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성명:
카자흐스탄 항쟁 지지한다. 러시아는 개입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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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푸틴이 카자흐스탄 시위 진압을 위해 대규모 파병을 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인 ‘사회주의 경향’이 1월 8일 성명을 발표했다. 푸틴은 카자흐스탄의 시위가 미국이 배후에 있는 ‘색깔 혁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성명은 카자흐스탄 노동자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지와 연대 확대를 호소한다.
1월 초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시위가 분출했다. 이 시위는, 자동차 연료 가격이 리터당 50텡게[140원]에서 120텡게[330원]로 배 이상 오른 데 대한 노동자들의 항의 시위로 시작됐다.
시위는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된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 특히 노동자 투쟁의 역사가 깊은 자나오젠시(市)에서 시작됐다. 2011년 자나오젠의 광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는데, 당국은 국가 폭력으로 대응했고 노동자 시위대에 발포도 했다. 당시 노동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타협할 뜻을 전혀 보이지 않자, 시위는 악타우·자나오젠·아티라우 등 카자흐스탄 서부 도시들뿐 아니라 전국으로 번졌다. 현재 항쟁은 우랄스크·악퇴베·코스타나이·누르술탄·파블로다르·타라즈·쉼켄트·키질로르다 등을 휩쓸었다. 카자흐스탄 남동부 도시 알마티는 무력 충돌이 가장 첨예한 곳이다.
정부는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연료비 인상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지만, 뒤늦은 것이었다. 이는 시위가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번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위대가 요구를 확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요구들은 광범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관계들과 연관이 있다. 아래는 카자흐스탄 노동자들의 요구 중 일부다.
- 정권 교체
- 혁명가로 인정받는 인물의 집권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와 그 일파 모두를 ─ 현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를 포함해 ─ 완전히 몰아낼 것
- 모든 주와 시에서 ‘아킴’(시장·주지사) 직선제 도입 (현재는 중앙정부가 임명한다.)
- 1993년 헌법으로의 복귀 (당시 헌법은 오늘날 헌법과 차이가 있는데, 예컨대 국가의 입법 기관이 국회가 아니라 ‘최고소비에트’였다. [현재의 의회는, 나자르바예프가 1994년 부정선거 의혹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당시의 최고소비에트를 해산시킨 뒤 세운 것이다.])
- 인권 운동가, 정치 운동가들을 처벌하지 말 것
- 주택 가격, 공공시설 이용료 인하
- 식료품 가격 인하
- 모든 노동자의 임금 인상
- 상병 수당 인상
- 연금 인상
- 퇴직 연령을 남성 60세, 여성 58세로 낮출 것
- 연료비 인하
- 아동복지 확충
이런 요구들을 봤을 때, 카자흐스탄 노동자들이 이번 시위를 이끄는 주요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유재산의 자유 확대나 법인세 인하 같은 요구는 여기서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시위에 나선 대중 사이에서 부르주아지나 프티부르주아지의 영향력이 작음을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당국이 시위대의 요구를 전부는 고사하고 상당 부분 들어주는 것도 불가하다는 태도를 드러내자, 시위는 전면적 반란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채굴 산업에서 전국적 파업이 벌어진 것도 정부의 처지를 악화시켰다.
이 항쟁은 폭력 수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항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각급 정부 청사 건물들로 쳐들어가고, 군인과 경찰을 생포해 무장 해제시키고, 총기 상점에서 소형 화기를 탈취[해 무장]하고, 바리케이드를 쌓고 거리를 순찰한다.
이런 모습은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중 하나인 알마티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알마티에서 항쟁 참가자들은 알마티 ‘아키마트’(시청)를 점거한 후 불태워 버렸고, 대통령궁에 불을 질렀고, 시 경찰청과 군 사관학교를 습격하려 했다. 한때 보안 병력이 알마티에서 전면 철수하기도 했다.
정부 측은 항쟁에 나선 사람들이 절도와 약탈을 일삼는다고 매도했다. 하지만 항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약탈범을 수색·저지하기 위해 순찰을 자체적으로 조직했다. 몇몇 미확인 보도에 따르면, 정부 당국이 절도와 약탈을 부추길 목적으로 수감 중인 범죄자들을 고의로 풀어줬을 수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 토카예프가 시위 분출 얼마 후 몇몇 타협을 했음을 지적할 만하다. 토카예프는 연료비 인하 및 동결, 내각 해산, 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에서 해임하고 토카예프 자신이 의장직을 맡도록 하는 등의 명령을 발표했다. 마지막 항목이 중요한 것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자신의 후계자인 토카예프를 대통령에 임명하고 권력을 이양한 뒤에도 여전히 정부 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자기 딸과 함께 러시아에 숨어 있다.
문제는 현 대통령 토카예프에게는 개혁을 시행하고 항쟁의 요구를 수용할 구체적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항쟁이 계속되는 데에는 이런 점이 영향을 주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군대와 경찰 병력 일부가 항쟁 편에 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장 군인과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향한 무력 사용을 거부하고, 몇몇은 시위대 측에 합류하고 있으며, 부대 하나가 장갑차들을 끌고 항쟁 측으로 넘어왔다는 등의 증언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
러시아와 CSTO의 반혁명적 개입
상황이 급박하게 발전하면서, 토카예프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으로 상황을 진정시킬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그래서 1월 5일 토카예프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후 토카예프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대표를 보내, 카자흐스탄에 개입해 “국가의 안정을 회복”해 달라고 요청했다. CSTO가 외부의 위협을 막기 위한 집단 방위 조약이라, 토카예프는 이 항쟁이 외부 세력과 “테러리스트”의 소행이고 외세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주장해야 했다.
CSTO는 토카예프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자흐스탄에 파병키로 했다.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에 개입한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병력 3000명), 벨라루스(500명), 타지키스탄(200명), 아르메니아(70명).
키르기스스탄은 처음에는 카자흐스탄 파병을 거부하고 카자흐스탄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진압 작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파병 반대 시위가 벌어진 것과 연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월 7일에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파병 명령에 서명했다.
벨라루스·타지키스탄·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은 현재 러시아의 반(半)식민지이고 러시아 제국주의에 종속적인 위치다. CSTO 회원국들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대등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러시아의 뜻에 군사적·정치적으로 종속돼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가 “신속한 승리”를 얻어내는 데에 또 한 번 실패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오히려 러시아군이 카자흐스탄에서 오랫동안 주둔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러시아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몇몇 다른 갈등들과 결합돼, 카자흐스탄 주둔은 장기적으로 반동적 푸틴 정권의 몰락에 일조하게 될 수도 있다.
러시아 병력이 카자흐스탄에 장기 주둔하게 되면, 우크라이나의 “인민공화국”(LPR)·도네츠크인민공화국(DNR) 운동과 유사한 “공화국” 분리주의 운동이 카자흐스탄에서도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국수주의자들과 관련 언론인들은, 러시아계 주민과 러시아어 사용자가 다수인 카자흐스탄 북부를 점령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이 국수주의자들은 카자흐스탄 내 러시아계 주민들이 인종 적대와 러시아 혐오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의 카자흐스탄 간섭과 러시아 국수주의자들의 카자흐스탄 점령 주장이 러시아 혐오를 촉발했음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카자흐스탄에서 항쟁을 벌이는 노동자들 사이에 반(反)러시아적 주장이나 정서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카자흐스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인종 적대, 쇼비니즘,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요구·슬로건을 내걸고 있지 않다. 그런 것들은 러시아 국수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1월 7일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소요와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알마티에서는 혁명 지지자들과 군대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군들이 시위를 진압하려 카자흐스탄에 도착하고 있다. 정부의 병력과 반정부 시위대 양측 모두에서 이미 사망자가 수십 명, 부상자는 수백 명을 헤아린다. 시위대 3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카자흐스탄 항쟁에 대한 광범한 지지·연대가 필요하다. 외세의 개입에 맞서 혁명이 승리하려면, 파병국들 본토에서 벌어지는 대중운동의 구실이 중요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벌어진 내전 때도 침략군을 보낸 나라들에서 거대한 파업이 벌어졌고, 그 나라 노동자들은 러시아 노동계급 형제자매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가담하기를 꺼렸다.
이런 과거의 교훈을 우리 모두는 오늘날 나아가야 할 선례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