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 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 논의 - 계급 협력 노선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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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05년 전국연합 대의원대회에서 대규모 연합전선체 건설 방침 결정 뒤 ‘민중운동 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 논의가 한창이다.
‘21세기코리아연구소‘ 조덕원 소장에 따르면, “2000년 남북평양수뇌회담과 6·15 공동선언 발표[를 계기로] 상층 민족통일전선”이 형성됐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지역 통일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제기됐다.
“상층 민족통일전선이 형성된 조건”에서 “반미 진보세력은 친미보수정권[에 대한] … 전략적 타격 투쟁(정권 반대) 대신에 … 전술적 타격 투쟁(정책 반대)”을 해야 한다.
노동자·민중 운동이 한나라당을 반대해 열우당 정부와 “전술적 공조”를 맺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6·15 공동선언이 이남 반미진보세력에게 가져다 준 정치적 이득은 비할 바 없이 거대한 것”이다.(‘민주노동당의 집권과 높은 단계 연방제 통일의 변증법’, www.21corea.org)
이러한 노선은 제국주의(그리고/또는 파시즘)에 대항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계급 협력을 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배계급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스탈린주의 ‘인민[민중] 전선’ 정책의 재연이다.
이런 노선 때문에 2000년에 김대중이 6·15 남북정상회담을 이용해 호텔롯데와 사회보험 노동자들의 파업을 공격했을 때, NL의 대다수는 심각한 모순과 혼란을 겪었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때도 그 비슷한 혼란이 되풀이됐다.
조덕원 소장이 이 노선의 성공 사례로 제시한 중국공산당의 국공합작은 1925∼27년 중국혁명을 끔찍한 재앙으로 이끌었다. 민족 부르주아지에 기반을 둔 국민당에 속해 있던 중국공산당은 민족 부르주아지와 대적하지 않으려고 장제스의 군사쿠데타에 직면해서도 노동자·농민 투쟁을 자제했다. 그 결과는 장제스에 의한 대학살이었다.
민중전선의 핵심 문제점은 자본가 계급의 일부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연합은 연합전선체의 건설 주체인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농민·청년학생뿐 아니라 “중소 사업가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소 사업가들”이 대자본가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다. 또, 중소 자본가들은 대자본가의 부당한 압력이 완화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그 횡포에 대처한다.
이 때, 중소 자본가가 두려움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노동계급은 계급 협력을 위해 자기 계급 고유의 요구를 자제해야 하는가?
이것은 연합전선체 안에서의 노동계급의 역할 문제를 제기한다. 민중전선론자들은 노동계급과 다른 피억압 민중의 차이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그저 여러 부문들 중 하나일 뿐이다.(여기에 ‘부문운동론’과의 접점이 있다.)
노동자들이 주도력을 발휘하도록 고무될 때만 다른 피억압 대중에 대한 노동계급의 주도력이 강화될 수 있고, 계급의식이 제고되고 조직이 강화되고 자신감이 증대된다. 그러나 민중전선론자들은 그렇게 하기를 꺼린다. 민중전선의 목표 때문이다. 연합전선체의 목표는 자주적 통일 정부 수립이다. 그것을 위해 노동계급은 중소 자본가와 단결해야 한다. 연합전선체는 특정 계급이 아니라 남한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해야” 한다.
한편, 연합전선체의 당면한 “핵심 정치적 방향은 반미 투쟁”(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이다. 미국 제국주의가 물러나고 자주적 통일 정부를 수립한 뒤에야 노동계급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너무 먼 미래이고 실천에서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2003년 민주노동당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자주계열은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로 사회주의 공개 천명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물론 연합전선체가 당장 현실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중소 자본가들이나 열우당 개혁파들이 연합전선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NGO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대연 씨도 “기본 계급의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민족민주운동 단체들이 먼저 결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형태보다는 실질이 중요하다. 1980년대 영국 공산당도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동맹을 맺지 않았다. 공산당은 노동당을 통해 계급 협력 노선을 구현했다. 남한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전선론자들은 민주노동당의 성격을 바꿔 민중전선 노선을 구현하려 한다.
전국연합은 민주노동당이 중소 자본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러면 민주노동당의 “‘좌파 계급정당’ 이미지가 불식돼야” 한다. 즉, “현 단계 운동의 요구에 맞지 않는 강령이나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도 “노동자의 이익을 앞세우는 듯한 당 활동 내용과 방식이 그 동안 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한 가지 요인”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국민정당’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고 중기적으로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토니 블레어도 영국노동당을 미국 민주당처럼 만들고 싶어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혹시 당의 이데올로기를 (‘민주사회주의’ 강령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곧 당의 성격(노동자당이라는)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령·이데올로기와 당 지도자들의 사회적 구성(계급 소속)은 모두 중간계급적이다. 이 점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당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평당원들이 여전히 노동계급 성원들이라는 점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노동자당이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이데올로기 후퇴 가능성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민중전선 사상은 반동에 맞선 노동계급의 저항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