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에 이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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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어렵사리 성사된 6자회담인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북핵 위기의 실타래를 풀어 보자는 당부 섞인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남한 정부가 북한의 핵 폐기를 대가로 북한에 연간 2백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중대 제안”이 공개되자, 주류 언론에서는 이제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길만 남은 것인 양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의 “중대 제안”에 대해 북한이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식의 분위기는 사태를 인상적으로만 보는 것이다.
경제난에 처한 북한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개발이 에너지 마련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북한 핵개발은 오히려 정치·군사적 동기가 강하다. 1990년대 이후 강화된 미국의 대북 압박이 북한에서 군사력 강화를 제1과제로 내세운 ‘선군 정치’ 도입으로 나타났고,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같은 군사적 위협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 보유 의지를 갖게 만들었다.
즉, 북한의 핵 보유는 미국의 위협에 맞선 자위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북한이 에너지 지원의 대가로 핵 폐기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남한 정부의 제안이 “중대 제안”이라고 부를 만큼 새로운 것도 아니다. 사실, 이미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미국은 경수로 보장과 중유 제공을 통한 전력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영향으로 불안정이 심화한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맹주권을 확인하기 위해 북핵 위기를 부추기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왔다.
따라서 남한 정부의 “중대 제안”은 미국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남북관계를 일시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북핵 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 북한은 남한 정부의 제안에 대해 한달이 넘도록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번 6자회담이 “마지막 회담”이라고 엄포를 놓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북한더러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협박인 셈이다. 그러자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무장해제시키고 제도 전복 야망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러한 회담은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렇듯 6자회담은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회담 의제를 둘러싼 갈등도 잠재돼 있다. 미국은 플루토늄 핵 폐기에서 더 나아가 고농축 우라늄 카드를 들이밀 수 있다. 반면, 김정일의 “한반도 비핵화” 발언은 남한 내에 존재하는 미군 핵무기의 동반 철거 요구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모종의 ‘합의’가 도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합의는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아마 원론적 수준에서 핵 폐기의 필요성을 공감한다면서 향후 실질적으로 핵 폐기가 진척되면 안전 보장이나 경제 지원 등을 하겠다는 식의 합의문이 작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론적 수준의 합의문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6자회담에서 미국이 체제 안전을 보장한다고 약속하더라도, 북한으로서는 그 약속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지금껏 미국은 항상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난했고,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밝혀진 이라크에 대해서는 침략 전쟁을 감행했다.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실제로 북한에 대한 제재 계획을 세운 바도 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말해, 6자회담과 같은 협상에 의존해서는 제국주의에 제대로 도전할 수 없다. 또한 제국주의에 도전하지 않고서 북핵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참여연대와 같은 평화주의 단체들은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과제보다 회담 성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의 제안에 대해 북한이 적극 호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한 정부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오히려 북한이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주의는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불균형적 지위를 무시하고 균등하게 양자를 비판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북한을 압박하는 논리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한편, 주체주의 경향의 단체들도 6자회담 성사를 환영하고 있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 한반도가 전쟁 위기라고 하더니, 이제는 갑자기 남북 민족공조의 위력 때문에 미국이 “담판장으로 끌려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그림은 따로 있다. 6자회담은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혀 있느라 북한을 압박할 여력이 없는 미국이 다른 방식으로 북핵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 6자회담은 북한에 유리한 회담이 아니라 북한 압박용으로 기획된 것이므로 우리가 6자회담을 환영하거나 그 결과에 기대를 걸 이유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6자회담을 통해 북핵 위기 관리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력관계의 균형추 위치는 회담장 안이 아니라 밖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한계는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 패권 전략의 핵심이자 약한 고리인 이라크 점령의 한계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한 진보진영의 핵심 과제는 이라크 점령에 협조해 파병한 한국군을 철수시키는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다. 6자회담에서의 남한 정부의 노력에 기대를 걸다가 진정한 과제를 위해 독립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