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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말은 좀 덜 보수적이지만 오세훈과 오십보백보

서울시장 보궐 선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박영선은 꽤 큰 격차로 국민의힘 후보 오세훈에게 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30퍼센트대로 내려앉았고, 민주당 지지율도 국민의힘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박영선의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과 엇비슷한 것은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음을 보여 준다.

특히, 박영선의 20대 지지율은 21.1퍼센트로 오세훈(60.1퍼센트)과 2배가량 차이가 났다(3월 24일, 〈오마이뉴스〉 의뢰, 리얼미터). 30대 지지율도 오세훈이 크게 앞섰다. 며칠 뒤 여론조사에서도 20대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30.2퍼센트로 평균(34.4퍼센트)보다 낮았다(3월 29일 리얼미터).

민주당은 역사를 모르니 어쩌고 하면서 20대를 탓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다. 게다가 20대가 역사를 알면 민주당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똑같은 신자유주의 공약 내세우며 오세훈과 경쟁하려는 박영선 이러니 개혁을 바라는 대중이 이번 선거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밖에 ⓒ출처 박영선 페이스북

20대는 4년 전 문재인이 당선했을 때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인 집단이다.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정과 공공부문 일자리 대규모 창출, 노동 존중, 부패 척결 약속 등에 기대를 가졌을 법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높였다 낮췄고,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은 포기했다. 특히, 전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부패와 비리를 저질렀다. 이를 감추려고 온갖 위선을 부리고 여론 공작을 펼쳤다.

문재인은 지난해 청년의날 축사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37번이나 말했다. 조국 사태 이후 등 돌린 20대를 의식해서였다. 그러나 최근의 LH 부패 사태는 공정 약속이 문재인 정부 집권 내내 이어진 거짓말의 반복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장관 출신으로 정부 실패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인물인 박영선이 “정직과 공정”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몰염치한 짓이다.

지금의 여론은 박근혜 퇴진 이후 문재인 정부에게 개혁 염원을 투영했던 20대의 다수가 이제 그 실체를 알아채고 이반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세훈의 20대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보다 높은 데는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커지는 가운데 오세훈이 지난 10년 동안 공식정치 주무대에서 비껴 있었던 덕분에 그의 우파적 면모가 청년들에게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점이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일자리 없는 일자리 정책

박영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을 의식해 자신은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고작 차별화한다는 게 자신은 부동산 관련 규제를 더 많이 풀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니 신자유주의의 원조들인 국민의힘과 오세훈을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박영선은 2·4 부동산 대책을 언급하면서 고밀도 개발이 필요하다고 하고, 강남에도 재건축·재개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건설사와 집부자·땅부자들이 좋아할 약속이다.

박영선은 공공주택 3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약도 실현되지 않고 있어서 그의 말을 믿기도 어렵고 실현성도 의심된다. 게다가 공공임대주택을 얼마나 더 늘릴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없다. 박영선은 무주택, 집값 상승의 고통을 이해하는 척하지만 사실 그 자신이 부동산 자산가이다.

박영선의 일자리 정책에는 정작 정부 책임이 빠져 있다. 박영선은 청년 출발자산 5000만 원을 무이자 대출하고,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고, 그저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개인에게 성패 여부를 떠넘기는 창업 얘기만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해고 문제 등 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반영한 약속도 찾아보기 어렵다. 박영선은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시절에도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운운하고,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주장하는 등 친노동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걸어 왔다.

포장만 그럴 듯

박영선은 3월 초 출간한 책 《박영선과 대전환》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프로토콜(규칙·규약) 경제를 자신의 핵심 정책으로 꼽았다.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계약 조건을 자유롭게 정한 뒤 이익을 기여도에 따라 디지털 화폐 등으로 배분하면 플랫폼 독점에 따른 폐해를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기술 발전으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은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이익 기여도를 어떻게 측정할지도 불투명하지만,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짜이지 않을 거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임금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노동시장에 자신을 내놔야 하므로 애시당초 고용 계약이 공정할 수 없다.

사실 플랫폼이 “공유 경제” 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대기업들의 돈벌이 공간에 지나지 않음은 이내 드러났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게도 있다. 박영선의 포장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도 적용하지 않고 있다. 플랫폼 관련 규제 완화를 잇달아 내놓은 것도 문재인 정부다.

박영선은 배달의민족을 상생의 모범으로 내세워 왔는데, 그곳 배달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와 수입 감소에 항의하고 있다. 박영선이 “기업이 근로자와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다”고 한 우버 역시 노동자들이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 투쟁으로 조건 개선을 쟁취하려 하고 있다.

박영선의 진정한 관심은 새로운 분야에 투자를 늘려 기업들이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에 있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공정’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 경쟁이 시장 지배 사업자들의 등장으로 귀결되기 마련인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치 않을뿐더러, 노동계급의 이익과도 관련이 없다.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대중이 박영선한테서 어떤 기대와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박영선은 신자유주의 우파인 오세훈과의 차이를 찾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오십보백보의 정치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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