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지지 ⇒ 보호무역 정책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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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는 스크린쿼터 폐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미국 자본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는 한미FTA 반대 집회나 비정규직 법안 반대 노동자 집회 등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영화인들이 참가하는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 요구가 자본가들의 요구이며 따라서 이 요구에 기초해서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제대로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진입 장벽을 의미한다. 즉, 보호무역 정책이다. 이것을 노동자들이 지지한다는 것은 해외 자본에 맞서 자국 자본가 분파와 협력한다는 뜻이다.
좌파들이 어떤 투쟁 전술을 평가할 때 국제·국내의 전체 계급투쟁의 세력 관계를 기준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스크린쿼터 사수 지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결국 보호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전체 계급투쟁 속에서 어떤 정치적 효과를 미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30년대에 보호무역 정책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끝나는 제국주의 열강 간 충돌의 주요 원인은 아니었어도 그것을 격화시키는 효과를 냈다. 물론 이것을 극단적인 예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급투쟁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에서 보호무역 지지에 따른 계급 협력은 ‘일상적 시기’에도 노동계급 운동의 계급 전선을 흐리고 궁극적으로는 노동계급 운동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스크린쿼터의 진정한 정치적 의미를 지상(紙上)에서 지적한 이는 좌파 활동가가 아니라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거의 유일했다. “배부르지만 아직 허약한 소수 독점자본이 국가에 요구하는 보호정책과 세계화의 이름으로 국가를 시장의 개념 아래 분할하고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산업의 정책적 개방 요구 사이의 싸움 … 우리는 둘 다와 동시에 싸워야 한다. … 다만 지금 당장은 우리가 스크린쿼터 축소 개방 요구와 싸워야 할 때[다] …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이해관계에 놓여 있지만 같은 위기 앞에 선 자본가들과 연대해야 한다. 누가?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월간 말 3월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원욱 위원장은 “[노동조합이 참가한] 스크린쿼터 싸움은 싸움대로 가는 것이고,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4∼5월 집중 단체교섭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성일은 자본가와 노동자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적대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더 큰 적’인 미국 자본 앞에서는 국내 자본가 방어 요구를 가지고 단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최진욱 위원장은 먼저 사장들을 구해야 노동계급의 요구를 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를 받아들이면, 한국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법안 통과 반대를 외치기 전에, 이러한 법을 이용해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국내의 ‘취약한’ 기업 살리기 운동을 먼저 진행해야 할 것이다. 사장들이 어떻게 대답할지는 뻔하다. ‘비정규직법이 기업을 살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겉보기에는 국내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공세에 맞서 단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결국 노동계급이 자기 요구를 포기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선례는 많다. 미국 노총(AFL-CIO)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편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무역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산업 자본가들과 공조해서 이런저런 보호무역 정책들을 지지해 왔다. 결국 보호무역의 혜택을 입은 사용자들도 노동자들을 해고했고, 노조는 자본가와의 동맹 속에서 계속 약해졌다.
스크린쿼터가 일자리를 늘려주었나?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크린쿼터가 영화 제작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보장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일정한 제작 편수를 유지시켜 주면서 일할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영화 노동자들을 포함해서 우리 운동은 스크린쿼터를 지지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영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설사 스크린쿼터를 통해 단기적으로 일자리가 보장된다고 해도 계급 협력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를 먼저 봐야 한다.
더구나 스크린쿼터 제도와 일자리 창출·보장의 관계는 후하게 쳐줘야 간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1990년대 중반 스크린쿼터가 비교적 엄격하게 집행되기 시작하고, 1996년 이후 대기업 자본을 포함해서 자본의 영화 제작 산업 진출이 확대되면서 고용이 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용이 는 것은 1990년대 말까지였다. 1990년대 말부터는 영화 산업의 취업계수(영화산업의 단위생산을 위해 직접 투입되는 취업자 수)가 현저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제작 편수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화 제작 부문에 한정해서 보면 고용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96∼1999년까지 종사자 수가 약 28퍼센트 늘어난 후 2000년부터는 오히려 줄기 시작해서 2004년까지 다시 약 21퍼센트가 줄었다.[통계청 통계정보시스템 http:// kosis.nso.go.kr/cgi-bin/sws _999.cgi 참조]
그 결과 2004년 영화 제작 부문 종사자 수는 한국 영화산업이 최악의 불황에 빠져 있던 1995년보다는 여전히 많지만 2000년보다는 3천 명 이상 줄었다. 스크린쿼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한국 영화의 영화 시장 점유율이 50퍼센트를 넘는 상황에서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이렇게 고용이 줄어든 이유는 “꾸준한 기술 개발과 자동화, 생산성 향상 등에 힘입어 [취업계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최봉현 외, 영화산업의 경쟁력과 경제적 파급효과 , 영화진흥공사, 2005, p.277]
보호무역 정책 하에서도 자본주의 동학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이 일자리 창출·보호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 것이다.
더구나 스크린쿼터는 오늘날 한국 영화의 불안정성을 만든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어제 성장의 원인이 내일은 위기의 원인이 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 같은 보호무역 정책 하에서는 국내 시장 중 일정한 부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크고 작은 많은 자본들이 영화산업에 몰려들면서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영화산업, 특히 영화 제작 산업은 일종의 ‘과잉생산’ 상태이며 소수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1888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남북전쟁 당시 미국 정부가 해외 선박회사의 국내 시장 진출을 금지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펴자 미국 선박업이 급속히 성장했지만, 그것을 노리고 진출한 수많은 기업 간 경쟁 때문에 수익성이 압박받으면서 결국 미국 선박업 규모가 전쟁 전 수준 이하로 떨어진 사례를 묘사했다.
오늘날 중국 자동차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중국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각각 자동차 완제품에 대한 보호무역 정책을 편 덕분에 오늘날 중국에는 5백 개 이상의 자동차 제조 회사가 존재한다. 이것은 성장의 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부실 자동차 기업들이 지금 중국 지방 정부와 은행에게 엄청난 부실 채권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사례를 든 것은 스크린쿼터 폐지가 영화산업을 안정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무역은 그 나름으로 불안정을 만들어 낸다.
요컨대, 구체적 형태를 떠나서 자본주의는 역동적인 만큼 불안정한 체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특정한 자본 분파와 동맹을 맺는 것에 환상을 품지 않고 독립적으로 싸우는 것만이 일자리 안정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