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 정상회의 반대 시위 - 더 나은 세계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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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난 2주 동안 세계 자본주의 반대 운동의 과거 경험들을 매우 압축적으로 겪었다. 우리 운동은 1999년 11월 시애틀 시위와 2001년 9월 11일 뉴욕·워싱턴에 대한 공격을 거쳐, 대규모 반전 행진들을 경험했다.
스코틀랜드 G8 정상회의 반대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절정에서 9·11 이후 조지 W 부시가 선언했던 세계적 비상사태로 상황이 갑작스럽게 역전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런던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난 주 목요일[7월 7일] 에든버러에서 ‘저항의 세계화 열차’를 타고 런던에 돌아온 후 우리의 경험이 상징적이었다.
그 날 저녁 우리가 유스턴 역(驛)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와 있던 1백여 명의 경찰이 열차에서 내리는 우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렇게 쓸데없는 짓이나 하는 런던 경찰청과 영국 국가가 알카에다를 능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번 폭탄 테러 때문에 스코틀랜드 시위의 중요성이 희석돼서는 안 된다. 먼저 세계 정의 운동을 흡수하려는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재무장관]의 시도는 완전 실패했다.
7월 2일 토요일 30만 명이 참가한 에든버러 시위는 여태까지의 G8 반대 시위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심지어 역사적인 2001년 제노바 행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빈곤을 과거지사로 만들기’ 조직자들은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내용을 표현하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 날 시위는 반전 팻말과 반전 구호로 가득했다. 그리고 ‘전쟁저지연합’은 매우 성공적인 집회를 조직했다.
런던 폭탄 공격은 많은 점에서 블레어에게 기회였다. 폭탄 공격 덕분에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블레어와 브라운이 약속한 것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려졌다.
이 때문에 밥 겔도프와 심지어 옥스팜과 크리스천 에이드처럼 ‘빈곤을 과거지사로 만들기’에 참여한 NGO 중 가장 온건한 단체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이 단체들은 정상회담에서 하찮은 정책들만 결정된 것을 비난했다.
둘째, 지난주 수요일[7월 6일] ‘대안 G8’ 행진은 글렌이글스 바로 앞에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다. 경찰은 대규모 작전을 폈지만 시위를 막을 수 없었고, 심지어 시위대가 보안 장벽의 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도 막지 못했다.
셋째, ‘대안 G8’은 7월 2일 에든버러에서 대단히 성공적인 대안 회의도 개최했다. 5천여 명이 대안 회의에 참가했다. 참가자의 압도 다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이었다.
전체 토론회와 워크숍 장소에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논쟁을 듣거나, 논쟁에 개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주제로 ‘저항의 세계화’가 조직한 대규모 워크숍에서 조지 몽비오와 함께 연설했다.
이 워크숍에서는 어떻게 지구의 미래를 보호할 것인가를 두고 흥미진진한 토론이 진행됐다.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쟁저지연합’은 일요일 저녁 에든버러 칼튼 힐에서 아주 감동적인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기’ 집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 참가한 사람 중 상당수는 1999년 시애틀 시위 당시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어렸을 때라 그 시작을 똑똑히 기억할 수 없는 운동의 일원이 됐다.
지난해 10월 유럽사회포럼이나 좌파가 주도해 반대파가 승리한 프랑스 유럽헌법 국민투표처럼, 스코틀랜드 시위는 반자본주의 의식의 활력과 확산이 지속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또, 반자본주의 운동이 단지 기업 세계화뿐 아니라 제국주의와 전쟁에도 도전할 때만 효과적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전쟁 반대를 계속 외치고 확대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전 세계에 공포가 퍼지고 있는 지금 바로 그것[반전·반자본주의 운동 건설 ― 옮긴이]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