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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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이 벌어지면서 노동자들의 생계 비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류 경제학 내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항구적”일지, “일시적”일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벌어지는 현상)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경기 후퇴를 동반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팬데믹 하에서 극단적으로 주저앉았던 경기가 복구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지만, 교란됐던 공급망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고 일부 부문에서는 노동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물가를 급격히 끌어 올리고 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일 것이라고 보든 아니든, 우리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임금 인상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사고 난방을 하는 문제는 미래가 아니라 당장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코로나19로 경기 회복이 다시금 지연될 가능성은 일단 논외로 하고).
주류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으로도 온전히 이해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은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 복잡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인플레이션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요인에 주로 달려 있다.
첫째는 자본 순환에 화폐를 공급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화폐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또 파괴된다. 특히 최근에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내고 그 돈으로 은행한테서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양적 완화”)으로 화폐를 대거 공급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대규모 양적완화에도 물가가 하락했던 것은, 이렇게 생성된 화폐가 금융권에만 머물러 있으면 인플레이션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줬다.
하지만 금융권을 넘어 좀 더 광범한 자본주의 경제 영역으로 돈이 흘러들어 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거대 기업 두세 곳이 장악한 부문에서 기업들이 수익성 하락을 만회하려고 시장 장악력을 이용해 가격을 올리는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잠재력은 더 커진다.
둘째는 축적 과정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안와르 샤이크는 자본축적률은 높은데 이윤율이 낮을 때 인플레이션이 벌어진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수요의 많은 부분을 자본 축적이 차지하기 때문이다(일부 주류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 수요만을 생각하지만). 1970년대에 벌어진 스태그플레이션도 이런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시 축적은 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지만 이윤율은 빠르게 떨어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축적 속도가 꽤 낮아졌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가 “장기 불황”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이다.
물론 국가 주도로도 자본 축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중앙은행이 만든 화폐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투자에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국가가 민간 부문의 낮은 투자 수준을 상쇄할 정도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결국 잦아들고 다시금 장기 불황의 패턴(상대적으로 취약한 성장, 비대해지고 불안정한 금융 시스템, 국가와 중앙은행의 저금리 등 지원책에 의존하기)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배계급이 인플레이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지배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지배자들이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금리를 올리기로 한다면, 세계경제의 상당 부분이 기대고 있는 신용 거품이 터질 위험이 있고, 그리되면 수익성이 낮은 기업들이 파산할 것이다.
특히 중국 때문에 위기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중국은 세계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아주 중요한 나라지만 지금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이 앞서 수십 년 동안 겪었던 문제들(수익성 저하, 경제 성장이 갈수록 신용에 기대는 것, 금융 불안정)을 겪고 있다.
장기 불황 때 나타난 패턴으로의 복귀든 신용 거품의 붕괴든, 자본주의의 깊은 구조적 문제(낮은 수익성, 최상위 기업들의 거대한 규모, 비대해진 금융 시스템)가 다음번 위기를 낳을 것이다. 언제가 됐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