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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 피습을 이용한 이슬람 혐오에 넘어가지 말라

류수디는 식민주의와 서방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흑인·아시아인들을 지지한 것으로 유명했다 ⓒ출처 Fronteiras do Pensamento(플리커)

소설가 살만 루슈디가 뉴욕에서 칼에 찔리는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범인이 누구든 이 사건으로 이슬람 혐오가 더한층 기승을 떨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반동에 맞서야 한다.

루슈디는 지난 금요일 한 문학 행사가 끝날 무렵 무대 위에서 습격을 당했다. 루슈디의 문학 에이전트에 따르면, 13일 아침 현재 루슈디는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루슈디가 한쪽 눈을 실명할 수 있다고도 했다.

루슈디는 1981년에 《한밤의 아이들》로 명성을 얻었는데, 이 책은 영국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렸다. 루슈디는 인도에서 나고 자란 후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식민주의와 서방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흑인·아시아인들을 지지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루슈디는 1988년에 네 번째 저작 《악마의 시》를 출간한 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이 책에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호색한에 부도덕한 거짓 예언자로 묘사된다.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루슈디와 이 책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수많은 무슬림은 이 책의 출간을 고의적 무슬림 비방으로 여겼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무슬림 적대 물결이 거세질 때였다.

루슈디는 자신이 무슬림을 비방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소설은 허구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영국의 많은 무슬림은 이 책을 분노의 초점으로 삼고 반대했다. 당시 영국의 무슬림은 10년간 계급 전쟁을 벌여온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하에서 대량 실업과 혹심한 인종차별을 겪고 있었다.

1984~1985년 영국 광원 파업이 패배한 후 강력하고 단결된 노동계급 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루슈디는 손쉬운 분노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이는 분노의 대상을 잘못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저 루슈디를 방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파와 자유주의자들은 “루슈디 사건”을 이용해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무슬림이 서구 ‘문명’을 위협한다’는 거짓 신화 퍼뜨리기에 더한층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유럽 안에서는 온갖 입법으로, 유럽 밖에서는 전쟁으로 무슬림을 격퇴하자고 떠들어 댔다.

1989년에 벌어진 무슬림 공격은 훗날 2001년 9·11 공격을 계기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 동안 훨씬 강화된 무슬림 공격의 맛보기에 해당했다.

〈데일리 메일〉 신문은 “누가 무슬림에게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했는가” 하고 격노했다. 〈데일리 스타〉가 브래드퍼드 모스크협의회 간사를 비난하며 쓴 사설의 제목은 “꺼져라”였다. 〈선〉은 “살인마들이 설 자리는 없다”고 썼다. 〈인디펜던트〉는 귀에는 덜 거슬리지만 똑같이 독살스러운 어조로 “상호 간의 아량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는 루슈디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루슈디는 은둔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소셜리스트 워커〉와 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는 아시아인 공동체의 가장 반동적인 부위가 백인 사회의 가장 반동적인 자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편견을 강화시켰다.

“그래서 〈선〉이 아시아인을 쥐새끼에 빗대면서 나를 지지한다고 하는 것은 달갑잖은 일이다. 거기서 나는 〈선〉의 편이 아니다. 나는 차라리 쥐새끼의 편에 서겠다.”

우파 내의 영향력 있는 일부는 루슈디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자들을 두둔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설령 그가 무슬림의 표적이 돼 있을지라도 말이다.

보수당 총리 마거릿 대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종교와 관련해서도 우리 중 일부에게 심각한 모욕감을 주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그런 일에 매우 감정적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일이 지금 이슬람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대처는 “위대한 종교들”이 “비판자들의 이름이 잊힌 후에도 오래도록 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처의 심복이었던 노먼 테빗은 루슈디의 삶이 “그를 길러준 고향[인도], 종교, 제2의 고향[영국], 국적에 대한 비열한 배신 행위로 점철돼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루슈디는 반제국주의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루슈디는 1999년 나토의 옛 유고슬라비아 폭격과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지했다. 그러나 루슈디는 ‘폭격기 자유주의자들’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을 충심으로 지지한 것에 부화뇌동하지는 않았다.

훗날 루슈디는 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베일이 “여성에 대한 제약”을 상징하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했다. 루슈디는 2007년에 전쟁광 토니 블레어 정부하에서 기사 작위를 받을 만큼 무해한 인물이 됐다.

〈소셜리스트 워커〉는 “검열도 인종차별도 반대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1989년 2월에 나온 〈소셜리스트 워커〉 신문 1면은 종교를 비판할 루슈디의 권리를 옹호했지만 “모든 이들이 자신의 종교 생활을 할 권리”도 옹호했고, “역겨운 인종차별적 배제에 맞서” 아시아인들을 방어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우파가 이슬람 혐오를 한층 더 부추기고 있기에, 1989년에 외친 이런 사회주의적 주장을 다시금 외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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