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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선:
첨예한 양극화를 보여 주다

7월 2일 실시된 멕시코 대통령 선거 결과 발표가 늦춰지고 있다. 1위와 2위의 득표율 격차가 1퍼센트도 안 되는 초박빙 접전 때문이다.

중도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민주혁명당(이하 PRD)의 후보 로페스 오브라도르와 현 집권당인 국민행동당(이하 PAN)의 후보 펠리페 칼데론 모두 자신이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가 몇 달을 끌 수도 있다는 말이 벌써 나오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7월 3일치).

이런 초박빙 승부는 멕시코의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 준다.

선거운동 기간에 주류 언론은 오브라도르를 “급진 좌파”라고 공격했다. 그가 “빈민 먼저”를 외치며 무상의료, 무상교육,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 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 우파들은 오브라도르가 “제2의 차베스”라고 떠들어대며 그가 당선하면 멕시코에 혼란과 무질서가 만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긴장 전략’을 통해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려 했다.

예컨대, 지난 4월 PAN 정부는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중인 철강 노동자들에게 군경을 투입해 두 명을 살해하고 수십 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또, 5월 초에는 멕시코시티 인근 도시에서 경찰이 노점상들을 공격해 1명을 살해했다.

제2의 차베스?

한편, 오브라도르의 공약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공약과 비슷하다. 물론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시장 ‘개혁’을 추진하며 사회복지를 축소해 평범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신자유주의보다 사회민주주의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멕시코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오브라도르를 지지하는 것이다. 또, 사회운동의 많은 활동가들이 우파를 타격하기 위해 중도좌파인 오브라도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브라도르가 급진 좌파인 것은 아니다. 멕시코의 한 언론은 오브라도르가 “두 얼굴의 사나이 같다”고 보도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1백만 호 건설 등 멕시코 식 뉴딜 정책을 주장하는 중도좌파 포퓰리스트의 면모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집권하면 기업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하는 친(親)기업 후보의 면모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 오브라도르는 부유세가 아니라 공무원 임금 삭감 등 재정 긴축을 통해 사회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0년 PAN에 정권을 넘겨주기 전까지 70년 동안 멕시코를 일당통치해 온 제도혁명당(PRI) 출신 인사들을 선거 캠프에 대거 끌어들였다. 그 중에는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체결했고 부패 스캔들 때문에 퇴임 후 외국으로 쫓겨났던 전직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집권기(1988∼94년)의 정부 각료들도 있다.

또, 오브라도르의 선대위원장은 “우리를 차베스와 동일시하는 것은 근거 없다”고 강조했고(〈조선일보〉7월 3일치), 또 다른 측근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우리의 모델은 칠레의 미첼 바첼렛”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EZLN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오브라도르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한다고 비판했다.

멕시코의 소수 특권층이 오브라도르의 집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오브라도르를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든 멕시코의 진정한 사회개혁과 중요한 변화들은 기층 사회운동의 흐름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올해 멕시코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상황전개가 있었다.

올해 초부터 사파티스타와 그 지지자들은 이른바 ‘다른 운동’을 벌여 왔다. ‘다른 운동’은 멕시코 헌법을 고치기 위한 제헌의회 소집 요구를 중심으로 반자본주의 좌파의 재편을 지원하고 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사회운동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새 조직을 출범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또, 4월에는 철강 산업을 거의 마비시킨 강력한 파업이 벌어졌고, 5월 이후 교사 7만 명이 파업을 벌이고 있다. 또, 지난해에 시작된 독립 노조 건설 움직임도 계속되는 등 노동운동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4월과 5월에는 국경 너머 미국에서 대규모 이민자 권리 운동이 폭발해 멕시코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브라도르가 당선한다 해도 그의 통치보다는 바로 이런 미주 지역 대중 투쟁이 멕시코인들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