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공동성명 - 이라크 수렁에 빠진 부시의 불가피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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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부시 정부에 대북 정책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 대전제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대한 부정이었다. 부시는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했다’며 두고두고 클린턴 정부를 비난해 왔다.
그런데 집권 5년 만에 부시는 긴 여정을 거쳐 자신이 그토록 비난을 퍼부었던 합의 틀로 되돌아온 꼴이 돼 버렸다. 클린턴처럼 부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고 에너지를 지원하기로 서명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뉴욕타임스〉가 정곡을 찔렀듯이, “부시 대통령은 서명 외에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시는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넘도록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제 미국 국민의 절반이 넘는 54퍼센트가 미국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폭발시킨 미국 민중의 분노가 결합되면서 부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 문제, 카트리나, 이란 핵문제에 골치를 앓던 부시 대통령에게 새 합의문은 일단 북한과의 대립 국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뉴욕타임스〉)
이처럼,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원동력은 6자회담 당사국들 사이의 세력관계가 아니었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당사국들은 저마다 자국 외교의 승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이 한 일은 6자회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요소, 즉 이라크와 국내에서 겪고 있는 부시 정부의 위기를 잘 이용한 것뿐이었다.
우리 운동 안에는 6자회담 공동성명이 북의 “정치적 승리”라는 주장이 많다. 예컨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침략정책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 [전 세계가]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과 당당히 맞서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정치적 승리를 일궈” 냈다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지고 카트리나에 얻어맞아 이미 지친 상태로 4차 6자회담이라는 링 위에 올라왔음을 간과한 얘기다. 무엇이 미국의 후퇴를 강제했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실천적 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북의 핵 억제력과 선군정치”가 미국의 후퇴를 강제했다면,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나 협상대표자의 수완, 또는 군사력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결과를 기다리거나 그저 북한의 외교력을 지원하는 부차적 역할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6자회담의 결과는 우리 운동이 한반도 전쟁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서도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겪고 있는 위기를 심화시키고 결국 패배에 이르도록 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함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그 동안 좌파 민족주의 경향(NL)의 동지들은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내세워 이라크보다 한반도에 역점을 둬 왔다. 미국이 이번 공동성명에서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이제 이 동지들이 이라크 철군 운동을 반전평화투쟁의 핵심에 놓기를 바란다.
세계 세번째 파병국인 한국에서 반전 운동은 이라크 전선에서 부시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실질적인 구실을 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진 부시 정부는 6자회담 파탄이라는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것도 아니었다.
이 모호함이 공동성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치 수술해야 할 부위를 여러 군데 남겨둔 채 서둘러 봉합한 것 같은 상황이다. 합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일정도 시행 방식도 없다.
1994년 제네바합의는 경수로 건설의 목표 시한(2003년)까지 규정해 놓고도 결국 경수로 건설이 30여 퍼센트 진척된 상황에서 9년 만에 중단됐다. 그런데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한 논의 시기조차 논란거리다.
핵 포기와 경수로 제공의 선후 문제뿐 아니라, 핵 사찰 방식과 범위, 경수로 건설 재원 마련 등이 모두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파투를 내려고 마음먹는다면 미국은 언제든지 인권 문제와 미사일 문제도 들고나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6자회담 공동성명을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과 연결짓는데, 이것은 너무 성급할 뿐 아니라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우선, 지배자들 사이의 합의는 언제든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1993년 6월 북미가 발표한 공동성명은 “미국은 북조선에 핵무기를 포함해 폭력적 공갈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1년 만에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휩싸인 바 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시작된 협상의 전개 상황은 미국이 중동 전선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느냐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동 재편에서 결정적 패배를 맛본다면 당분간 대북 압박에 더 소극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설사 북한의 핵 폐기가 검증되고, 경수로 건설이 재개되고, 북미·북일 관계가 정상화된다고 해도 이것이 동북아 평화체제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지미 카터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최근 저서 《제국의 선택》에서 “어떤 측면에서 오늘날의 아시아는 불길하게도 1914년[제1차세계대전] 이전의 유럽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이 경제적 경쟁뿐 아니라 군사적 경쟁도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지역에서도 진정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