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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평 《무함마드: 신의 예언자》:
왜곡이나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의 무함마드

《무함마드: 신의 예언자》 카렌 암스트롱 지음, 교양인, 304쪽, 20,000원

오늘날 무슬림을 광신도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기는 편견이 흔하다. 이슬람은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종교라는 비방도 널리 퍼져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에 동참하면서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하마스가 억압적 ‘신정 국가’를 수립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많은 자유주의자는 물론 일부 좌파도 이슬람주의(정치적 이슬람) 일반을 반동적 운동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러한 편견과 비방은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슬람 혐오가 점점 심해지면서 무함마드도 ‘전쟁광,’ ‘유대인 혐오자,’ ‘소아성애자’ 등 다양한 비방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카렌 암스트롱의 《무함마드: 신의 예언자》가 번역돼 출간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2002년에 국역 출판된 《마호메트 평전》(미다스북스)과는 다른 책이다.)

전직 수녀이자 종교학자인 저자는 기독교, 불교 등 여러 종교에 관한 책을 저술한 세계적 학자이다. 《무함마드: 신의 예언자》는 무함마드의 삶을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며 무함마드를 사회 정의를 외친 개혁가이자 무슬림 공동체를 탁월하게 이끈 정치가로 그려 낸다. 그 과정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편견과 비방도 해소하고자 한다.

저자는 무함마드가 전쟁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무함마드의 가르침의 핵심은 화해와 관용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쿠란의 전쟁 관련 구절들이 나온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자세히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당시 아라비아 스텝 지역의 척박한 환경에서 물자가 부족한 시기에 ‘가주’(약탈)가 불가피한 일로 여겨졌으며 통상적으로 행해지던 방편이었다는 점을 설명하며, 이를 통해 부족에서 배척당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쫓겨간 무함마드와 무슬림 공동체가 ‘가주’를 행했던 맥락을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 준다.

‘유대인 혐오자’라는 비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메카 진영의 공격을 물리친 다음 날, 무함마드의 군대는 무함마드를 배반하고 메카 진영에 무기와 물자를 공급한 메디나 내 유대인 부족인 쿠라이자족 요새를 포위하고 쿠라이자족이 예전에 협력하던 사드 이븐 무아드에게 중재를 맡긴다. 사드는 당시 전통적인 판결대로 부족 남자를 전부 처형하고, 부인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고, 그들의 재산은 무슬림들이 나눠 가지게 했는데, 이 일화는 오늘날 무함마드가 ‘유대인 혐오자’였다는 비방의 근거로 자주 쓰인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이 일에 혐오감을 느낄 수 있지만, 당시 아라비아에서는 거의 모든 이가 사드의 판결을 예상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료에 따르면 당시 쿠라이자족조차 이 결정에 놀라지 않았다는 점, 메디나 내 다른 유대인 부족들은 “이 사건을 순전히 정치적이고 부족에 관련된 문제로 간주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오히려 쿠란에는 당시 유대인과 기독교인같이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같은 신을 믿는 ‘책의 민족’이라고 부르며 영적인 친족 관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무함마드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에 왔던 유대교와 기독교의 예언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예언자의 일원으로 맞아들인다.

다른 모든 역사적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무함마드의 행적에는 당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이슬람이 성차별적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저자는 무함마드가 오히려 당시로서는 여성들의 권리를 옹호한 진보적 견해를 취했다는 점을 알려 준다. 여자는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고 남자의 재산처럼 간주되던 시절, 무함마드가 자신의 부인들을 정치적 동료로 여길 뿐만 아니라 여성의 유산 상속과 이혼할 권리에 관한 구절을 계시받으며 성평등을 강조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함마드가 ‘소아성애자’라는 비방은 무함마드의 세 번째 부인인 아이샤가 여섯 살에 무함마드와 결혼한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결혼은 동맹 체결을 위해 “낭만적이거나 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주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러한 관습은 유럽에서도 근대 초까지 계속됐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아이샤는 결혼 적령기에 이르러서야 다른 여자들처럼 출가해 결혼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사실 아이샤는 무함마드의 생애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이샤가 말에 거침없는 성격이었으며 “결코 수줍어하거나 순종하는 부인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무함마드가 자신이 입양한 자식의 배우자였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계시를 받을 때 옆에 함께 있었던 아이샤가 “참으로 편리하네요! 정말로 주께서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일을 서둘러 해 주시네요!”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일화도 흥미롭다.

일부다처제는 당시 아라비아에서 흔한 일이었으며, 오히려 무함마드는 15살가량 연상이었던 첫째 부인 카디자와 사별하기 전까지는 여러 부인을 둔 적이 없었다. 저자는 무함마드의 여러 결혼이 대부분 정치적, 사회적 이유에서 이뤄졌음을 보여 준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을 돌보기 위해서나, 다른 부족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쿠란에서 일부다처제는 권장이 결코 아니라 단지 허용일 뿐이고, 그것도 조건부 허용이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집트,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 일부다처 비율은 1퍼센트가 안 된다.

쿠란에 있는 ‘히잡’ 구절에 관해서는 무함마드가 당시 적들에게 위협받고 개인 공간을 침범받는 상황에서 무함마드의 부인들에게만 가림막을 치고 남들과 구분되는 의복(이 구절에 나오는 ‘질밥’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의복이 아니라 다양한 의복을 지칭하는 용어다)을 입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히잡의 오늘날 의미에 대해서는 “취약한 시기에 여성들의 몸은 종종 위험에 처한 공동체를 상징하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 히잡은 움마[무슬림 공동체]를 서구의 위협에서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중요성을 획득했다”고 지적한다.

무함마드가 살던 7세기에 메카는 주요 무역 중심지였으며, 이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했다. 무함마드의 사회 정의에 대한 가르침은 이러한 불평등에 맞선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족 간 전쟁과 복수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당시 무함마드는 전쟁에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평화와 화해, 자비를 강조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에서 강조하듯, 무함마드는 “쉽게 이념적으로 분류되지 않고 때로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도 했지만 심오한 천재성으로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세운 복잡한 인물”이었다. 무함마드를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오늘날 이슬람 혐오에 맞서 억압받는 무슬림들을 잘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