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자회사 경비원:
자회사 가면 ‘불법업무’ 근절한다더니 1년째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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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로 전환된 기업은행 경비 노동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기업은행 사측이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약속한 ‘불법업무’ 근절이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업무란 경비 업무 외 일들을 경비원에게 지시하는 것이다.
4월 12일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공공연대노조 기업은행지부 소속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현실을 폭로하며 자회사의 실체를 규탄했다.
기업은행 경비 노동자들은 전국 611개 지점에서 근무하며 은행 안전과 경비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은행의 온갖 일에 투입되고 있다. 경비원에게 다른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현행 경비법에 위반된다.(지시한 사람과 수행한 경비원 모두가 처벌 대상.)
“지점에 근무하는 수많은 영업점 경비원들은 동전 교환, 주차 관리, 고객 응대 서비스, 각종 비품 구입, ATM 마감 업무, 수표 마감 업무, 대필, 전표 작성, 각종 기계 사용법 안내, 스마트뱅킹 등 수많은 은행 관련 업무를 지금 이 시각에도 하고 있습니다.”(기업은행지부 조합원 발언 중)
사실상 은행원 업무의 일부가 경비원에게 떠맡겨져 있는 것이다.
배재환 기업은행지부 지부장은 이렇게 규탄했다. “우리는 화재나 도난 혼잡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대처하기 위한 사람들이지 의전, 주차 관리, 임원들 동선 보고 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비 외 온갖 잡무를 지시하는 것은 모욕적일 뿐 아니라, 경비원의 노동강도를 높여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외주업체 시절, 경비원들은 1년마다 재계약했기 때문에 이런 부당한 처우에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다. 경비원들은 보통 지점당 한 명이기 때문에 더욱 원청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
“불법업무 지시 때문에 많은 것들이 일어나요. [거부할 시] 따돌림 문제, 자르겠다는 협박 등.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서 해당 지점 가서 투쟁하기도 했어요. ‘거절하면 잘린다’ 이런 게 공식처럼 돼 있죠.”(기업은행지부 조합원)
2019년 기업은행 사측은 불법업무를 근절해 주겠다면서 자회사 전환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전환 후 1년간 사측이 한 일은 고작 지점에 경비원 업무 지침 공문을 보낸 정도다. 형식적 수준에 그친 것이다.
반면, 사측이 지점에 부착하라고 한 경비원 수행 금지 업무 스티커 같은 아주 사소한 일조차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기업은행은 불법업무 지시를 근절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 조합원은 “근절이 된다고 공문은 내려오는 데 공문이 실행되지 않아요” 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불법업무 지시가 원청에서 직접 내려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불법파견 문제이기도 하다. 심지어 원청 은행원과 경비원이 같은 사무실을 쓰며 업무를 대놓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업무가 근절되지 않는 구조적 이유에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이 있다. 1997년 경제 위기 이전에는 현재 경비원들이 맡고 있는 업무를 은행 안내원들이 했다. 그런데 이들이 대규모 해고를 당하면서 업무가 경비 노동자들에게 넘어갔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경비원은 아예 외주화됐고 더욱 열악한 처지가 됐다.
이런 비용 절감 기조 속에서 기업은행 사측은 불법업무 근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다. 불법인 게 너무 명백해 말로는 근절하겠다고 하지만 말이다.
경비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하면 경비업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합리적 수준에서 업무를 분담할 수 있지 않겠냐고 제기한다. 하지만 기업은행 사측은 한사코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일은 일대로 시키면서 직접고용에 따른 조건 개선 부담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2019년 기업은행은 자회사 전환을 두고 ‘은행권 최초 비정규직 제로’라며 자랑했지만, 그 자회사의 노동조건은 결국 용역 시절과 다르지 않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불법업무와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