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혐오 ― 인종차별적 편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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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난민을 거부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에 수십만 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런 난민 비난은 이슬람·무슬림 혐오적 거짓 선동을 기초로 했다. 인도 출신의 영국인 사회주의자 탈라트 아흐메드가 이슬람·무슬림 혐오적 편견을 반박하며, 이슬람·무슬림 혐오가 어디서 비롯했고 어떻게 싸울지를 주장한다. 이 글은 2013년 9월에 쓰였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삽입한 것이다.
[2013년] 5월 울위치에서 일어난 영국인 병사 리 릭비 살해 사건을 계기로 무슬림을 향한 폭력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분출하고 있는데, 8월에 벌어진 할로 이슬람 센터 방화 공격은 그중 가장 근래의 일이다.
‘반(反)무슬림 공격 측정 프로젝트’는 릭비 살해 사건 이후 한 주 동안에만 이슬람 혐오 공격 212건이 일어났고 기록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532건이 일어났는데 말이다. 런던 경찰청은 울위치 사건 이후 무슬림을 향한 공격 신고가 런던에서만 여덟 배로 증가했다고 인정했다.
이런 공격들은 이슬람 혐오가 고조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언론은 울위치 사건의 범인들에게 “도축용 칼을 휘두르는 이슬람 광신도”라는 딱지를 붙였다. 모든 정당의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에게 이 사건을 분명하게 비난하라고, “선한” 무슬림이라면 영국에 충성심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설문조사에서 세 명 중 한 명이 무슬림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9·11 공격 이후 10년 동안, 무슬림을 테러리즘, 광신, 배척성과 엮는 것은 일상 언어의 일부가 됐다.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의 “정상화”는 어떻게 이슬람 혐오가 영국 사회에서 오늘날 인종차별의 최첨단이 돼 왔는지를 보여 준다.
그래서 나치 정당인 영국국민당이 “I.S.L.A.M.의 진실”(I.S.L.A.M.은 배척성, 대량 학살, 약탈, 방화, 성추행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이라고 제목이 붙은 전단을 배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은 주류 의식에도 깊이 침투해 왔다.
[2013년] 7월 [보수언론] 〈데일리 메일〉 신문은 TV 공영방송에서 무슬림의 성월(聖月)인 라마단 중에 매일 기도 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조롱했다. 그런 방송은 “분열을 초래”하고 “상스러운 일”이며 “지식인 기득권층의 반기독교적 편향” 중 일부라고 주장했다.
일상적으로 무슬림을 비하하는 것은 주류 문화 깊숙이 침투했다.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前) 감독인 론 앳킨슨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료 참가자가 스웨터를 [히잡처럼] 머리에 뒤집어썼을 때 “폭탄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죠?” 하고 물을 정도이다.
다양
이슬람 혐오의 부상은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모스크 건설, 첨탑 건립, 머릿수건이나 이슬람식 머리 스카프[히잡] 착용 등이 금지되면서, 이른바 유럽이 “이슬람화”되고 있다는 공포에 기반한 반무슬림 서사가 제도화해 왔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아네르스 브레이비크가 벌인 광란적 학살로 77명이 사망한 사건은 무슬림에 대한 이런 증오가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이슬람 혐오적 발언은 편견을 기초로 한다. 무슬림은 사회에 통합되기를 거부하고, 무슬림의 자녀는 영어를 말할 줄 모르고, 무슬림은 그들만의 폐쇄적 공동체 안에서 살고, 영국·유럽·“서구”의 가치에 적대적인 신앙과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의 책임을 그 사회가 아니라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에게 지운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면, 왜 많은 무슬림이 이슬람 혐오를 인종차별의 독특한 형태로 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횡행하는 이슬람 혐오를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 보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이슬람 혐오는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들에게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며, 무책임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기존의 인종차별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반무슬림 인종차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 혐오적 사고방식은 또한 이슬람과 무슬림을 획일체로 그린다. [그러나] 무슬림은 다른 “신앙” 공동체만큼이나 이질적이고 다양하다. 영국에 사는 무슬림만 해도 인도 아대륙, 서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중동, 터키, 동유럽에서 왔다.
이 무슬림 공동체들의 전통은 그들 고향 사회의 국민적, 민족적 특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슬람교는 다른 모든 종교처럼 유동적이고, 변화를 겪고, 발전 과정에서 여러 요소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변형된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무슬림은 계급으로도 나뉜다. 영국에서 “지역사회 지도자”로 여겨지는 무슬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간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 기반은 성직자 계층과 무슬림 사업가들이다. [2013년] 6월에 [보수당의] 런던 시장 보리스 존슨은 세계이슬람경제포럼이 런던에서 열리도록 초청했다. 그 목적의 하나는 런던에 이슬람 은행을 설립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런 자본가적 이익 단체들은, 사무실, 상점, 학교, 병원에서 일하며 도시 외곽 주택 단지에 사는 다수의 노동계급 무슬림과는 천양지차다. 이슬람 혐오, 더 넓은 인종차별, 경찰의 감시와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대체로 노동계급 무슬림이다.
선 대 악
“선한” 무슬림과 “악한” 무슬림을 가르는 것은 지배자들만이 아니다. 많은 자유주의적 평론가들과 일부 좌파도 이슬람주의를 극우나 파시즘만큼이나 나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한 방송인이 ‘릭비 살해에 대한 책임은 무슬림 공동체가 아니라 그 개인들의 광기에 있다’고 말한 것은 반가운 것이고 이슬람 혐오에 도전하는 것이었만, 그가 너무 나아가 릭비 살해범들이 영국수호동맹과 영국국민당의파시스트들만큼 광기에 차 있다고 덧붙인 것은 부적절했다.
이슬람주의를 파시즘과 동등하게 보는 이런 경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뉴레프트 리뷰》의 옛 편집자인 고(故) 프레드 할리데이는 1979년 이란 혁명을 “파시즘의 얼굴을 한 이슬람”이라고 묘사했다. 1990~1991년 제1차 걸프 전쟁 당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같은 자유주의적 평론가들과 할리데이는 “이슬람 파시즘”에 맞서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1989년 살만 루슈디의 [이슬람의 기원을 소재로 삼은] 소설 《악마의 시》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을 때, 당시 많은 좌파는 루슈디의 책에 반대하는 무슬림을 “분서갱유를 저지르는 나치”와 같다고 여기며 그들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이끌렸다.
사회주의자는 왜 차별과 천대를 당하는 사람들이 종교 사상을 신앙이나 정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는지 이해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슬람주의를 파시즘과 결코 동일시하지 않는다. 파시즘은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노동계급·노동조합 조직을 파괴할 도구로서 자신의 유용성을 지배계급에 인정받고자 하는 중간계급의 운동이다. [반면,] 이슬람주의 활동가들은 (그들의 정치의 약점이 무엇이든 간에) 왜곡되고 일관성 없는 방식일지라도 체제에 도전한다.
포섭과 탄압
인종차별의 한 형태로서 이슬람 혐오는 사회의 최상층에서 나왔다. 이슬람 혐오를 지배자들은 마녀사냥과 속죄양 삼기에 이용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 내 분열을 촉진하려고도 고안한 것이다. “이슬람의 위협”을 들먹이며 끊임없이 대중을 자극하는 것은 이주를 제한하고 “영국적 가치”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통행 금지령을 내리고 감시하는 가혹한 조처들과 함께 이뤄졌다.
울위치에서 비극이 벌어지자 급진주의 [이슬람] 성직자, 극단주의 웹사이트, 이슬람주의 조직을 옥죄는 법을 더 강화하라는 요구가 뒤를 이었다. 보리스 존슨은 대학들에게 이슬람교 동아리를 “감시”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내무 장관 테리사 메이[2018년 7월 현재의 총리]는 인터넷상의 “극단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메시지를 검열할 권한을 늘렸다.
[2013년] 6월 아시아계 남성 여섯 명이 영국수호동맹 행진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는 혐의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영국수호동맹과 영국국민당이 폭력, 인종차별, 반무슬림 학살 선동을 일삼는데도 경찰과 국가는 그들의 행위를 아주 관대하게 다루는데, 이와 대조적이다.
강압 정책은 포섭 전략과 결합된다. 울위치 사건 이후, 무슬림 지도자들과 지역사회 활동가들에게 영국적 가치에 헌신하고 동화되겠다는 의지를 보이라는 압력이 매우 확연해졌다. 마찬가지로 2005년 7월 런던 폭탄 공격 이후 많은 무슬림 활동가들이 수세에 몰려, 전쟁과 제국주의에 공공연히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받았다.
이런 전술은 새롭지 않다. 1980년대 당시 대처 정부는 전국적 소요 사태가 발생한 이후 흑인 지역사회의 일부를 포섭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도입했다. 당시 많은 활동가들은 노동당을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들의 대중 조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노동당의 흑인 부문으로 이끌렸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른바 “지방자치 사회주의”가 인종차별 반대 정책을 추진할 주요 수단이었다. 이는 런던광역의회 의장 켄 리빙스턴이 앞장서서 추진한 정책인데, 지방정부가 지역사회에 자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위로부터의 접근 방식은 지역사회의 각양각색 부문들이 민족적, 종교적, 언어적 정체성 별로 재정 지원을 신청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시대의 파편화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무슬림은 자신을 별개의 집단으로 본다.
이슬람 혐오에 직면한 일부 무슬림의 반응은 수세적이다.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를 바라며 세상에서 은둔하기를 택하거나 조용히 엎드려 지내자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단절되기를 택하면 이슬람을 대표하는 “상징”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특정한 종류의 옷만 입는다거나, 돼지고기나 술을 삼간다거나, 전통 혼례나 특정한 종교의식 준수 등 말이다.
이런 대응은 이해할 만하지만,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주의” 같은 구실을 한다. 이는 기존 제도 내에서 구별되는 “무슬림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선거 정치와 잘 어울린다. 이런 방식의 주된 약점은 이슬람 혐오의 뿌리에 도전하기보다는 모든 무슬림의 진정한 관심사와 불만이 개혁주의 전략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울위치 사건이나 2005년 런던 폭탄 테러로 이어진 급진 이슬람주의 사상으로 이끌렸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병사가 죽고 비행기와 사람이 납치당하든 상관없이, 국가를 위협할 수 없고 국가는 탄압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저항
이슬람 혐오와 싸우는 것은 인종차별에 맞서는 싸움의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 이슬람 혐오의 뿌리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압도 다수를 희생시키도록 조직된 사회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지배력을 결속, 지속, 강화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데서 언제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이용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이슬람 혐오는 인종차별 일반이 그렇듯이 계급지배의 수단이다. 우리는 계급사회의 물질적 조건을 제쳐 놓고서는 이슬람 혐오를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인종차별과 계급 분단을 기초로 하는 사회를 전복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