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운동과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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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고려대에서는 “성매매방지법 1년 평가와 성노동자 운동의 방향과 전망”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성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등에서 나온 연사들이 발표를 했다.
연사들은 모두 성매매방지법과 이를 지지한 여성단체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집창촌 수는 대폭 감소했으나, 음성적 성매매는 여전하거나 증가했으며 많은 성 판매자들의 처지가 더 열악해졌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대다수 성 판매자들이 빈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을 판매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성매매 단속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성매매방지법을 지지한 주류 여성단체들이 성 판매자들의 처지를 무시하고 있다는 연사들의 비판은 정당했다. 성 판매자들이 국가 억압에 맞서 스스로 조직할 권리를 옹호한 것도 올바랐다.
그런데 일부 연사들은 성 판매자 억압 반대를 넘어, 성매매 궁극적 폐지론 자체를 문제 삼았다. 성 판매자 노조인 ‘민주성노동자연대’ 이희영 대표는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말하면서 동시에 ‘성매매의 궁극적 폐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궁극적 폐절론’은 “성매매 금지주의자들에게 [성노동자 운동이] 공격당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 판매자들의 처지에서는, 성매매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마치 자신들에 대한 부정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성 판매자들에 대한 태도와 성매매 자체에 대한 태도는 구분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빈곤 때문에 불가피하게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때문에 성판매자 억압에 반대해 그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한 연사(‘성노동운동민중연대’의 조일범 씨)가 주장했듯이 성매매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단순한 거래인 것은 아니다.
모든 성 판매자들이 감금 상태에서 일하거나 인신매매를 통해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을 판매하는 한은 성 판매자들의 ‘자유’는 기껏해야 형식적인 것일 뿐이다.
성 판매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포주와 협상해 좀더 나은 판매 조건을 확보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가 성 판매자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좌파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할 때 이 점을 무시한다면, 성매매를 옹호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세력에는 좌파뿐 아니라 자유주의자와 심지어 포주 따위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부 연사들의 견해는 좌파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 전형적으로 조일범 씨는 성매매가 무슨 문제냐는 투로 말했다.
이런 자유주의적 주장에 대해 연사 중에서는 ‘세계화반대여성연대’의 엄혜진 씨만이 분명하게 비판했다.
성매매가 실업과 빈곤에 따른 억압(특히 여성 억압)이고 그것은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자칫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몇몇 연사들은 ‘정직한 성 산업인’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데, 포주(일부일지라도)를 미화하는 이런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