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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민주노총 표적 단속을 중단하라

3월 24일 ‘사회대개혁, 총선승리 3.28 민중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3월 31일 경찰이 민주노총 중앙 간부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도로 박근혜 퇴출’ 표현물을 대중적 공간에 부착했다는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이 간부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며 선관위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선관위는 ‘도로 박근혜 퇴출’ 표현이 특정 정당 비방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박근혜가 감옥에서 “기존 거대 야당” 지지를 밝힌 것에 대해서는 ‘선거법 위반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관위의 “표현 억압”이 민주노총 핵심 간부를 표적 삼는다는 민주노총의 우려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민주노총은 총선에서 정의당과 민중당 등 진보 정당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선거가 촛불로 쫓겨난 미래통합당과 촛불을 배신한 민주당 사이의 경쟁으로만 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 정당들이 선거적 성장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 계급 투표 고무하기.

선관위는 민주노총을 표적 단속해 계급 투표 분위기 고양을 막으려 한다.

선관위는 ‘공명선거’ 명목으로 매우 복잡한 단속 규정을 만들어 선거운동을 심하게 규제한다. 그러나 선관위가 주류 양당 사이에서 공정하려고 노력할지 몰라도 계급 정치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류 정치인들이 법망 뒤에 숨어 교묘하게 단속을 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선관위는 그중 일부만 시범 케이스로 고발한다. 반면, 진보 정당들에 대한 단속은 엄격하고 집요하다.

2004년 이후 지역구에서 당선한 진보 정당 의원들은 극히 소수인데, 2005년과 2017년 각각 조승수(민주노동당) 의원과 윤종오(민중당) 의원이 선관위의 사전선거운동 고발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공교롭게도 두 의원 모두 지역구가 울산 북구였다. 2008년엔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 의원(경남 사천)을 선거법 위반으로 걸어 의원직을 박탈하려고 했다.

선관위는 선거법을 내세워 노동계급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선거법은 왜 이토록 억압적인가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은 실상 선거운동 규제법이다. 특히, 노동자 운동과 진보 운동 그리고 진보 정당을 규제 표적으로 삼곤 한다.

선거법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곧바로 단서가 뒤따른다.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선거법은 총 17장 279조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선거운동 관련 규정이 51개다. 그 내용은 대부분 금지나 제한이다. 벌칙 조항만도 30여 개다.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주체, 시간, 방법 등을 광범하게 규제한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선거법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계급 차별적이어도, 한국처럼 선거운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주로 선거 투표소 관리 등 선거 관리가 중심이다.

선거법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이라고 정의한다. ‘당선되게 하다’, ‘당선되지 못하게 하다’는 목적어가 없는 타동사다.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조항이 ‘뜻을 이루지 못하는’ 문장이 됐다. ‘후보자’라는 목적어를 넣지 않은 것은, 후보자로 정식 등록하기 이전의 정치 활동을 사전선거운동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사전선거운동은 불법이다. 이 점을 이용해 선관위가 자의적(이고 계급 편파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생긴다.

더 근본에서, 이것은 기성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진보 정당의 선거적 성장 같은 새로운 위험 요소를 배제하는 데 유리하다.

그리고 대중의 일상적 정치 활동을 사전선거운동으로 처벌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사례 말고도 선관위는 ‘N번방 사건 관련 규탄, 친일청산 국회 실현’ 등 같은 표현과 행위들에 대해서도 단속하려 한다.

그전에도 2000년 시민단체가 주도한 낙천·낙선운동, 2004년 탄핵 비판 퍼포먼스, 무상급식운동, 4대강 반대 팻말 시위·사진전·현수막 게시 등이 사전선거운동 규제 대상이 됐다.

요컨대, 선거법은 공정한 규제가 아니라 계급 차별적 규제다.

현행 선거법의 기원

현행 선거법의 기원은 1958년에 제정된 ‘민의원의원선거법’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파업의 충격 속에서 불안정하게나마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1994년에 선거법이 일부 개선됐지만 선거운동 규제법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민의원의원선거법이 제정되면서 규제 조항들이 대폭 강화됐다. 가령, 선거사무장·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기탁금제도를 도입했다. 그전에는 누구든지 의원 후보자를 위해 단순한 연설회를 자유로이 개최할 수 있었다.

1958년 선거법은 진보 세력의 원내 진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가 30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러자 자유당의 이기붕, 민주당의 조병옥, 무소속 장택상이 만나 다음 총선에서 진보당을 막기 위한 선거법 개악에 합의했다.

“진보당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으며 최소한 1958년의 선거에는 참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데에 일치했다.”

그리고 1958년 1월 선거법 통과 직후 진보당 사건*이 터졌을 때, 야당인 민주당은 방관했다.

그 뒤로 60여 년 동안 미래통합당의 전신들과 민주당의 전신들이 양당 체제를 형성하며 진보 세력의 원내 진입을 억제하는 데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음을 거듭 보여 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당은 노동자 진보 정당들의 원내 진출과 성장을 어떻게든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

1920∼1930년대 일본 선거법이 한국 선거법의 연원이다

일본은 1925년에 보통선거법을 제정했다. 온전한 의미의 보통선거제는 아니었고 25세 이상의 남성에게만 선거권을 줬다. 여성 투표권은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허용됐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가 폐지되고 노동운동 세력과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국가 관료 집단은 천황제 국가 체제가 흔들릴까 봐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국가 관료 집단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 포섭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새로운 위험요소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래서 국가 고위 관료들은 노동운동을 개혁주의적으로 유도하면서 군주제를 유지하는 영국의 선거 제도에 주목했다. 그와 동시에, 보통선거법의 도입이 급격한 체제 변화로 이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치안유지법이 함께 제정됐다.(치안유지법은 한국 국가보안법의 뿌리다.) 치안유지법의 방패막이 보통선거법 제정의 전제조건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보통선거법 제정을 계기로 농민노동당이 결성되자 일본 내무성은 치안유지법을 동원해 금지시켰다.

국가 관료 집단은 (치안유지법 제정에 더해) 보통선거제의 도입으로 인한 기성 질서 혼란을 방지하려고 선거운동에 대한 각종 규제 장치도 도입했다. 입후보 등록제, 사전선거운동 금지, 기탁금제(보증금 공탁제), 선거운동원의 수와 자격의 제한, 선거비용 제한, 호별방문 금지, 선거운동 책임자가 선거 범죄를 범한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하는 연좌제 규정 등.

1930년대 들어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득세하면서 보통선거법도 더한층 개악됐다(1934년). 선거운동 제한이 핵심이었다. 1934년에 개악된 일본 보통선거법이 1958년 제정된 한국 선거법의 연원이다.

* 일본 선거법은 송석윤 교수가 《서울대학교 法學 제46권 제4호》(2005. 12)에 쓴 ‘선거운동 규제입법의 연원 ― 1925년 일본 보통선거법의 성립과 한국 분단체제에의 유입’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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