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아랍 거리의 분노
〈노동자 연대〉 구독
사람들은 주요 아랍 정부들의 헤즈볼라 비난에 분노했고, 레바논인들의 희생에 말로는 애도를 표하면서도 막상 이스라엘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더 분노했다.
유엔 인도지원 사무차장 얀 에겔란트는 “중동에서 20년 동안 일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중동 민중 다수는 언제나 미국과 이스라엘 제국주의를 증오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제국주의의 힘을 두려워해 왔다. 사람들은 자국 지배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제국주의에 굴복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헤즈볼라는 제국주의의 계획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중동 민중은 바로 이 점에 열광하고 있다.
지금 중동 전역에서 신속하게 시위가 확산되는 것은 지난 십수 년 간 중동 민중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다.
먼저, 두 차례의 인티파다가 있었다. 중동 민중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운동을 조직한 반면 각국 지배자들은 이스라엘과 타협했다.
둘째, 이 비굴한 지배자들의 신자유주의 ‘개혁’ 때문에 중동 민중의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마지막으로, 중동 민중은 미국과 유엔이 10년 동안 이라크를 제재하면서 1백50만 명 이상이 죽는 것을 보았고, 2003년에 미국이 그렇게 폐허가 된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봤다.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는 수십 년 간 중동에서 일어난 시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 중 하나였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 점령 이후에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국이 결코 천하무적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 국가의 허점을 보고 있다.
이것은 자국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해 온 말들, 즉 ‘미국과 이스라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들과 타협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시장에 속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 정당성을 잃고 있음을 뜻한다.
이집트
최근 이집트 시위는 중동의 불안정 요인들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를 보여 줬다. 이집트에서는 8월 첫 주에만 전국에서 수만 명이 이스라엘 규탄 집회에 참가했고, 지난 주에도 키파야 등이 조직한 시위가 전국에서 열렸다. 이집트의 주간지 <알아흐람 위클리>의 보도를 보면 이런 집회에서 호응을 얻은 구호들은 단지 이스라엘 규탄 구호만이 아니었다.
“무바라크는 물러나라”든가, 최근 생필품 가격 ‘자유화’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무바라크, 너 때문에 우리가 깡통을 차게 됐다!”라든가, 또는 신자유주의와 미국 제국주의를 동시에 거부하는 구호인 “세계은행도, CIA도 우리 삶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구호들이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중동 전략에서 이집트가 하는 구실이나 이집트라는 국가가 중동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고려해 보면, 이집트에서 운동이 성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950∼60년대에 이집트는 아랍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 제국주의는 이집트를 굴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977년에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는 중동 정부 중 최초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아랍민족주의의 실패로 여겼다.
그 뒤로 이집트는 친미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부는 1991년 걸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에서 미국 정부와 다른 중동 정부들 사이의 ‘이견’을 중재하는 구실을 했다. 또,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파타와 하마스 등에게 이스라엘과 협상하도록 종용했다.
다른 한편, 이집트는 중동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지정학적 요충지여서 이집트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동 전역에 영향을 미쳐 왔다. 과거에 이집트 공산당이나 나세르의 아랍민족주의는 중동 민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현재는 키파야라는 역동적인 민주화 운동이 그런 구실을 할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존 리즈는 이집트 운동의 중요성을 이렇게 지적했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가 타도된다면, 이것은 헤즈볼라의 승리를 포함한 다른 어떤 상황전개보다도 중동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적 계획을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이집트 운동의 주관적 역량이다. 키파야 운동은 가능성을 보여 줬다. 중요한 것은 이 운동 안에 있는 좌파들이 무슬림형제단을 포함해 운동의 외연을 넓히고 단결을 유지하면서도 운동을 한 차원 더 급진화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집트 노동계급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가이다. 이집트 좌파는 커다란 기회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