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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민주당이 민주노동당의 협력 대상인가

지난 8월 23일 김혜경 대표, 권영길·심상정 의원 등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조선사회민주당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0년부터 조선사회민주당과의 협력을 추구해 왔다. 이번 방북에서도 양당간의 “지속적이고 정례적인 교류와 공동 실천”에 합의했다.

그러나 조선사회민주당은 역사적으로 조선노동당의 ‘들러리 정당’ 구실을 했을 뿐이다.

조선사회민주당의 모체인 조선민주당은 1945년 11월 3일 조만식에 의해 창당됐다. 조만식은 평안도 지방의 기독교인들과 지주·자본가 등을 사회적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래서 조선민주당은 ‘자작농’, ‘산업자본’ 및 ‘상업자본’에 기반을 둔 ‘의회제도’를 수립하고자 했다.

당시 소련은 민족주의자가 자국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별 문제 삼지 않았다. 사실, 조선민주당 창당 자체가 소련의 권유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조만식은 조선민주당 창립대회에서 “붉은 군대만이 우리가 자유롭게 회합하여 오랫동안 갈망해온 정당을 조직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었다. 김일성의 이니시어티브에 의해 조선민주당은 조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조선민주당 부당수 최용건은 비공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상무집행위원회 위원’이었으며, 조선민주당이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제자 구실도 했다.

그러나 조선민주당이 1946년 1월 2일 중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를 찬성할 수 없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자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연립(민족 통일전선)은 와해됐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조선민주당과의 협력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자 소련군과의 협의 아래 조선민주당 무력화 작업에 나섰다.

그리고 1946년 2월에 열린 조선민주당 비상전당대회에서 김일성의 오른팔격인 최용건이 위원장이 됐다.

또, 최용건은 1955년 4월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이 됐고, 그 해 12월에는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최용건은 조선민주당 당원들을 조선노동당으로 이적시키는 등 당 조직 해체 작업에 나섰다. 이후 조선민주당은 지방조직이 와해되고 중앙조직만이 남게 됐다. 있으나마나 한 ‘들러리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조선민주당이 ‘조선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은 1981년 1월에 열린 제6차 당대회에서였다.

당명 개편은 대외적 요인을 고려해서였다.

조선노동당은 조선사회민주당을 활용해 대외 관계의 폭을 넓히고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려 했다. 특히 조선노동당의 대남 관련 기구로 활용했다.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 김영대는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과 민화협 회장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우당’은 조선노동당과 공동의 이해를 가진다는 점에서만 존재 의의가 있다. 조선사회민주당은 조선노동당의 정책에 적극 협조했고 그 속에서만 존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현재 ‘우당’을 통제하는 역할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맡고 있으며, 조선사회민주당의 대외 활동은 조선노동당 국제부의 직접 지도를 받고 있다.

사실상 조선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을 구별하기는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관제 야당과 협력 관계를 맺을 어떤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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