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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저항의 목소리

〈Legend〉
밥 말리(Bob Marley)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저항적 레게음악의 선구자 밥 말리와 그의 백밴드 웨일러스(울부짖는 이들)의 합작물이자 히트곡 모음집인 (1984)는, 자메이카 토속음악 특유의 타악감이 짙게 배인 기타와 드럼 라인을 바탕으로 단조롭지만 아름다운 화성과 리듬을 선사하고 있다. 십여 장의 정규 앨범을 포함해 말리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한 이 음반은, 모든 트랙이 유명하지만 그 중 특히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구를 지닌 ‘No Woman, No Cry’나 ‘Get Up, Stand Up’과 같은 곡들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대개 4박자의 한 마디 안에서 ‘약강약강’의 주기성을 갖고 진행되는 스카 리듬과 미국 리듬 앤 블루스의 악곡 및 음향적 요소가 적절히 혼합됨으로써 탄생한 레게는, 아프리카와 흑인의 본래성을 강조하는 신앙인 라스타파리아니즘의 교리와 정신적 접목을 이루며 밥 말리의 음악 세계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여기에 그만의 탁월한 음악적 창조력과 순수주의가 깃든 문학성이 발휘되어 말리는 적잖은 명곡들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노래에는 인본주의적이고도 정치적인 문제의식이 다소 감상적인, 하지만 직설적인 가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나는 미국 땅 중심부의 버팔로 군인, 아프리카에서 갈취당해 미국으로 끌려왔지”(‘Buffalo Soldier’), “나의 사랑이여, 일어납시다!”(‘Stir It Up’),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라”(‘Redemption Song’) 등의 노랫말은 그가 경험하고 느꼈던 고민과 아픔과 저항의 확성기였다. 밥 말리는 스스로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며 끊임없이 자기 음악의 미학적 가치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3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는 1962년 독립을 쟁취하지만, 당대의 냉전 구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독립 초기에는 친미 성향의 자메이카노동당(JLP)이 의회를 주도했지만 1972년에 이르러서는 국가자본주의의 제스처를 취한 인민국가당(PNP)이 정권을 잡았고, 이 과정에서 자메이카는 극심한 혼란기로 접어든다.

1978년 밥 말리는 ‘One Love Peace Concert’라는 공연을 기획해 양 당 지도자들이 무대 위에서 서로 손을 잡도록 만든다.

그러나 ‘표면적 화해’가 있은 지 얼마 안 돼 1980년 총선 과정에서 수도 킹스턴에선 5백여 명이 사망하는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를 통해 승리한 자메이카노동당은 즉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나갔다. 1989년 정권 재탈환에 성공해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는 인민국가당도 이전보다 더 우경화해 전형적인 친자본주의적 정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음악(혹은 예술) 자체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그와 같은 예술인들의 존재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하다. 그들은 단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뿐 아니라 저항에 동참했고, 이런 일은 대중 운동의 영향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올 겨울엔 밥 말리의 따뜻한 목소리를 한번쯤 들어보는 건 어떨까. 말리 아저씨의 노래만큼이나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 그리고 투쟁의 겨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