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우파는 왜 무슬림의 목숨을 무가치하게 취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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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혐오는 사회 최상층에서부터 부추겨지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유리 프라사드가 설명한다.
텔레비전과 의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일 겪는 폭격에 대해 뭇사람들이 당연히 기대하는 분노와 동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인들을 위해 했던 것과는 달리] 죽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모하는 조명을 건물에 비추거나 관공서 건물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걸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대학살을 용기 있게 비판하는 이들을 테러리스트와 유대인 혐오자들로 악마화한다.
중동의 분쟁이 무슬림 혐오 정서를 이토록 부추겼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편견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우연히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국가가 조장한 편견이다. 이것은 무슬림들을 침묵시키고, 제국주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모든 이들도 침묵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이슬람 혐오가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이 인종이 아니라 종교이기 때문에 이슬람 혐오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종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종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근거를 들기도 한다.
이슬람을 ‘후진적’이고 ‘서방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하는 혐오 발언을 그들은 ‘정당한 논쟁’으로 규정한다. 인종차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깔려 있는 가정은, 종교 신자를 분류하는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인종”의 정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인종은 사회적으로 발명되고 구성된 관념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집단을 인종으로 만든다. 그렇게 인종화된 집단은 어떤 벗어날 수 없는 공통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반동 세력들은 인종과 종교 사이의 구분을 얼마든지 개의치 않고 뭉개버릴 수 있다.
유대인 혐오만 봐도 그렇다. 유럽에서 유대인은 인종화의 대상이 됐고, 이것은 결국 홀로코스트로까지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에는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만 차별받지 인종차별을 겪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구에 사는 무슬림 대부분은 오랫동안 인종차별의 주요 대상이 돼 왔던 ‘인종 집단’에 속한다. 영국 무슬림 열 명 중 일곱 명은 남아시아인이고 나머지는 주로 아프리카계나 아랍계다.
이슬람 혐오는 기존의 나쁜 인종적 편견에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겹쳐 놓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그 둘을 융합한다.
그런 만큼, 무슬림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을 향한 인종차별에 지독한 이슬람 혐오가 깔려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오래 된 인종차별적 속어(예컨대 파키스탄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인 “파키”)에 “테러리스트” 같은 더 근래의 비방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이슬람 혐오는 인종차별이다. 왜냐하면 이슬람 혐오는 모든 무슬림들을, “영국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인종을 규정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런 차이들은 불변하고 숙명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최고의 TV 셰프 나디야 후사인이든, 시리아 난민 캠프에 있는 젊은 영국 여성 샤미마 베굼(아이시스(ISIS)에 꾀여 거기에 가담했다가 지금은 영국 국적을 취소당했다)이든 모든 무슬림이 똑같은 인종적 특징을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무슬림은 이슬람 혐오적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급진적’ 신념을 갖고 있거나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감시당한다. 그런데 지금 이슬람 혐오가 주류에 매우 깊숙히 침투해 있지만, 이것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1970년대에는 무슬림을 향한 인종차별적 괴롭힘이 영국에서 다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아랍인들이 겪는 것과 성격이 대체로 같았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머지 않아 총리가 되는 마거릿 대처는 영국이 “이질적 문화를 가진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가 ‘생물학적 열등함’에서 ‘문화적 공존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했음을 보여 주는 징후였다.
인종차별적 우파에게 ‘문화적 공존 불가능성’은 인종적 차이에 관한 자신들의 사상을 퍼뜨리는 새로운 통로가 됐다. 이미 남들보다 큰 고통을 받고 있던 무슬림들을 특별히 겨냥한 형태의 인종차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우파는 교육이나 주거지에서 나타나는 인종 분리가 당국의 아시아인 배제 정책 탓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무슬림들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결과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커져가던 편견이 세계적 차원의 인종차별로 발전한 것은 서방이 중동과 아시아,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저항을 통제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1979년 이란의 대중 혁명은 무자비한 독재자이자 서방의 핵심 동맹자인 샤를 타도했다. 혁명은 그동안 샤를 통해 그 지역의 석유 자원을 통제해 온 미국을 즉시 겨냥했다.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파쇄된 수천 페이지의 기밀 문서들을 정성스럽게 다시 맞췄다. 이를 통해 고문과 사형에 기반을 둔 샤 정권과 서방의 공모가 드러났다.
그리고 학생들은 미국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미국에 있는 샤를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샤가 인민에게 저지른 범죄들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란의 거리에서 외쳐진 구호 “미국에게 죽음을”이 중동 전역으로 울려 퍼지며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 모두를 고무했다.
이에 서방은 무슬림을 겨냥한 장황한 비난을 늘어놓았다. 영국 신문들은 “광기에 휩싸인 이슬람 율법학자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신도들에 관해 끝없이 떠들었다.
칼리드 베이둔은 다음과 같이 썼다. “미국 주류 언론 뉴스들은 공포를 부추기면서 무슬림들이 미국을 안에서부터 장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무슬림 인구 증가와 ‘1970~1980년대 모스크와 무슬림 협회의 대폭 증가’가 이를 확증하는 증거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1980년대에 확대된 이슬람 혐오는 미국이 2001년 9.11 공격에 대한 제국주의적 대응에 나서기에 딱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정치적 우파와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모두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문명의 충돌”이라고 선언했다. 이제 우월한 서방이 테러리즘에 기초한 ‘야만인’ 사회들에 현대적, 계몽주의적 가치관을 이식해 줄 것이라고 그들은 강변했다.
전쟁광 총리 토니 블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대규모 테러는 오늘날 우리 세계의 새로운 악이다. 테러를 저지르는 광신도들은 인간 목숨의 존엄성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 이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함께 뭉쳐 이 악에 맞서 싸우고, 이 악을 우리 세계에서 완전히 근절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악”에는 무기를 들고 서방의 지배를 거부하는 무슬림들뿐 아니라 제국주의와 사상적으로 싸우는 이들도 포함됐다.
영국과 다른 여러 국가들은 무슬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집착하게 됐다. 그 집착이 어찌나 심했던지 영국 정부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로 하여금 극단주의자가 될 성싶은 자들에 대한 정보를 넘기도록 압박하는 안보 대책을 개발할 정도였다.
이것은 국내의 적과 외부의 적을 악마화하는 정책의 일부였고, 두 악마화는 서로를 강화했다. 국가가 이용한 편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슬림 여성에 대한 편견이었다. 무슬림 여성은 이슬람 혐오 이데올로기에서 이중적 지위를 차지했다.
히잡이나 질밥[이슬람권 문화에서 여자들이 옷 위에 걸쳐 입는 천] 같은 특정한 복장은 지하드 정치를 “숨기는” 수단처럼 묘사됐다. 그런 복장이 차별화와, 동화에 대한 거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그런 베일과 스카프가 급진주의와 정반대되는 것을 상징한다고도 주장했다. 무슬림 여성에 대한 무슬림 남성의 지배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적 우파는 이슬람이 “특별히 후진적인” 종교라서 무슬림 여성들에게 주체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자유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이런 식의 인종차별은 사회 최상부에 있는 자들로부터 거리낌없이 흘러나왔다. 총리 시절 보리스 존슨은 베일을 쓴 사람들을 두고 “우체통”이나 “은행 강도”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슬람 혐오적 관념이 사회 상층부에서 아래로 전파됨에 따라, 여성의 머리에서 히잡을 강제로 벗겨 내고 총리가 몸소 가르쳐 준 욕설을 퍼부을 태세가 된 자들이 어디에나 있게 됐다. 그러나 이슬람 혐오의 물결은 언제나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영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전쟁 반대 운동이 이슬람 혐오의 물결에 당당히 맞섰고 무슬림들과 비무슬림 모두가 이 전투에 참여했다. 이슬람 혐오를 이용해 세력을 구축하려 한 극우 정치 세력들은 미국이나 대부분의 유럽보다 영국에서 더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그리고 국가가 조장한 혐오는 또 다른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무슬림 여성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최선두에 있다. 그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조직자들과 전투적 활동가들 중에도 무슬림 여성들이 있다.
이는 무슬림 여성들을 특별히 겨냥한 인종차별이 낳은 “역풍”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역풍” 말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정책이 그들의 면전에서 폭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