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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간통죄 합헌 결정

헌재의 간통죄 합헌 결정

정진희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가 합헌이라는 매우 보수적인 판결을 내렸다. 현행 법에 따르면 결혼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맺게 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판결이 “선량한 성 도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선량한 성 도덕인가? 단지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처넣는 것이 선량한 일인가? 간통의 증거를 찾기 위해 미행하고 도청해 “현장”을 덮치는 게 선량한 일인가? 보수주의자들은 결혼한 부부가 서로 “성적 성실”을 지키는 게 “의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부일처제야말로 사랑의 가장 숭고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성 도덕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가장 배타적인 지배욕일 뿐이다. 오직 지배와 애정을 혼동하는 사람만이 간통죄가 부부 간의 애정을 지켜 준다고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신뢰와 애정이 깨진 부부가 서로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간통죄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깨어진 애정이 국가 권력의 간섭으로 되살아날 리는 결코 없다. 오히려 간통죄는 애정이 아니라 냉혹한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많은 경우 간통죄는 이혼 때 더 많은 위자료를 챙기기 위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배우자만이 상대방을 간통죄로 고소하고 또 고소를 취하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하고 지루한 민사 소송을 거치기보다 간통죄로 고소하는 게 위자료 협상에 훨씬 유리하다. 간통죄는 부부 사이에서 상대방을 독립적 인격으로 존중하는 평등한 태도 대신 지배욕, 복수심, 냉혹한 이기심만 부추긴다.

여성 보호?

간통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른 고상한 동기를 끌어 댄다. 간통죄가 약자인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여성 단체들 내에서도 이런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외도하는 남편을 혼내 주고 이혼할 때 여성이 위자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간통죄를 지지한다.

그러나, 간통죄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단지 남성만이 아니다. 성관계에는 상대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간통죄로 남편과 함께 처벌받을 사람은 거의 다 여자다. 위자료 협상에서 유리한 것은 여성이 고소자일 때 그렇지, 고소당한 여자 쪽에서는 반대다. 그녀는 한순간에 무일푼으로 나앉을 수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이중적 성 도덕 때문에 간통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격렬하게 쏟아진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으레 ‘외도’하는 사람이 남자라고 가정하지만, 오늘날 적잖은 여성들이 혼외 성관계를 한다. 한국성과학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15퍼센트가 혼외 성관계를 맺었다.

오늘날 성에 대한 개방적 사고가 확산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도 혼외 성관계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지 않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간통죄가 여성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성이 결혼 관계 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보수적 성 관념일 뿐이다.

일부일처제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간통죄는 여성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적 관념을 강화시킨다. 간통죄가 근거하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그리는 이상적 여성상은 남편과 아이에게 순종하는 주부다. 성 개방 풍조에도, 간통죄를 고수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가족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보수주의자들은 지금의 가족 제도가 가족 구성원들의 욕구와 필요를 가장 잘 충족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가족이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많은 가정 내에서 크고 작은 폭력이 벌어지고 끊임없이 다툼과 각종 불화가 일어난다. 많은 부부가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신뢰 때문이 아니라 금전적 능력 부족과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마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족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이혼이 갈수록 증가하고 많은 청소년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있다. 가족의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하는 역할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대다수 가족은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 노동자들을 값싸게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를 돌보고 노인과 병자를 돌보는 등의 일이 개별 가정에 떠넘겨짐으로써,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이 생기고 종종 폭발한다. 가정 예찬은 사회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일들을 가족 구성원들이 묵묵히 떠안도록 하기 위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다. 지배자들은 사회를 통제하는 데 가정 가치관을 이용한다. 사람들의 시야를 사회 전체가 아니라 협소하게 자신의 가정 내로만 돌리도록 강요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보수적인 가정 가치관은 거부돼야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영속적 결합과 배타적 소유권을 보장하려는 일부일처제는 결코 인간 본성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재산을 상속할 필요가 생겼을 때 생겨났다. 인류 역사는 늘 다양한 성적 관계와 결혼 형태가 존재했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독신 등.

일부일처제에 대한 강요는 수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있다. 그것은 가족 내 전통적 분업을 강요함으로써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정당화한다.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미혼모나 독신자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일부일처제 강요는 사람들의 성과 사랑을 터무니없이 협소한 경계 속으로 가둬 놓고 있다. 돈이나 지위, 주위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어 가는 관계가 아니라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성애를 할 자유가 필요하다. 고루한 성 관념을 강화시키고 사람들의 심리를 뒤틀리게 만드는 간통‘죄’는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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