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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인가 타락인가?

1818년 인간에 의한 인간 창조를 다룬 최초의 공상 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출판된 이후 복제 인간을 주제로 한 수많은 공상 과학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다. 최근의 〈X-파일〉, 〈블레이드 러너〉, 〈6번째 날〉 등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들은 공통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레고리 E 펜스는 최근 국내에 출판된 그의 책 《누가 인간 복제를 두려워하는가》(양문)에서 공상 과학물이 퍼뜨린 다음 같은 엉뚱한 상상들을 꼬집었다.

첫째, 독재자가 가장 먼저 복제 대상이 될 것이다.

둘째, 복제 인간은 성숙할 때까지 비인간적인 인공 자궁 안에서 자랄 것이다.(그런 건 없다. 있다면 수많은 미숙아와 중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셋째, 복제 인간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야 며칠이다.(인간은 아직 풀 한 포기도 빨리 자라게 하지 못한다.)넷째, 성체가 된 복제 인간은 감정 없는 살인마가 되거나 뇌전엽 절제술1)을 받은 장애인이 될 것이다.(그렇게 할 지식도 기술도 없다.)다섯째, 복제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환경에서 공산품처럼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결코 하나의 독자적인 개인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섯째, 복제된 여성은 키가 크며 날씬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일곱째, 만약 선량한 남녀가 우연히 복제된다 할지라도 그 복제 인간은 악마가 될 것이다.

여덟째, 포유류를 복제한 과학자는 언제나 자신의 실험실에서 자신이 복제한 생물한테 살해당할 것이다.

《노동의 종말》과 《소유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1977년 첫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이 성공적으로 임신됐을 때 이 아기가 심리적으로 ‘괴물’ 같을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는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번엔 인간 배아 복제를 비난했다. “인간 복제란 누군가를 복사기로 복사하는 아주 무서운 범죄다. 우리는 지금 품질 관리와 같은 산업적 구상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그러나 제레미 리프킨이 두려워한 “프랑켄슈타인의 아기들”을 우리 머리에서 지워야만 인간 복제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쌍둥이

2001년 11월 25일 미국의 생명공학 벤처 기업 ACT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2)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조지 W 부시는 위선적이게도 이렇게 말했다. “생명을 파괴하기 위한 생명을 키워서는 안 된다.” 부시는 그 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천 명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었다.

1천5백 년 동안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따라 성행위 자체에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가톨릭은 모순되게도 ‘정상적인 생식’ 이외의 어떤 방식으로도 인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9개국 정부가 배아 줄기세포3)와 인간 배아 연구를 금지했다. 미국에서는 하원에서 통과된 인간 배아 복제 금지법이 상원에 계류중이다. 영국 정부는 인간 배아 복제에 최고 징역 10년을 구형하는 법안을 처리중이다.

유네스코도 인간 배아 복제 연구를 제한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일부 국내 시민단체들은 “인간 개체 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높다”며 인간 배아 복제 연구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대부분 무지와 보수적 편견에서 비롯한다. 일부 과학자와 윤리학자 들이 이런 편견을 부추긴다. 유전자 결정론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사람들은 ‘복제’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똑같은 생김새에 말과 행동이 모두 일치하는 복제 인간 군대를 상상한다. 어느 날 자기 앞에 나타날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인간 배아 복제와 쌍둥이 가운데 유전적으로 더 동질한 것은 오히려 쌍둥이이다. 게다가 쌍둥이는 같은 시기에 같은 엄마의 자궁에서 자라나 같은 환경에서 거의 똑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다. 그러나 수많은 쌍둥이들을 복제 인간 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최초의 샴 쌍둥이인 엥과 창은 뚜렷하게 다른 개성을 보였다. 그들은 태어날 때 간도 공유하고 있었지만 한 명은 까다롭고 술을 좋아하는 반면 다른 한 명은 인자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아내가 있었다.”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만 그대로 복제하면 똑같은 인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유전자에는 인간의 감정· 경험·기억이 들어 있지 않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그래서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들은 유전자에 없다.

“인류의 문명은 유전 정보의 전달보다는 비유전적인 방법에, 즉 기본적인 교육을 통한 수학 문제의 해결 능력과 읽기 능력의 전달, 책이나 컴퓨터를 통한 이전 세대 지식의 전달, 식량 생산 방법의 전달,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법의 전달 등에 더 크게 의존해 왔다.”

미끄러운 경사면

안락사나 낙태 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배아 복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보수주의자들과 종교계는 ‘미끄러운 경사면’ 논리를 들이댄다. 인류가 새로운 시도에 맞닥뜨렸을 때 그리하여 이전 사회에서 불가능했던 것(혹은 금기시했던 것)들이 가능해질 때마다 이들은 경고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어.” “이제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질 거야.” “한번 허용하면 그 뒤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거야.”이들은 암암리에 인간 배아를 복제하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고 나쁜 동기를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또, 억압돼 있던 나쁜 인간 본성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모조리 분출될 거라고 가정한다. 그들에게는 인간 본성이 고정 불변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유전자에 손을 대는 것을 인간 본성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이해한다)해서는 안 된다.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인류의 타락’과 ‘세상의 종말’을 경고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13년 간 약 2만 명의 미국 어린이들이 이 기술을 통해 태어났고 그들은 전혀 “괴물”같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놀리면서 ‘너 같은 뚱뚱보를 어떻게 시험관에 넣었을까?’하고 물었을 뿐이에요.”(루이스 브라운)1960년대에 태아에게 다운증후군 같은 유전 질환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양수 검사가 가능하게 되자 보수주의자들과 종교계는 완벽한 아기만을 ‘선별’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이유로 양수 검사의 금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직 이 검사로 ‘완벽한 아기’가 선별됐다는 소식은 없다. 오히려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 여전히 많은 산모들은 유전적 결함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돌리

인간 배아 복제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기술이 너무 불완전하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자 이언 윌머트가 복제 양 ‘돌리’ 한 마리를 얻기 위해 2백44번의 시도를 한 것과 복제 동물의 기형, 조기 사망 등이 이런 위험의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임신과 출산도 이와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1억 개의 정자 중 단 1마리가 정해진 12시간 안에 난자와 수정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수정된 수정란의 45퍼센트는 임신 사실을 알기도 전에 유산된다. 또 다른 15퍼센트는 뚜렷한 원인 없이 9개월 간 엄마의 뱃속에 있지 못하고 유산된다. 전체의 25퍼센트는 산모와 태아의 이러저러한 질병으로 유산된다.

인공 유산이 없다고 가정해도 전체 수정란의 25퍼센트만이 출산에 성공하지만, 이 가운데 2∼3퍼센트는 선천성 기형을 갖고 태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유전적 이상은 이보다 훨씬 많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의 상당수는 질병과 사고로 조기 사망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인간의 임신과 출산의 불안정성과 위험성을 근거로 인간의 임신과 출산을 반대하지 않는다.

자궁의 역할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인간 복제를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복제된 인간 배아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살과 피를 가진 여성이 9개월 동안 자신의 자궁에서 배아를 키워 출산해야 한다. 공산품 찍어 내듯이 “산업적 구상의 원리”가 적용되는 게 아니다.

미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 낸 것이나 ACT사가 인간 배아를 복제해 낸 것은 상당히 커다란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 배아 복제의 성공으로 세포나 유전자 단계에서 생물학적 치료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 인간 배아 복제 기술은 복제 인간 군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유전병을 가진 아기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암 환자에게, 임신 3개월이 돼서야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된 산모에게, 불임 여성을 비롯한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줄 것이다.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인류의 타락’과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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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차원적인 사고 기능이 마비되고 각종 감각이 둔해진다. 성격이 난폭해지는 변화를 겪기도 한다.

2) 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된 후 인간의 모습으로 발전하는 기간에 있는 아기를 말한다. 수정 후 착상 때까지를 수정란, 그 후 2개월까지를 배아, 이후는 태아라고 부른다.

3) 줄기세포를 얻는 것이 최근 인간 배아 복제 연구의 가장 주요한 목표다. 성장한 인간의 세포는 최초의 세포인 수정란과는 달리 각기 특수한 기능이 부여된 세포롬나 성장하도록 유전자의 일부에 자물쇠가 채워진다. 그러나 어른의 골수에는 여전히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능력을 갖고 있는 줄기세포가 남아 있고 몸의 각 기관이 만들어지기 전의 배아의 세포는 대부분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른의 줄기세포는 제한된 능력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유전자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