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서 혁명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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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8일] 지금 튀니지 혁명의 여파로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이집트가 들썩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집트 노동자와 민중의 저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돼서 갈수록 성장해 왔다. 독자들이 이집트 민중 저항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예전에 실렸던 관련 기사들을 재게재한다.
이 기사는 2006년 8월 26일 발행된 〈맞불〉 9호에 실렸던 기사다.
"아랍인들은 이제 헤즈볼라를 영웅으로 여긴다. 그들이 적[이스라엘]에 맞서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고 아랍인들의 땅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 설령 헤즈볼라가 분쇄되더라도 1~2년 안에 제2의 헤즈볼라가 등장할 것이다. 어쩌면 요르단이나 시리아·이집트에서 또는 이라크에서."
이 말을 한 요르단 국왕 압둘라는 어쩌면 1968년 요르단의 카라메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전사들(페다인) 2백 명이 이스라엘 군에 맞서 싸웠을 때 자기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모두 페다인 전사들이다."
당 시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랍 세계가 감전된 듯한 충격에 빠졌다. 그들의 투지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에 참패한 이집트·시리아·요르단 군대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고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들이 친미 정권의 지배 하에 있다.
그 것이 영웅적인 투쟁이었음에도,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은 민족해방의 한계도 함께 보여 준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1968년에 카라메 마을에서 페다인을 지도했다. 그러나 그의 파타 운동은 1993년에 이르러 팔레스타인 대부분 지역을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남겨 두는 평화협정을 받아들였다.
계속되는 타협과 부패에 신물이 난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은 2006년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단체인 하마스에 투표함으로써 파타를 정부에서 쫓아냈다.
이 집트 혁명의 발자취도 이와 비슷했다. 1952년의 반란은 영국의 직접적인 식민 통치 시대를 끝장냈다. 그러나 민족주의 지도자 가말 압둘 나세르가 1967년 전쟁에서 재앙적인 패배를 당한 뒤로 이집트 지배자들은 서둘러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미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이스라엘과 화해했다.
이집트 혼자만으로는 미국한테서 돈과 무기를 제공받는 이스라엘에 군사적으로 대적할 수 없었다. 또, 이집트 혼자만의 국가 주도형 "사회주의" 실험은 세계 경제의 압력을 버텨낼 수 없었다.
공동의 이해관계
물 론 나세르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했을 것이다. 그의 꿈은 과거에 식민주의자들이 멋대로 그은 국경선들을 허물고 단일한 지역 초강대국을 건설해 아랍인들의 단결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공동의 언어와 문화적 동질성,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 공동의 투쟁 역사가 그러한 단결의 기초였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의 이슬람주의 활동가 중에는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 무슬림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러한 구상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데 모든 아랍인이나 모든 무슬림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랍 사회와 무슬림 사회들은 계급으로 갈라져 있고, 바로 이 기본적인 진실이 중동의 모든 지역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30 년 간의 신자유주의는 과거 어느 때보다 큰 빈부격차를 낳았다. 자본가들과 국가의 이해관계는 서로 촘촘히 얽혔다. 금융 "개혁"은 대기업들에 대한 값싼 융자를 뜻했고, 사유화된 국가 재산은 고관대작 자제들이 소유한 기업들에 넘어갔으며, 각종 개발 사업 자금은 대기업 주주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다.
비록 이집트 지배계급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서열이 비교적 낮기는 하지만, 그들은 현존하는 경제 체제를 전복하는 데 이해관계가 없다.
따라서 외부의 적에 맞서 아랍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모든 사회가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는 헤즈볼라의 투쟁관이 오늘날의 세계화된 현실에 더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관점에도 문제는 있다.
피 억압자들과 같은 편에 서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억압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독특한 능력을 간과하게 된다. 대다수 민중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억압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의 송유관에 석유가 흐르게 하는 것도, 수에즈 운하의 배를 움직이는 것도, 빵을 굽고 기차를 움직이고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받고 관광객들이 묵는 호텔을 청소하는 것도 모두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노동이야말로 모든 중동 국가들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토대이며, 따라서 모든 중동 정부의 안정이 유지되는 토대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은 국내의 제국주의 동맹 세력들, 곧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의 강력한 소수 특권층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해방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세력이다.
농민이나 소상인 등의 집단이 국민의 다수인 많은 나라에서 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계급은 종종 소수다.
하지만 레온 트로츠키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혁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 주었듯이, 현대적 산업에 종사하는 조직 노동자들은 더 광범한 혁명 운동의 중핵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경제의 주요 부문과 대형 작업장에 집중돼 있으며, 그 덕분에 자신들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고 다른 피억압 집단들을 혁명적 투쟁에서 이끌 수 있다.
트로츠키는 노동계급 외에 이런 구실을 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중간계급은 너무 나약하고 소심했으며 농민들은 너무 분열돼 있었다.
오 늘날의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지배계급은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이득 볼 것이 없다. 중간계급의 일부는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완화되고 민주주의가 신장되길 원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조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경제적 힘이 없다.
러 시아에서 그랬듯이 중동에서도 민족해방의 과제는 노동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총파업이 일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서방으로 가는 석유의 흐름이 멈추고, 카이로와 바그다드가 마비되고, 수에즈 운하에서 미군 전함이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고 상상해 보자. [노동자들이] 왜 거기서 멈춰야 하는가?
노동자들이 사회를 통제하게 된다면 중동의 자원은 무기 구입비, 외채 상환금, 소수 특권층의 호화 생활 유지비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보건·교육 등에 쓰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또는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할 때 그들의 투쟁은 사회주의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트로츠키는 "민주주의 혁명이 곧바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혁명은 국외로 확산될 수도 있다. 트로츠키는 이 과정을 "연속혁명"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결코 꿈같은 얘기가 아니다. 중동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1979 년에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것은 석유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과 군 사병들의 반란이었다. 워싱턴 정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팔레비의 독재 정권은 미국의 중동 지배를 보증하는 "제2의 대들보"였다(제1의 대들보는 이스라엘).
1991년에 이집트는 기본 식료품에 대한 보조금 철폐를 종용하는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부는 항의 시위에 밀려 빵 보조금을 부활시켜야 했다.
키파야("이제 그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집트 민주화 운동은 최근에 레바논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에 석유를 공급하지 말라고 이집트 석유 노동자들에게 호소했다.
새 좌파
아랍 세계 전역에서 새 좌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들은 1950년대 아랍 민족주의 혁명들과 아라파트의 파타 운동 실패가 제기한 쟁점들에 대응해야 했다.
노동자 권력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려면 소수의 조직된 혁명가들과 정치·경제 위기를 통해 급진화한 수백만 명을 이어주는 가교를 놓아야 한다.
이 것은 중동의 사회주의자들이 이미 1940년대부터 고민한 문제다. 불행히도 그들이 항상 올바른 해답을 도출하지는 않았다. 때로 좌파는 민족해방 투쟁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투쟁을 방관했다. 더 많은 경우, 그들은 혁명의 주체를 노동계급이 아닌 다른 사회세력에게서 찾았다.
이집트 공산당원들은 노동계급의 독립적 조직이 민족 단결에 방해가 된다며, 공산당을 해체하고 나세르의 집권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민족주의자가 주도하는 국가를 반제국주의 투쟁의 주요 수단으로 여겼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아랍 세계 전체의 노동자들, 더 나아가 나머지 세계의 노동자들까지 단결시키는 국제적 운동만이 제국주의를 꺾을 힘이 있다.
오늘날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국주의 전쟁은 이 지역의 극소수 특권 지배층을 제외한 모든 계급들이 현존하는 정치 체제에 맞서 싸우게 만들 수 있다. 제국주의와 그 지역 동맹들에 맞서는 광범한 세력들의 연합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독립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이 이 광범한 운동에서 지도력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반란은 1950~60년대의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패배의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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