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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서방의 딜레마

얼마 전까지도 서방 정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어떤 조건으로 언제 협상을 하는 것이 좋을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파이낸셜 타임스〉 외교 문제 수석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국 푸틴의 뜻대로 될 것인가?” 하고 물었다(‘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5월 31일치).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러시아군이 돈바스에서 진군하고 있다. 푸틴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의 산업 중심 도시들을 장악하고 해상을 차단시킬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가 독자 생존이 가능한 국가로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는 분명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전쟁 프로파간다가 난무하고 있음을 감안해도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편 다 인명·무기·공장설비·사회기반시설 등의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매일 100명씩 죽는다고 말했다. 전사자 수를 부풀렸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젤렌스키는 무기 제공 속도를 높이라고 서방 정부들에 촉구하는 수단으로 전사자 수를 이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특히 사정거리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다연장로켓(MLRS) 제공을 미국에 끊임없이 요청했다. MLRS는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에 있는 군사 시설 등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이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러시아의 반격으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될까 봐 우려해 제공을 거부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출처 미 육군

그 대신에 바이든 정부가 타협책으로 내놓은 게 사정거리 70∼80킬로미터 중거리 유도 다연장로켓(GMLRS) 지원이었다.

그러자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로켓 무기를 공급하면 새로운 타격 목표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6월 5일 러시아군은 전략 폭격기를 동원해 키예프(키이우)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재개했다.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마지막으로 공격한 지 38일 만이다.

러시아군의 손실도 막대하다. 러시아는 손실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5월 초순까지 러시아군 탱크 1170대가 파괴됐다(러시아 전체 탱크 전력의 40퍼센트).

서방의 제재 때문에 러시아가 무기를 보강하는 데 애로가 있다.

“러시아는 현재 반도체가 부족해 식기세척기와 냉동차에서 컴퓨터 칩을 빼 군사 장비에 사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전투에서 약 1000대의 탱크를 잃었고, 러시아 탱크 제조업체 두 곳이 부품 부족으로 생산을 중단했다고 주장한다.”(위에서 인용한 래크먼의 칼럼)

군사·경제 면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혀 대칭적이지 않다. 2020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은 1조 4000억 달러로, 우크라이나(1400억 달러)의 10배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세계 2위로, 22위인 우크라이나보다 월등하다.

따라서 서방 국가들의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는 패배할 게 뻔하다. 그러나 서방의 지원에는 딜레마가 있다.

먼저, 서방 지배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재앙적인 세계 대전으로 확산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바이든은 5월 31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국이나 동맹국들이 공격받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하거나 러시아군을 공격해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와 벌이는 대리전에서 물러설 생각은 결코 없다.

또 다른 딜레마는 서방의 경제 위기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양날의 칼이다.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지만, 동시에 유럽연합(과 미국)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과 프랑스는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6월 4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프랑스가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밝혔다. “러시아에 굴욕감을 줘서는 안 된다. 그래야 싸움이 멈춘 날 외교적 수단으로 출구를 만들 수 있다.”

이 말이 솔직하게 뜻하는 바는, 돈바스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남부 전체의 ‘독립’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외교장관 드미트로 쿨레바는 “그런 말은 굴욕적”이라고 발끈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런 타협 압력에 반발하며 확전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확전이 핵 재앙의 위험에 더 가까워지게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러시아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반전 운동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무기 제공 요청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