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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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에 대한 성적 비행으로 직위해제된 데 이어 제명 처분을 받았다.(‘성추행’의 수위와 ‘죄질’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성적 비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번 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았을 피해자, 그리고 충격과 실망이 클 정의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이 가장 큰 진보정당 대표의 성적 비행 사건이다 보니 그 파장이 작지 않은 듯하다.
이번에도 우파들은 ‘진보의 두 얼굴’ 운운하며 진보를 싸잡아 매도하고 비난하기 바쁘다. 터무니없게도 정의당과 민주당(안희정과 오거돈)을 모두 ‘진보’로 한데 아우르면서 말이다. 특히, 안희정과 오거돈은 고위 권력층의 대표이지, 노동계급·서민층의 대표가 아니다. 더구나 관련 사건들은 저마다 사건의 수위나 실체가 다 다르다.
우파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과 권리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고, 오히려 체계적 여성 차별의 수혜자이자 수호자이다. 그런 자들이 도매금으로 싸잡아 매도하려고 이번 사건을 이용하는 위선이 역겹다.
정의당 지도부의 대처
정의당 지도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젠더인권본부장)는 사건 접수 후 제소인과 피제소인 양측을 비공개로 조사하고 사실관계에 다툼이 없음을 확인한 뒤 대표단회의에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대표단회의는 당규에 따라 김종철 대표를 당기위에 제소하고 (징계 의결 시까지의 잠정적 조처로) 직위해제했다. 그 뒤 당기위는 제명 결정을 내렸다.
정의당의 이런 대응 절차는 대체로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양 당사자가 모두 모종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일각에서는 정의당 지도부가 사건 처리 과정을 공개하면서도 ‘성추행’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나타낸다. 이는 그간 고무줄처럼 과잉 확장된 급진 페미니즘 식 ‘성폭력’·‘성추행’ 개념이 진보진영에서 사용돼 온 결과로 빚어진 반응일 것이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이 혼란을 초래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신체접촉의 수위와 맥락은 사건의 경중 판단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지만, 상세한 피해 내용을 당의 책임 있는 기구를 넘어 전 당원과 대중에게 공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정의당처럼 국회의원단과 수만 명의 당원을 보유한 대중 정당이 당 대표의 유고와 그 사유를 아예 안 밝히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성추행 피해자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의 구체적인 내용(가령 어느 부위를 어떻게 만졌는지 등)을 공개하기를 꺼리는 것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세한 피해 스토리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가십처럼 회자되기를 바라는 피해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소속 단체의 책임 있는 기구는 다른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보고를 받을 권한이 있는 기구의 구성원이 아니라면, 피해의 세부 내용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2차가해 문제
정의당 지도부는 한때 “2차가해” 제보를 받으며 단속에 나선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궁금해하며 정의당 지도부의 조처에 궁금증을 갖고 한마디씩 하는 것은, 앞서 언급된 급진 페미니즘의 고무줄 같은 성폭력 개념으로 혼란스러웠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2차가해’ 개념 자체에 내재된 문제점도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은 그간 피해호소인의 주장과 감정만으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 ‘피해자 중심주의’의 방호벽 구실을 하면서, 합리적 질문조차 전혀 허용치 않는 권위주의적인 입마개로 사용돼 왔다.
그래서 피해 여부의 조사나 당사자의 해명까지도 ‘2차가해’로 몰리는 일이 생기거나, 성폭력을 직접 저지르거나 옹호하지 않은 사람들도 일종의 성폭력 공범처럼 취급받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정의당 지도부가 실체도 불분명한 일을 진상조사도 없이 피해호소인 주장만으로 단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2차가해’라는 절대적 용어의 사용은 부적당할지라도) 정의당 지도부가 ‘피해자 유발론’ 등 이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논란을 중지시키고자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정의당의 책임 있는 기구가 대의원들이 민주적으로 정한 절차를 거쳐 진상조사를 하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렸는데도 당 바깥에서 이 결정에 대해 무책임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근거 없이 의심하며 끊임없이 들쑤시고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대부분 재·보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이해득실에 골몰하는 민주당과 우파 정당 지지자들이다.
성 문제는 복잡하고 민감하고 까다로울 뿐 아니라, 피해자를 비롯한 사건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과 사건의 파장이 각별히 크다. 따라서 이런 사건의 처리를 아무런 책임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여론 재판에 맡길 수는 없다. 또한 사건 당사자들이 억측과 루머, 비방에 시달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편, 정의당 지도부의 대응 절차와 가해자 직위해제 조처를 지지하지만 제명이라는 징계 수위에 관한 의문이 들 수는 있다. 징계 수위의 적절성은 구체적인 행위 수위(비행의 질)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의당 지도부가 사건의 구체적인 수위를 공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만큼, 이후 적절한 당 기구에서 징계를 승인 받는 과정에서 징계 수위의 적절성이 토론되리라고 예상된다.
제3자 형사 고발
한 우파 단체가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조항이 폐지된 것을 이용해,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의 의사에 반해 김종철 전 대표를 형사 고발한 일도 역겹기 짝이 없는 위선의 발로다.
그런 우파들은 이번 제3자의 형사 고발이 여성단체들과 정의당 지도부가 그간 지지해 온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 정신에 더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피해자와 정의당 지도부가 형사고발에 반대하는 것이 ‘가해자 면죄부 주기’라고 터무니없이 비난하기도 한다.
말할 나위 없지만, 이번 형사 고발은 피해자의 안위나 여성운동의 대의는 안중에도 없는 반동적 세력이 그저 정의당을 찍어 내려고 하는 행동일 뿐이다.
장혜영 의원과 정의당 지도부의 입장처럼, 피해자 의사를 무시한 제3자의 형사 고발은 옳지 않다. 피해자의 주체적 의사는 존중돼야 한다.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라는 여성단체들의 오랜 요구가 2013년 법 개정에 반영된 특정 맥락이 있다.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이 피해자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고, 가해자 측이 이 점을 악용해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의 폐해를 막는다는 취지였다.
친고죄 폐지의 이런 애초 맥락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자주적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완전히 부당한 짓이다.
정의당은 이번 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혼란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김종철 전 대표의 비행이 안희정(위력 성폭행)이나 오거돈(위력 성추행)과 같은 반열의 것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폭력 개념을 무한 확장한 오류의 결과이므로 재고돼야 한다. 또, 정의당이 민주당과 예리한 차별화를 해 오지 않은 데서 비롯한 문재인 정부와의 동반 인기하락도 심각하게 재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