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작지만 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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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부터 9월까지 광저우 근처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마을 타이스
투쟁의 규모는 크지 않았음에도 중앙 정부는 이 사건을 2003년 사스 발병이나 파룬궁 사건과 같은 급으로 취급했다.
투쟁은 지난 7월 말 마을 주민 4백 명이 촌민위원회 주임
상급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묵살했을 뿐 아니라, 9월 12일에는 폭동진압 경찰과 용병 1천 명을 동원해서 타이스 촌을 습격했다.
용병들은 외부 인권활동가와 외신 기자들을 마구 구타했고, 당 관료들은 집집마다 방문해서 파면동의안 서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마을에 접근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신문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보도를 보면, 모든 집에는 체포당한 가족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
한 언론이 지적했듯이 타이스 촌에 일어난 일은 오늘날 중국에서 아주 흔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먼저 마을 사람들만이 아니라 인권 활동가들이 개입해서 함께 싸웠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둘째, 탄압 시기가 9월 초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 시기와 맞아 떨어졌다. 이 회의를 전후해 후진타오는 중국 사회의 민주적 개혁에 대한 많은 약속을 했고, 9월 5일에 원자바오는 지방선거 대상을 촌뿐 아니라 더 상위 단위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마을 주민이나 인권 활동가들은 원래 중앙이나 상급 정부에 반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중앙 정부가 정해 놓은 법
타이스 투쟁에 적극 개입한 인권활동가 루방례
그러나 상급 정부는 타이스가 부패로 얼룩진 광둥성 지역에 도미노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결국 중앙 정부의 민주주의 확대 약속은 진지하지 않은 것이었고, 10월 19일에 국무원이 발간한 민주주의 백서에는 선거 확대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었다.
주민과 인권활동가들의 장기 투쟁이 중국 정부의 말과 행동 사이의 위선을 폭로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타이스 촌의 투쟁은 자체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압력을 받은 중앙 정부는 내년에 광둥성 모든 촌의 회계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더 중요한 의의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마을의 투쟁을 고무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활동가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기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