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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고용보험 :
정부와 사용자 부담 확대 없는 찔끔 개혁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속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7월까지 80만 명이 일자리를 잃거나 준 실직 상태가 됐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해지고 하반기 경제 전망도 어두워 고용 위기는 더한층 심화할 공산이 크다.

올해 상반기 고용지표를 보면, 특히 임시·일용직과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부문에서 일자리 감소폭이 컸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고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정부가 기업들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고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일부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지만, 생계 보전에는 턱없이 불충분하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보호가 최우선”이라고 말했지만, 고용 위기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는 소극적인 반면, 기업 살리기에는 전력을 쏟고 있다.

물론, 정부는 코로나19-경제 위기 고통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실직자들에 대한 일정한 지원과 보호를 제공하겠다며, ‘전국민고용보험제’를 꺼내 든 이유다.

그러나 정부의 거창한 말과 달리, 정부가 내놓은 추진 방향과 계획을 보면,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실질적인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너무나 미온적인

정부는 현재 1367만여 명에 이르는 고용보험 가입자 수(전체 취업자의 절반가량)를 2022년 1700만 명, 2025년 2100만 명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예술인, 특고,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고용보험 적용에서 배제됐던 사람들을 일차 대상으로 삼고, 앞으로 자영업자까지 포괄한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일차 확대 적용 대상으로 삼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조차 단계적 시행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고용 위기와 대중의 필요를 볼 때, 너무나 한가한 계획인 것이다.

사실 특고, 플랫폼 노동자까지 고용보험을 확대한다는 계획은 이미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내놓았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3년 내내 거의 진척시키지 않다가 고용 위기가 심각해지자 부랴부랴 꺼내 든 것이다.

정부는 특고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최근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내놨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를 올해 국회에서 최우선 입법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 내용을 뜯어보면, 고용보험 적용에 여러 제한을 둠으로써 특고 노동자 포함 범위를 상당히 제약하고 있다.

일단, 정부 개정안은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한 사람 중 일정한 직종에 종사하는 노무제공자”를 보험 적용 대상으로 했다. 이는 많은 노동자들을 보험 적용에서 배제하는 내용이다. 특고 노동자의 상당수가 계약서 체결 없이 종사하거나 외관상 노무제공과는 다른 계약을 맺고 있다.

노동자 지원엔 소극적, 기업 살리기엔 전력투구 문재인 정부 계획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을 이루지 못한다. 7월 20일 대리운전노조 농성 투쟁 선포식 ⓒ이미진

게다가 정부 개정안은 특고 노동자 중에서도 일정한 직종에 한해서만 보험을 적용하도록 했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직종만 해당되는 것이다.

노동부는 현재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특수고용 직종을 고용보험에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즉, 특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할 때 잣대가 된 ‘전속성’(하나의 사업자에 주로 고용돼 있는지 여부)을 고용보험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상당수 특고 노동자를 제외시킨 문제점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개정안은 수급 요건도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까다롭게 하고 보장 범위를 제한하는 등 차등을 두고 있다.

특히 특고 사용자 중 플랫폼 사업주에게는 보험료 납부 의무를 부과하지 않도록 해 사용자 책임을 면제해 준 것도 문제다. 결국 이 비용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기 십상이다.

정부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특례 조항을 만들어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적용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을 추진한다면서 특고 노동자 전면 적용에도 턱없이 부족한 내용을 개정안으로 내놓았다. 역대 정부들이 그래 왔듯이, 문재인 정부 역시 특고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며 산재나 고용보험 등의 일부 보호를 제공할 때조차 차별을 두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특고 종사자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첨예한 갈등 사안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역시 특고 노동자들의 노조법 개정 등 노동자성 인정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인 계약 형태를 걷어 내면, 특고 종사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그 대가를 지급받고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수 없는 여느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정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더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에도 기업주들의 압박에 타협을 거듭해 왔다.

사용자들은 정부 개정안에 대해 의무 가입이 아닌 당사자 자율로 하자거나 특고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 축소, 고용보험 재정 별도 관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통합당 의원들은 고용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해 ‘재정 균형’을 강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누가 재정을 댈 것인가?

고용보험 대상 범위가 확대되면 그에 따라 보험 수입이 증가하지만, 새로 가입하는 대상 중 취약계층이 많아 고용보험 재원 소요는 더 커질 것이다. 결국 관건은 고용보험 재정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혜택이 돌아가려면, 사용자들의 보험료 기여분과 정부의 재정 투입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아직 구체 방안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의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노동자 임금의 1.6퍼센트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절반씩 부과하고 있는데, 이를 소득 기반으로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이라 불리는 이 방안은 고용보험 가입 시 노동자 여부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일정한 소득 수준에 부합하면 보험에 가입시키고, 개인의 소득(주로 임금과 사업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와 정부에게 더 많은 재정 책임을 지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각각이 소득에 따라 보험료 부과 책임을 지게 되므로, 고용보험 재정이 대폭 늘어나야 하는 상황에서 되레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실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또는 세금)를 걷어 보험 재정을 마련하자는 아이디어 자체가 부족한 재정 확충을 위해 노동자 증세 방안으로서 제기된 것이기도 하다.

가령,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재정의 일정 부분을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 마련하는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물론 프랑스는 사용자 기여분이 노동자 기여분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추세적으로 사용자 분담 몫이 줄어 왔다.

한국에서도 소득 기반 고용보험을 제안하는 친정부 연구자들은 사용자 기여금 부담액은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플랫폼 사업주에게 기존 사용자들과 같은 비중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가능치 않다고 본다.

최근 경사노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고용보험 확대 방안을 논의할 때도, 사용자들의 세금 부담이 적지 않다며 사회보장 재원 확충은 소득세나 간접세를 늘리는 방안이 논의된 바 있다.

정부가 재정 투입을 대폭 늘리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한국의 사회보장 지출 규모는 계속 늘어왔지만, 여전히 OECD 국가들 평균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은 OECD 하위 수준이다.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 계획한 2020~2025년까지의 국비 부담은 고작 4조 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최근 늘어나는 고용보험 적자를 메우기에도 부족하다.

결국 정부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면서 정작 재원 마련에서는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에 의존하려 하면,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든 보장 수준 향상이든 무엇 하나 제대로 되기 어렵다. 대상을 넓히되 보장 수준을 축소하거나 대상 확대가 찔끔 수준에 머물기 십상인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단계적 고용보험 확대라도 되게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며 두둔하거나, 노동자들의 고용보험료를 인상해 취약계층을 지원하자는 제안으로는 제대로 된 고용보험 확대를 얻어 내기 어렵다.

정부의 재정 투입과 사용자들의 부담을 늘려 고용보험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보장 수준도 상향하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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