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서평
마이클 로버츠의 신간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경제 전망, 인공지능, 현대화폐론 등을 날카롭게 분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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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세계경제와 그 미래를 담은 유용한 책이 출간됐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저자 마이클 로버츠의 블로그는 최신 경제 동향을 꾸준히 분석한 글로 가득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수년간의 블로그 글과 논문을 잘 엮어 냈다.
1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과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응을 살핀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의 경제 위기가 단지 코로나19 때문이 아님을 잘 알게 된다.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직전 세계경제 성장률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제2차세계대전 말 이후 처음으로 생산량 자체가 줄었고,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가 있기 전부터 미국·유럽 기업의 10~20퍼센트는 영업 비용과 대출 이자를 감당할 만큼의 이윤도 벌지 못했다.(42쪽)
그러면 독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임계점’이었을 뿐이라 해도 팬데믹이 잦아들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까? 회복은 요원한가? 자본주의는 과거에도 위기를 헤치고 나아가지 않았나?
마이클 로버츠는 답한다. “V자형 회복은 고사하고 (지난 10년간의)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다.”(53쪽)
저자는 19세기 말의 불황부터 지금의 장기불황, 경기침체의 특징과 양상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팬데믹 불황에서 회복이 이뤄질 테지만 향후 수년간은 이전 성장 추세를 밑돌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허약한 ‘[거꾸로 된] 루트(√)형’ 회복의 양상을 띨 것이다.(53쪽)
2부에는 팬데믹 불황에서 누가 가장 이득을 봤고 가장 타격을 입었는지를 다루면서, 독점, 인공지능, 주식, 경기부양책 관련 쟁점에 대해 명쾌하게 분석한다.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는 IT 대기업들, 이른바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기업들의 탐욕이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점일까?
마이클 로버츠는 자본주의 역사를 짚으며, 철도, 석유, 자동차, 금융, 통신의 ‘독점적’ 지위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님을 보여 준다. 심지어 1911년 미국 석유기업 스탠더드오일은 의회에 의해 34개 기업으로 분할됐지만 여전히 그 후신들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94쪽)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게걸스런 인수합병, 납품단가 후려치기, 특혜 로비뿐 아니라 기술 혁신도 FAANG 기업들의 성공 요인이다.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키거나 독점을 해체해서 ‘경쟁’을 복원하면 위기가 해결되리라 봐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에 대해서도 저자는 풍부한 설명을 내놓는다. 로봇 도입의 현황과 흐름, 로봇 도입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은 노동시간, 로봇과 인간의 관계,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기술 진보의 필요성과 그 장애물 등.
주식과 실물경제의 관계와 그 추세, 팬데믹 이후 경기부양책의 특징과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2부의 주요 주제이다. 특히 독자는 바이든의 경기부양책에 관한 저자의 분석에서 이 책의 유용성을 거듭 확인할 것이다.
3부 경제 위기 원인과 대안 논쟁에서는 체계적인 화폐 분석론이 돋보인다.
좌파 일각의 환영을 받는 현대화폐론의 핵심 주장과 한계가 잘 소개돼 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화폐론은 화폐가 마치 ‘중력’의 작용과 같은 가치법칙에 매여 있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확장하는 것으로 본다. 미국·호주를 주된 배경으로 한 현대화폐론의 처방은 ‘신흥’국에 초인플레이션 같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저자는 장기침체의 결과와 원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기적 금융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수익성에 차질을 빚는 자본주의의 고질병, 즉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다. 자본가들이 사활을 거는 생산성 증대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사용된 노동력의 가치에 비한 생산수단 가치의 비율) 상승을 동반한다.
그러나 노동력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증거가 있나? 이를 증명하는 실증적 논거들이 살뜰하게 잘 제시돼 있다. 세계의 이윤율, 세계 이윤 폭, 지역별 나라별 자본 순 수익률, 영국의 이윤율과 기업 투자, 금융이윤과 총부채 등등. 성실하게 경제 데이터를 꾸준히 정리하고 연구하는 백전노장 마르크스주의자의 진면목을 거듭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에 빠진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면 되지 않을까? 독자가 던질지 모를 이 질문에, 마이클 로버츠는 비효율적 ‘좀비’ 기업을 ‘청산’하려면 새로운 불황이 필요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고 말한다.
내 보기에, 어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더 공부하려는 욕구가 생겨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주문하거나 책장 어느 구석에 박혀 있던 《자본론》의 먼지를 털어 내고 다시금 열독할지 모른다.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위기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