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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테스토스테론 렉스》, 《젠더, 만들어진 성》:
‘과학’을 빙자한 성별 고정관념을 낱낱이 반박하는 책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인가?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런 주장은 최근까지도 유전학, 신경 과학 등 과학의 이름으로 갱신되고 있다. ‘남성의 뇌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유리하고, 여성의 뇌는 관계지향적이고, 공감에 유리하다’, ‘남성은 지위 지향적이고 여성은 돌봄을 지향한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문제는 “신경 과학의 효과로 구식이고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이 갑자기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견해가 되어버린다”(《젠더, 만들어진 성》, p.250)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뇌신경학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테스토스테론 렉스: 남성성 신화의 종말》(딜라일라북스), 《젠더, 만들어진 성 — 뇌과학이 만든 섹시즘에 관한 환상과 거짓》(휴먼사이언스)에서 남녀의 뇌 구조나 호르몬 같은 생물학적 차이를 행동과 심리의 차이로 직결시키는 진화심리학을 철저하게 반박한다. 파인은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에 기반해 흥미롭게 논리를 펼쳐나간다.

최근까지도 흔히 받아들여지는 성 선택 연구의 기본 가정들은 다음과 같다. 난자는 비싸지만 정자는 싸고 무제한적으로 제공된다. 따라서 수컷은 문란하지만 암컷은 오로지 최상의 수컷 한 마리와 짝짓기를 하기 위해 매우 까다롭게 상대를 고른다. 남성은 더 문란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을, 여성은 조신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과거에 생식에서 성공한 결과다.

이런 주장은 공작새가 밝은 깃털을 뽐내는 것을 인간 남성이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수작을 걸고자 번쩍이는 명품 시계를 차는 것과 등치시킨다. 오늘날 남성이 번지르르한 차를 몰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비싼 정장을 입는 것이 모두 남성의 혈관을 흐르고 있는 테스토스테론 때문이라는 얘기다.

테스토스테론이 남녀의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테스토스테론의 증가는 남자 태아의 생식기 발달에 매우 중요하며, 사춘기 테스토스테론의 증가는 정자 생성, 근육 증가, 수염 같은 이차성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이 뇌의 영구적 조직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인간의 인지능력과 행위에도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결정론

생물 인류학자 마크스가 지적하듯이 “인간의 (문화적) 섹슈얼리티와 (자연적) 생식을 혼동하는 것은 유사과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섹슈얼리티는 생식을 위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우원숭이라면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인간이라면 섹슈얼리티의 의미는 생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이 진화가 인간 본성에 한 일이다.”(《테스토스테론 렉스》, p.74)

심지어 인간이 아닌 동물의 생식 행위와 역할조차 유전자와 호르몬이 완전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특정 행동 양식이나 성향이 뇌에 영구적으로 새겨지거나 ‘프로그래밍’ 된다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뇌의 성적 차이로 보이는 것들도 특정 호르몬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유전적·호르몬적·환경적인 요소들이 상호작용해서 형성된다. 특정 환경적 요인에 노출되면 이런 특징이 역전되기도 한다. 뇌의 어떤 특징이 그 성별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이나 태도, 성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가설은 검증을 이겨내지 못 했다.

2008년 경제 공황 이후, 만약 더 많은 여성이 월스트리트에 있었다면 금융에 대한 결정이 더 장기적인 차원에서 내려졌을 것이라고 비평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남성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 때문에 너무 단기적으로 생각하고 성미가 급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얼핏보면 이 말은 여성을 칭찬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은 비즈니스 본능이 없다’며 손쉽게 차별을 정당화한 논리와 맞닿아 있고, 의사결정 방식이 성별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가정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이다.

두 책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서로 관련없는 여러 항목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보험에 가입한 도박꾼”이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샌님”도 가능하다.(《테스토스테론 렉스》, p.130) 한 개인의 위험 감수 성향은 여러 분야에 걸쳐 전혀 일관된 패턴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특정 상황에서의 위험의 본질이 주관적이며 개인에 따라 다르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성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것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은 자본주의에서의 성별 임금 격차를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코델리아 파인은 두 책에서 뇌 구조와 호르몬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여러 고정관념을 검토하고, 그 주장에 깔린 가정들을 세세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여러 성별 고정관념을 성실히 조사해, 이런 생각이 증거에 기초한 연구가 아니라 그저 사람들의 편견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힌다. 대다수 실험이 고안된 방식 자체에 과학자들의 편견이 반영돼 있다.

파인은 인간의 심리와 생리는 너무도 복잡해서 인간의 행동을 단 하나의 결정적 요소로 설명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인간 역사 전반에서 생식 체계가 동일하게 유지됐음에도, 뇌와 호르몬, 행동, 성 역할 등은 사회 체계와 제도(피임법 도입, 기회 균등 정책, 남성 육아 휴직, 여성 할당제 등)의 변화에 맞춰 바뀌어 왔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목격하는 남녀의 행동 규범 차이는 우리의 생물학적 본질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성 차별적인 사회를 반영한 결과임을 뜻한다. 따라서 성별 관념은 사회가 변화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성 고정관념이 아직도 과학의 이름으로 갱신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들, 꽉 막힌 남녀 이분법적 규범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코델리아 파인의 두 책은 그런 가정들을 시원하게 반박하면서, 불평등한 현실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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