51.2퍼센트로 조사됐다.

더욱이 해외 진출 이후에도 국내 공장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해외진출 후 국내 공장을 폐쇄하는 경우는 12.3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발, 섬유 등 저가 상품 생산업체들은 생산공장 폐쇄 비율이 높은 반면 수송기계, 전기전자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우 국내 공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2000년 이래로 해외 투자가 국내 모기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보면, 국내 생산이 늘어난 경우(36.9퍼센트)가 국내 생산이 축소되거나 중단된 경우(21.1퍼센트)보다 높았다.

이 사실들로써 알 수 있는 점은 저임금에 기초한 산업(저가의 신발, 섬유, 의복류, 단순 가공조립 산업 등)에서는 중국으로 기업을 이전하는 것을 통해 고용 감소 효과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해외 이전이 고용 감소를 낳는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 경제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중국으로 일자리가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내 실업도 급증하고 있다.
기업의 해외 이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해외 진출의 형태에 따라 따르다. 본국을 거점으로 생산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경우 오히려 고용 증가 효과가 나타난다.

2001년 독일의 한 산업연구소가 1천3백57개의 독일 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이전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국내 공장을 폐쇄하지 않은 채로 해외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1999∼2000년에 3천1백36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 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들 중에서 중국 이전 유혹을 받는 기업들은 임금 비중이 높은 단순 조립·가공 산업들이다. 하지만 자본이 해외 이전을 할 때 임금 수준만 고려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해외 이전은 임금 수준보다는 오히려 시장 진출, 숙련노동자층의 공급, 현지 금융 조달, 전후방 연관산업과의 관계 등이 더 크게 고려된다.

도요타처럼 일본 내에 산업 클러스터(집적지)를 조성함으로써 부품 공급업체들과 개발 기간 단축, 비용절감, 핵심기술 강화 등을 꾀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한국의 엘지필립스엘시디와 삼성전자가 경기도 파주에 대단위 엘시디 공장을 건설하는 것도 그 예에 해당한다.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기업의 수익성은 호전되는 데 반해 고용 증가는 없는 현상이 지배적이다. 이는 노동자 착취를 강화한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 증가가 기업의 해외 이전 때문이라고 보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부품·소재 산업 강화나 성장 산업 육성을 위해 노사간 협력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자고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실업 증가의 주범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대량해고를 추진하는 국내 기업과 정부가 아니라 세계화 추세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품 단가 인하를 하청 계열사에 강요하고, 불법 파견을 버젓이 자행하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필요하다면 대량해고도 가차 없이 단행하는 국내 자본들이 저임금을 강요하고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내모는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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