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낯선 이웃》:
난민의 삶을 한발 다가가 살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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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난민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책 《낯선 이웃》. 《한겨레21》 기자인 저자는 1년간 여러 나라에서 온 난민들을 취재한 경험으로 이들이 왜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한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세밀하게 보여 준다. 특히 예멘 난민들이 한국에 입국한 2018년 여름부터 이들에 대한 난민 심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다.
책 앞부분에서는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난민 11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절박한 심정으로 한국을 찾았고 한국에서의 처지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은 같았다.
난민들은 난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가 야박하다는 점을 잘 모른 채 한국에 온다. 오직 절박함만으로 한국에 도착한 이들은 낮은 난민인정률이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힌다.
한 타이 난민은 “나는 난민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타이 관광객도 아니다.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며 불안한 심경을 토로한다. 한국 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난민들을 ‘투명 인간’으로 만든다. “한국 사회는 내가 그저 없는 사람처럼 지내길 원한다”는 카슈미르 난민의 절절한 한마디가 가슴에 맺힌다.
난민 배척 논리를 반박하다
이 책은 난민에 대한 편견들을 꼼꼼히 반박한다.
가령 저자는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난민 때문에 한국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희박”하며 오히려 “난민을 비롯한 이민자의 유입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이민법률자원센터는 정책 리포트를 통해 엘살바도르, 온드라스, 아이티에서 온 30만 명을 추방하면 69억 달러의 사회보장, 의료보험 관련세수가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국내총생산은 452억 달러 감소하고, 10년에 걸쳐 30만 명을 추방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도 31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저자는 난민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통계적으로도 내국인보다 외국인의 범죄율이 낮게 나타나지만, 이들의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난민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난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해준 한국에서 쫓겨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의 추방은 곧 조국으로의 송환을 의미하고, 조국으로의 송환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그들은 작은 법질서라도 철저하게 지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인정받았다고 해서 평생 그 지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난민들은 계속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처지에 있는 난민들이 심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얻을까 봐 경찰서 가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난민인정률이 낮은 것이 ‘가짜 난민’이 많다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법 집행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경제적 목적’으로 난민 신청을 하면 ‘가짜 난민’이라는 논리를 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많은 예멘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머물렀지만 “감당하기 벅찬” 거주 비용 탓에 한국으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난민이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런 사례는 난민들을 ‘경제 난민’과 ‘정치 난민’으로 칼같이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 점에서 저자가 난민 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소수의 ‘가짜 난민’에 의해 난민제도가 악용될 수는 있다고 인정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난민을 방어하려는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이런 논리가 정부의 난민 제도 개악에 뒷문을 열어 줄 위험이 있어서다.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한 이주노동자들이나 ‘합법적’ 입국 경로가 막혀 브로커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의 난민들에게도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일부 언론들은 ‘가짜 난민’이 한국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고 난민 심사를 계속 신청한다고 왜곡한다. 그러나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은 난민들에게 매우 고통스럽다. “난민으로 인정받았을 때 기쁨보다 억울함이 컸다. [그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고, 전화 요금도 낼 수 없었다. 7년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수단 난민)
2018년 한국 정부는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500여 명 중 언론인 출신 두 명만을 난민으로 인정했는데, 그 기준이 얼마나 타당한지도 의심스럽다. 형제 중 한 명은 인도적 체류 지위를, 한 명은 단순 불인정 통보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난민과 연대하기
한편, 책이 소개한 로힝야 난민 이삭 씨의 사례는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의 처지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자연스레 알게 한다. 이삭 씨는 2003년 이주노동자 단속이 강화될 때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다. 난민 연대와 이주노동자 단속·차별 반대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처지가 악화될 때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도 더 쉽게 공격받을 수 있기에 난민·이주노동자에 연대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난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난민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걷히고 이들을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난민 배척 세력들이 퍼뜨리는 난민 배척 논리가 자연스럽게 반박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난민들의 생생한 삶을 접하고 우리의 이웃이 된 난민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