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식 혁명’의 평가와 전망
〈노동자 연대〉 구독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식 혁명’의 평가와 전망
‘21세기의 사회주의’, ‘혁명 속의 혁명’을 주창하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국내외 좌파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차베스는 미국이야말로 ‘악의 축’이며 이에 맞서 ‘선의 축’을 구축하겠다고 호언했다. 지난해 말 미주 정상회담 반대 시위 현장에서는 “우리 미주 민중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매장했습니다!” 하고 외쳐 시위대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또, 차베스는 광업 국유화 방침을 확정했고, 노동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장기간 점거한 공장들을 국유화했다. 수백만 헥타르의 토지를 빈농과 농업 노동자들에게 재분배했다(유상 몰수, 무상 분배).
문맹 퇴치 운동을 펼쳐 1백50만 명에게 읽고 쓰기 교육을 제공했고, 빈민가 아동들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빈민가에 보건소 3백 개를 설립해 무상의료를 제공했고, 무료급식 시설도 설립했다.
각종 생활필수품에 대한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소규모 기업이나 노동자·여성 협동조합에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하는 은행을 설립해 그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각종 개혁 정책들 때문에 차베스와 ‘볼리바르 식 혁명’을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모델로 보고 큰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임승수 민주노동당 금천구위원회 교육선전부장도 ‘볼리바르 식 혁명’을 “21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진정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베네수엘라’, 〈이론과 실천〉 2005년 11월호).
주류 언론들과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의 막강 파워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떠들어대는 마당에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격변이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의 수많은 피착취·피억압 대중에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 주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이 허튼소리나 몽상만은 아님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볼리바르 식 혁명’의 내용이 분명치 않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베네수엘라의 주요 생산수단은 여전히 소수 자본가들이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통신회사 CANTV와 카라카스의 전력회사는 미국인이 소유하고 있고,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스페인 자본이나 다름없다.
또, 베네수엘라의 부르주아 국가기구도 여전하다. 대다수 국가 관료들은 ‘볼리바르 식 혁명’에 반대한다. 그들의 부패와 부정비리, 비효율성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차베스는 기존 국가기구와 별개의 제도적 장치들을 이용해 자신의 사회개혁 프로그램들을 추진하면서, 부르주아 국가기구 문제를 사실상 회피하고 있다.
한편, 차베스가 공수부대 중령 출신이기 때문에 계속 군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볼리바르 식 혁명’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2002년 쿠데타 뒤 우익 군장성들이 제거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장교들은 상층 중간계급들과 사회적 특권이나 인적 유대 관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혁명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차베스 전복 음모에 앞장섰던 주요 언론 매체들(그 중 하나는 조지 부시 1세의 낚시 친구가 소유하고 있다)도 거리낌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그 동안 세 차례의 주요 정치적 전투(2002년 4월 군사 쿠데타 기도, 2002년 말∼2003년 초 직장폐쇄 또는 사보타주, 그리고 2004년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뒤 잠시 주춤거리고 있지만, 언제라도 차베스 정권을 전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요컨대, 베네수엘라 자본주의는 여전히 건재하고 사회와 국가기구의 구조도 바뀌지 않았다.
차베스는 고유가로 인한 막대한 석유 판매 수익덕분에 국내 자본가 계급의 이윤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지 않고도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언제까지 고공행진을 계속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차베스는 이런 세계 시장의 압력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볼리바르자유무역지대(ALBA : FTAA의 스페인어 두문자인 ALCA를 패러디한 것)를 주창해 왔다. 그러나 ALBA 같은 지역 경제블록도 세계 시장의 교역 조건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런 규칙 때문에 결국 자국 노동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차베스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도 IMF에 대한 외채 상환을 지속했고, 자본주의를 비난하면서도 베네수엘라 기업주들의 단체인 페데카마라스(상공회의소) 인사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그들의 소유권 보장을 약속했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파업, 공장 점거, 임금인상 투쟁, 노동조합 승인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 토지 점거 등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볼리바르 식 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나아가려면 이들 노동자·민중이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하고 자체 조직화를 통해 자본과 국가 둘 다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7월 자본과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는 새 노총 UNT의 일부 지도자들과 혁명적 정치를 주창하는 정치세력들이 모여 ‘혁명과 사회주의 정당’(PRS) 창설을 선언한 것은 베네수엘라 노동자·민중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
물론 이들이 당장 무장 봉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며 투쟁에 나섰던 민중 운동 세력들이 한데 뭉쳐야 한다. 그리고 군대의 일반 병사들을 운동에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기존의 국가기구와 자본의 지배력에 맞서는 대항 권력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존 국가와 자본을 모두 전복할 수 있다. 어떤 혁명적 과정도 이 최후의 대결을 회피한 채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가 생 쥐스트가 말했듯이, “혁명을 반쯤만 하는 사람은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이다.”
차베스의 좌경화와 제헌의회
임승수 부장은 차베스가 “대통령 되기 전에 [혁명] 시나리오 다 짜놓고 미친 듯이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다(〈민중의 소리〉 2006년 2월 13일 인터뷰 기사).
그 러나 칠레의 언론인 출신으로 베네수엘라의 민중참여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차베스의 주요 정치자문역을 맡고 있는 마르타 하네커도 지적하듯이, 처음에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심각한 경제·사회 문제들을 ‘제3의 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8 년 대선 당시 차베스는 제3의 길 정책을 약속하며, 자신의 정견 발표장에 은행가들과 투자가들을 초대했다. 당선 뒤에도 그는 ‘볼리바르 식 혁명’이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어떤 것이라고 주장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그 러나 세 차례의 주요 정치적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점차 왼쪽으로 이동해 왔다. 특히, 2002년 말∼2003년 초 자본가들의 직장폐쇄·사보타주가 실패한 뒤 기존의 부패하고 관료적인 어용 노총(CTV)이 몰락하고 전투적인 현장의 압력을 바탕으로 새 노총(UNT)이 결성되는 등 노동자·민중의 기층 운동과 적극적인 대중 동원이 활성화한 것이 차베스의 좌경화를 촉진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자본주의를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체제라고 비난했고, 2005년 초부터 “21세기의 사회주의”를 말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차베스의 좌경화는 베네수엘라 국내 계급투쟁의 격화와 기층 대중의 동원에 따른 정치적·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차베스 나름의 반응이지 그 역이 아니다.
임승수 부장은 또 차베스의 제헌의회 전술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의 진보진영(특히 민주노동당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도 제헌의회 전술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1999년 제헌의회가 선출되고 그 헌법에 따라 실시된 대선에서 차베스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했지만, 그것이 2002년 군사 쿠데타나 2002년∼2003년 초의 직장폐쇄·사보타주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임승수 부장도 인정하듯이, “‘볼리바르 식 헌법’에서 국민들에게 보장한 대통령 소환투표”는 “보수반동 세력들이 무기로 사용”한 “양날의 검”이었다.
사실, 부르주아 의회는 진정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사회의 진정한 권력은 의원들이 아니라 자본과 물리적 폭력 기구(경찰·군대·감옥 등)를 독점하는 자들에게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선출되지 않는다.
의 회는 비록 근본적 사회변혁 운동가들이 반체제 선전을 위해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그 본질은 부르주아 지배자들이 피착취·피억압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속임수 도구이다. 또한 자본주의 의회는 대중의 혁명적 에너지가 분출할 때 그것이 사회의 근본 변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완충장치 구실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