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저지 운동의 확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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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정부는 협상 기간 내내 협상장 밖 여론과 운동을 의식했다. 일부 좌파들은 7월 12일 시위의 가치를 애써 부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운동은 이번 시위의 성공을 기뻐할 자격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 운동이 FTA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다음 투쟁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물론 한미FTA 협상이 결정적으로 파산한 것은 아니다. 2차 협상 종료 직후 노무현은 한미FTA가 “소신과 양심을 갖고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소신과 양심”은 한국 지배자들 다수의 “소신과 양심”이기도 하다. 한국 지배자들 다수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5단체장들도 한미FTA 협상이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따라서 한미FTA 문제를 국익의 용어로 다룬다면 지배자들에 효과적으로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아쉽게도, 7월 12일 시위 때 한미FTA가 “국익이 아니라 국치”이고 “주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한미FTA가 국가 기능의 일부— 국가의 시장 규제 폐지(또는완화), 노동기본권 축소, 환경 규제 폐지 등 — 를 제거하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미국 자본가만이 아니라 한국 자본가도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미FTA가 한국의 이익을 미국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자본가들은 종종 미국의 이해관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 운동이 이용할 수 있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를 수가 있다.
베네수엘라가 그랬다. 2002년 4월 쿠데타는 그 나라 토착자본가와 장군들이 시도했다. 미국 국무부는 처음에 쿠데타를 원하지 않았다. 토착 자본가들이 먼저 움직였고, 그제서야 미국은 쿠데타를 지지했다. 2003년 초 사장들의 파업 때도 미국은 이라크 전쟁 준비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석유 공급을 폐쇄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바로 이 과정에서 대중의 거대한 급진화가 일어났다.
대중성과 급진성
한편, 한미FTA 반대 논거가 한국 자본주의의 이해득실이나 산업별 득실에 맞춰지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한미FTA 체결이 반드시 한국 경제의 후퇴를 낳을지 반대로 성장을 낳을지는 알 수가 없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한미FTA가 아니라 세계 경제 상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많은 우려와 비관적 전망 속에 2001년에 WTO에 가입했지만, 지금까지 성장 엔진이 꺼지지 않고 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지표가 상향곡선을 그릴 때조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하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민중의 생활수준 전반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산업별 피해를 강조하는 논리도 위험하다. 한미FTA는 동일 산업 내에서도 기업마다 다른 손익 효과를 내는 데다, 산업 피해를 강조하게 되면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주의 손실을 걱정하게 된다. 이것이 7월 13일 MBC 〈100분 토론〉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빠진 함정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민중이 겪게 될 피해가 부차적 문제가 돼 버렸다.
산업별 이해득실론은 또, 노동자들의 산업별 부문주의를 조장함으로써 노동계급 전체의 단결을 방해하게 된다. 한미FTA는 의 약품 인상, 건강보험 후퇴, 공공서비스(전기, 가스, 물 등)의 사기업화 등을 강요하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 전체와 가난한 사람들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다. 한미FTA 저지 운동이 쌀과 영화의 문제를 넘어서야 하는 까닭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한미FTA가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싶어한다. 우리는 거리에서 〈맞불〉을 판매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운동을 더 넓고 더 깊게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005년 프랑스 운동이 거둔 유럽헌법 국민투표 반대 운동의 승리 배경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건설된 1천여 개에 이르는 조직들이 있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전역을 유럽헌법 논쟁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한미FTA에 대한 원칙적 반대론자와 신중론자의 연합은 분명 운동의 대중성 확대에 긍정적구실을 하고 있다. 한미FTA 저지 운동은 정태인 씨 같은 일부 신중론자들에게 적잖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은 우리운동에게 “대안 없는 반대”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론자와 신중론자의 연합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가 되겠지만 우리 운동은 대중성과 급진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