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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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편견
서방 지배자들과 언론들은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이 ‘이슬람과 서방’의 충돌로 대체됐다고 주장해 왔다. 1980년대에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이슬람을 당시 소련과 함께 세계를 위협하는 최대의 ‘악’으로 규정했다.
서방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본질적으로 편협하고 폭력적인 종교라고 비난한다.
모순된 이해 관계
판에 박힌 반이슬람 선동은 이슬람이 서로 다른 계급들의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주요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은 매우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순된 신앙의 구현체다. 예컨대, 기독교는 “해방 신학”의 이름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계급 불평등과 미국이 후원한 독재 정부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기독교는 미국 권력과 자본주의와 독재 정부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사회 억압에 반대하는 꾸란의 모호한 교리는 깊은 좌절감에 대한 출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슬람 정치 운동의 성장은 세계 질서로부터 배제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의 산물이다. 예컨대, 이슬람의 기치 아래 일어난 두 번의 위대한 봉기 ― 1979년 이란 혁명과 1980년대 옛 소련의 침공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항쟁 ― 는 이집트·알제리·팔레스타인 점령지 등의 반정부 투쟁과 반제국주의 운동에 영감을 줬다.
이슬람과 폭력
무력과 강제에 의한 이슬람 개종을 가리키는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이나, “참수형·투석형·손목 절단형” 등이 명시돼 있는 샤리아
이슬람을 다루는 역사가 버나드 루이스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지도자의 통치보다는 이슬람 지도자의 통치 아래서 소수 종교 신자들의 삶이 더 풍요로웠다고 지적했다.
무함마드의 설교는 아랍의 농민과 도시민이 믿은 기독교·유대교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당대의 기독교와는 달리, 이슬람은 단지 신앙과 도덕적 규범만을 설교하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설교는 사회 개혁을 위한 정치 강령이기도 했다. 무함마드는 전쟁의 파괴, 두 제국의 수탈 등으로 말미암은 대중의 가난과 사회 혼란을 해결하려 했다. 무함마드는 단일한 법전에 근거한 공동체
이슬람과 테러
서방 정부와 언론들은 지난 10년 동안 이슬람을 비이성적 폭력과 동일하게 취급했다. 그러나 이슬람과 테러는 동의어가 아니다.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이슬람 부흥 운동
이슬람과 여성 억압
탈레반의 여성 억압 정책이나 아랍 여성들의 히잡
맺음말
종교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수많은 대중이 겪고 있는 진정한 고통에 위안을 제공해 왔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고통에 맞서 저항과 반란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사회주의자 신부와 혁명가 신자들이 포함된 남미 해방 신학 운동은 이것의 뚜렷한 사례이다. 미국에서 기독교는 인종 차별주의에 대항한 흑인 저항 운동의 수단 노릇을 했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제국주의와 자국 지배자들의 억압에 대항하는 한 수단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모든 종교적 관념을 거부한다. 그러나 종교적 관념과 그 운동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진정한 고통의 표현이자 진정한 고통에 맞선 저항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언제나 종교적 외피 속에 가려진 사회적 실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억압자의 종교와 피억압자의 종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피억압자들이 종교의 기치 아래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울 때 우리는 그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