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사회주의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한 선배 사회주의자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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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친구들 앞에서도 사회주의자로서 당당했던 고등학생입니다. 얼마 전 저는 친구들 앞에서 삼성과 ‘메가스터디’의 독단적 운영을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넌 삼성장학생이잖아. 메가스터디를 싫어한다면서 메가스터디 책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 도대체 왜 비판하는 거지?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길래?”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이 말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넌 커피도 좋아하잖아. 사회주의자라면 커피도 마시면 안 되지! 그건 남아메리카 노동자들의 피땀이 서린 거라고”, “서울대 가고 싶어하는 건 뭐냐? 평등을 지향해야지”, “외교관을 하고 싶어하는 건 뭔데? 그것도 국가권력에 편입하려는 거 아니야?”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겉멋 든 사회주의자’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고민을 들은 친구는 말하더군요.
“이제는 자본주의 세상이야. 네가 아무리 사회주의 운운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네가 사회주의를 주장한다면 넌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야. 자본주의 세상에서 너는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겠지. 그리고 좌절하고. 난 네가 그렇게 되는 게 싫다.”
사회주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논리의 빈약함, 의지의 나약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선배 사회주의자의 답변
우선, 한국에서 고등학생으로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말했던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이 답변으로 약간이나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첫째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고, 둘째는 “이 사회를 바꾸고 사회주의를 건설 수 있을까”인 듯합니다.
둘째 질문은 좀더 긴 답변이 필요하므로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첫째 질문에 대해 먼저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개인적 반대나 개인적 저항의 합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입니다.
개인으로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그 사회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라 하더라도 이 사회에서 교육받아 서울대에 진학하고, 직업을 구하고,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들을 사용하고,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통렬한 비판자였던 마르크스도 자신의 생활수준을 중간계급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그 딸들은 교양있는 식자층 여성으로 길렀습니다.
물론 우리는 제3세계 혹사노동과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서열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반대하지만, 이것은 몇몇 개인이 거부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중 운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끝으로, 외교관이 되고자 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외무고시를 준비하게 되면 현실의 운동과 멀어질 뿐 아니라, 국가의 고위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지배계급의 일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떤 외교관이 노동운동의 규율을 완전히 존중한다는 진지한 태도로 사회주의 운동에 조건 없이 동참한다면 우리는 그를 배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매우 드물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강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