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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냉전과 대학》

냉전과 대학 -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외, 당대

한국전쟁 이후 남한 현대사는 냉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냉전이 계속되는 동안 집권한 정권은 하나같이 북한을 핑계삼아 억압적 정책들로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수식어가 붙은 김대중 정권도 북을 주적으로 명시한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 초 냉전은 끝났지만 우리 생활과 관념은 냉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냉전의 한 축이었던 미국 본토에서 냉전은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촘스키, 하워드 진, 임마뉴엘 월러스틴 등 9명의 미국 내 저명한 진보학자들이 쓴 《냉전과 대학》은 냉전 동안 미국 대학에서 일어난 일들과 사회 전반적 분위기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끝무렵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위력은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만들어 주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이제까지 유례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가 됐다.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펼쳐졌다. 1950년대 초 미국에서는 날로 커지는 공산주의의 영향력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게 된 소련에 대한 히스테리적 반응이 매카시즘으로 나타나게 된다.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 매카시는 고위층의 공산주의자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리스트’는 가짜임이 드러났지만 그 여파는 미국 전역을 마녀사냥의 광기로 몰아갔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왜 공산주의자가 아닌지 해명해야 했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은 진위 여부에 관계 없이 큰 위력을 떨쳤다. 미국 정부와 우익들은 소련의 위협을 들먹이며 노동 조합 활동가나 진보적 지식인 등 좌파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인권 유린을 했다.

특히 매카시즘은 대학 내의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가로막았고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탄압했다. 미국대학협회(AAU)의 30여 개 대학 총장들은 공산당원의 “대학 직위에 대한 권리를 무효화한다”고 선언했다. 진보적 교수들은 감시당했고,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역사, 지리, 언어 등에 대한 연구는 미국 정부의 ‘필요’에 맞게 이뤄졌다. 미국 민중의 역사를 연구한 하워드 진은 FBI의 감시 대상 리스트에 올랐으며, 강의하던 대학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연구를 계속해야 했다. 월러스틴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 맞춰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는 지역 중심의 지리학 연구에 염증을 느꼈다. 냉전은 ‘영어’의 위대함을 가르치고 ‘영어’를 쓰는 국민의 위대함에 대한 쇼비니즘을 불어넣었다. 모든 학문의 영역은 미국 정부와 학교 당국의 감시 속에 이뤄져야만 했고, 주류 학문에 도전하는 사상은 공산주의로 간주돼 탄압받았다. 미국 내의 운동은 ‘소련’의 위협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탄압으로 인해 1950년대까지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후반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베트남 반전 운동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필두로 한 흑인 인권 운동,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운동들이 뒤엉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학 내의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대학 내에서 좌파적 관점의 사회과학 연구 써클들이 생겨났으며 촘스키와 같은 교수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정부와 학교측의 탄압은 여전했지만 학생들은 진보적 교수들의 주장에 귀 기울였다. 급진적 주장들이 오가는 토론이 활성화 되기 시작했고, 학문의 자유가 이전에 비해 확대됐다. 이 밖에도 《냉전과 대학》은 냉전 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정치적 주제들에 대한 주장들도 담겨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미국 대학에 존재했던 학문적·정치적 억압이 우리 나라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김수행·리영희 교수와 같은 진보적 학자들이 정부와 학교로부터 당했던 박해와 사회 전반에 걸친 억압적 분위기를 미국의 상황과 연관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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