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개방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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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농민사망과 경찰폭력 규탄 운동의 도화선이 된 쌀 시장 개방 반대 투쟁은 노무현 개혁의 허구성에 대한 국민 대중의 분노, 농민과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도시 노동대중의 울분, WTO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감, 경제 위기의 부담을 부당하게 떠맡고 있다는 노동자·농민의 억울한 심정 등이 표출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도시 산업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 기존의 농업 이익을 희생시키는 농산물 개방을 추구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회주의자들이 지배자들의 쌀 개방 정책이 잘 시행되도록 그들에게 힘을 보태 줄 수는 절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이 농업의 특수 이익을 지지할 수도 없다. 한국산 농산물과 쌀의 가격은 국제시장 가격에 견주면 훨씬 비싸다. 그러므로 쌀이 개방되면 장기적으로 쌀값이 저하할 것이다. 완전한 수입자유화의 초기에는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가 관세로 흡수돼 국내가격의 대폭 인하가 없겠지만, 세율을 점차 낮춰가야 하므로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안정화 추세를 보일 것이다. 이것은 도시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일이다.
물론 농업 생산력(농업에서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영세하고 낙후한 한국 농업은 최악의 경우 쌀 생산 기반이 (밀과 면화의 경우처럼) 붕괴될 수도 있다.
식량안보론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식량 안보’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쌀 카르텔들이 담합해 쌀값을 대폭 인상한다든가, 아예 판매를 중지한다든가, 아니면 미국 농가들이 대흉작을 겪는다거나(실제로 1974년에 이런 일이 일어나 쌀값이 82퍼센트나 폭등했다), 미국이 전쟁에 휘말리면 어떡하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그러나 자본 간의 담합이 영구적일 수는 없다. 미국의 쌀 카르텔들이 상당 기간 독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세계 쌀 수출 1위국인 타이와 2위국인 베트남, 3∼5위국들인 중국·인도·파키스탄이 미국의 독점 체제를 동요시키고 파괴할 것이다. 미국이 판매를 중지해도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이 모두 미국을 따라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대흉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자본 간의 담합이 자본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얼마나 빈번히 수포로 돌아가는지 아주 잘 보여 주는 실례를 하나 들겠다. 냉전 시대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곡물 메이저들은 ‘철의 장막’을 넘나들며 어느 한 쪽에 얽매이지 않고 거래를 했다. 1976년 옛 소련에 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미국 정부는 소련산 석유를 국제 시세보다 싼 값에 넘겨주면 식량을 팔겠다고 소련 정부에 제의했다. 소련의 다급한 식량 사정을 감안해 미국은 소련이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소련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곡물 메이저들이 미국의 등 뒤로 소련에 식량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의 경우, 미국이 쌀 생산을 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게 전쟁에 휘말려 있다면, 그 때엔 쌀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대전이 문제이고 세계혁명이 당면 일정에 올라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이 식량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하는 것이 당면 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또, 쌀 개방 철회를 요구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국제 연대를 통한 식량 제공을 호소할 때인 것이다.
사실, 쌀은 없어도 일정 기간 동안 보리나 그 밖의 다른 곡물 또는 식량으로 때울 수도 있지만 석유가 없으면 단 몇 달도 버틸 수 없다. 석유는 이 나라에서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전체 원유 수입량의 80퍼센트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국제 석유 메이저들이 담합해 한국에 석유 공급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때 한국 산업은 완전히 정지될 것이고 민중은 쌀이 없을 때보다 더 혹독한 곤궁과 재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철광석의 경우도 석유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결국엔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좌파 민족주의자들에게 쌀보다 더 큰 골칫거리는 비농업 부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쇄국적인 국가자본주의 발전을 고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무역이 세계 지배자들에게 갈 길을 훤하게 열어 주지도 못하겠지만, 보호무역은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계 주요 공업국의 지배계급들이 모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불행히도 자본과 생산의 세계화는 특정 빈국 지배계급들의 동맹을 통해 패퇴시킬 수 없는 도도한 추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도 문제는 ‘자립적 민족경제’라는 신기루를 좇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국사회주의론은 확고히 패배했으며(1989/91년 옛 소련 블록 몰락이 증명한 것처럼),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것은 낡은 이데올로기의 잔재일 뿐이다.
농업붕괴론
어떤 사람들은 농가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고, 농업의 비중이 감소할 것이고, 이농(離農)으로 농업 인구가 감소할 것이고, 쌀 자급률이 90∼95퍼센트로 하락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사실 이 일은 그 동안 쌀을 개방하기 전에도 계속 일어난 일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농업에 별로 큰 흥미가 없는 데다(왜냐하면 농업 생산력 증대는 공업 생산력 증대에 도저히 견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농민은 부채와 낮은 추곡수매가와 각종 부과금(세금)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착취당해 왔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서 공업화가 진행돼 오는 동안 농민 수는 급속히 줄어들어 이제 농민은 전체 인구의 7퍼센트밖에 안 되는 3백50만 명이고, 농업의 비중이 급감해 왔고, 농가는 피해액을 메우기 위해 채무 부담을 지고 있다.
이농은 어느 나라든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데 필연적으로 따라다닌 현상으로 이것은 슬퍼하거나 기뻐할 일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세력과 단결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1세기 전에 나로드니키(제정 러시아 시대의 민중주의자들)는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으로 말미암은 농촌 공동체와 농업 자체의 파괴를 개탄하며 심지어 자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보지 않으려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플레하노프와 ‘합법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비록 농가를 파괴하긴 하지만 생산력 급증이라는 진보적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자본주의를 지지할 만하다고 암시했다.
그러나 레닌과 볼셰비키는 도덕론적으로 농민의 파멸을 애석해 하고 있을 일도 아니고 관조적으로 자본주의의 성장을 승인하고 묵종할 일도 아니라면서 진정한 관점은 자본주의가 증대시키고 있는 생산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생산력, 즉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세기 초 한국 사회주의자들도 동일한 변증법 논리에 따라야 한다. 즉, 농촌과 농민과 농업의 붕괴를 우려하며 한국 농업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앞으로 이농할 농민 출신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도록 노동계급의 조직과 결속을 강화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1994년 프랑스의 사례는 시사적이다. 프랑스 농민들은 막 파업 승리를 거둔 에어프랑스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격려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독립적인 힘(세력)으로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음을 농민들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실업자양산론
실업자가 대량으로 생겨나서 사회 불안 요인이 될 것이고 임금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주장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일 것이다.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쌀 시장 개방으로 농민들이 더 이상 농촌에 살 수 없어 도시로 몰려오면 직장 얻기가 훨씬 어려워지고 임금도 내려갈 것이다. 또, 집값도 뛰어 가뜩이나 어려운 내 집 마련이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노동력 시장에 유입되어 설사 실업이 늘어나고 임금 압박이 증대한다 할지라도 ― 그런데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흑인이 남부 노예주들로부터 해방돼 북부 도시로 오는 것을 지지한 마르크스는 실업 증대와 임금 압박을 걱정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 변혁의 진정한 동력이 오직 노동계급뿐이라고 확고히 믿기에, 농민이 노동계급으로 합류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더구나 실업자를 생산 과정으로 유입시키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책임이지, 이농한 상대적 과잉인구의 책임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장기 호황을 누리던 1997년 이전 거의 40년 동안 1천만이 훨씬 넘는 농민들이 필요한 가재 도구를 보따리에 싼 채 도시로 향했다. 1987년쯤에 농민은 한 해에 60만 명씩 도시로 이주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호황이었기에 실업은 문제로 제기되지조차 않았다. 미국과 영국에선 농민이 전체 인구의 각각 0.7퍼센트와 1퍼센트 남짓밖에 안 되는데도 실업 문제가 존재한다. 농민의 도시 유입이 실업의 원인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가 확장되기만 한다면 이농 인구는 대부분 생산 과정으로 유입된다.
농촌·농민·농업이 망한다는 두려움의 의미
빈농과 농업 노동자는 농촌에서든 도시에서든, 농업에서든 산업에서든 광의의 노동계급이기는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농촌·농민·농업이 망한다면 시름에 잠긴 계층들은 소농 이상의 농민들(소농·중농·부농)과 농업 관련(농약상·비료상·농기계상·종묘상 등과 창고업·운반업·도정업에 종사하는) 자본가들이다. 후자는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농업 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 부농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좌파는 없을 것이다. 결국 소농과 중농의 이해관계가 문제가 되는데, 농산물 개방 훨씬 전에도 그들을 몰락시켜 온 결정적 요인은 낮은 농업 생산력이었다.
적은 땅, 낙후한 기계설비류, 영세한 영농 규모, 낙후한 농경 방법 등이 소농과 중농을 높은 생산비로 고통받게 해왔다. 비록 2004년까지 정부가 국제시장 가격보다 높은(대략 한 가마에 4만 3천 원 가량 더 쳐줌으로써) 가격으로 추곡을 수매했지만, 농민들에게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빚을 져야 했으며, 원리금 상환 부담은 그들을 한층 더 높은 빚더미에 짓눌리게 만들었다. 과거엔 수세(水稅)가 큰 부담이어서 그것에 반대하는 격렬한 투쟁도 있었다. 그래서 수세를 폐지시키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아직도 이러저러한 공과금과 부과금이 존재하며 이것은 간접세의 형태로 농민을 착취하는 셈이다.
쌀 개방은 소농과 중농을 몰락시키는 근본 요인이라기보다는, 이미 진행되던 몰락을 가속시키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농민으로부터 쌀을 수매하는 가격과 방출하는 가격 사이엔 격차가 있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정부 보조금이었던 셈이다. WTO와 함께 보조금이 없어지게 돼 있는데, 바로 이 정부 보조금의 감축과 폐지야말로 소농과 중농의 기존 몰락 추세를 가속시키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할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전의 뒷면 논리는 농민의 계층 분화가 가속된다는 사실이다. 즉, 부농과 일부 중농, 심지어 일부 소농은 농업 생산력 증대에 성공해 살아남을 것이다. 정부가 1996년 농민 무마책으로 제시한 농지법 시행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이해돼야 한다(2000년 이후 6만 3천 헥타아르까지 거래 가능).
그렇다면 우리는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농촌·농민·농업의 붕괴라는 것이 실제로는 기우이며 단지 농민층 분해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올해부터 쌀과 농산물이 완전 개방되면 농업 자본주의 발전이 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공포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포이고, 이 점에서 그들은 나로드니키의 후예답다고 하겠다.
그러나, 레닌이 나로드니키 비판에서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문제는 그것을 외면하고 그것의 공포에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타도하기 위한 현실적 전략을 명확히 하고 그 행위주체를 규정하며 그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게다가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성장은 미래의 농업 집산화를 위한 토대가 된다. 농업 자본주의의 성장은 배격할 대상이 아니라 변혁할 대상인 것이다. 주체주의자들이 농업의 반봉건성을 얘기했을 때 자본주의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그것의 성장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 즉 도시 산업 노동계급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민족과 국익의 이면에 있는 이해관계
쌀과 농산물 개방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은 국내 농업생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산업 자본가 계급의 이익과 농민의 이익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산업체 경영자들이 국내 농업생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은 거기에선 이윤이 많이 나오지 않고, 또 노동력 재생산 비용(필요노동 시간의 화폐적 표현)의 단축을 위해서는 해외 농산물 수입이 더 영리한 방침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체제이다. 그 체제는 농촌(농업)을 수탈함으로써 도시(산업)를 먹이는 경제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진정한 대안은 자신이 해방됨으로써 자신의 부모와 형제인 농민을 해방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농민이 자신을 해방할 수 없음은 역사가 그들에게 부과한 천형(天刑)이다.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월(月) 18일(日)》과 트로츠키의 《평가와 전망》을 보시오.)
농민은 독립적인(형식적 의미는 아니더라도 실질적 의미에서) 정치세력이 될 수 없다. 생산의 기술적 조건이 부과한 소규모 생산 방법 ― 그것이 아무리 생산력이 높을지라도 ― 과 그들의 고립된 존재조건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결속시키지 못한다.(그래서 농민은 세상이 바뀌어도 ‘자, 이제 우리 땅을 각각 나누어 가집시다’ 하고 나서는 반면에 현대차 노동자들이 ‘자, 이제 우리 공장과 우리가 만든 배를 3만 조각으로 나누어 가집시다’ 하고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농민은 도시의 양대 계급, 즉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가운데 하나에게 정치적으로 자신을 의탁한다. 농민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은 먼저 자신을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곧추세우고 자본가 계급에 맞서서 자신의 독립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함으로써 노동계급 주도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비혁명적 시기에 농민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소농이라는 사실이 역사 전체를 통해 입증됐다. 그러므로 빈농과 농촌 노동자의 이익은 그것에 가려져 있고, 따라서 노동계급이 일상적 시기에 농민 ― 사실은 소농 ― 의 이익을 지지하는 노농동맹을 추구할 수는 없다. 노동계급은 혁명적 시기에 표면으로 떠오를 수도 있는 빈농과 농업 노동자의 고유한 이익을 지지하는 혁명적 노농동맹을 수용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 생산관계의 잔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한국 농촌이 혁명기에 빈농과 농촌 노동자의 특수한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설사 제기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소농 주도 하의 재분배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원래 토지 국유화와 농업의 점진적 집산화를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농업혁명(농토의 혁명적 재분배)에 대한 자신들의 지지가 토지 소유자들의 세력을 분쇄하기 위한 양보요 일보후퇴임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농업의 근본 모순은 토지 소유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정부의 불충분한 가격 보장과 부채와 세금에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추곡수매 부활(그리고 충분한 추곡수매가 인상)과 부채 탕감과 세금 감면을 지지하는 게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