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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미국의 중동 전략

박인규 〈프레시안〉대표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 후 중동 정치 상황을 설명한다

이스라엘의 진짜 목적은 헤즈볼라의 무력화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서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고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데 레바논, 특히 헤즈볼라가 항상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난 4월에 미국의 유명한 기자인 시모어 허시가 썼듯이, 미국의 부추김이 있었죠. 왜냐하면 지금 미국이 이란을 치고 싶어하거든요. 중동에서 까부는 놈들은 다 손을 봐줬고, 남아 있는 게 이란·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 정도인데, 이 중에서 이란이 가장 덩치가 크죠. 그래서 이란을 작살내기 위해 지금 핵 문제로 그 빌미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미국은 옛날에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라크 핵발전소를 깬 것처럼 "이란 핵 시설을 ‘정밀 폭격’하면 이란 내에 정정 불안이 일어날 거고, 그러면 이슬람 정권이 별로 인기가 없다 하니 정권이 무너지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란을 치려면 겁나는 게 있습니다. 헤즈볼라가 이란의 직접 지원을 받는 단체이다 보니 헤즈볼라를 놔 두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선 헤즈볼라를 좀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헤즈볼라를 한 번 쳐 보면 공습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예행연습도 된다'하고 생각해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거죠.

그런 큰 목적을 가지고 34일 동안 맹폭격을 가했지만 결국 헤즈볼라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한 겁니다.

그럼 그 후폭풍이 뭐냐. 우선 아랍권에서 헤즈볼라의 인기가 엄청나게 올라갔죠. 처음 이스라엘이 맹폭을 가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 같은 이른바 아랍의 친미 국가 지도자들은 헤즈볼라를 마구 욕했어요. "괜히 쓸데없는 짓 해 가지고 또 문제를 만들었다"는 거였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 국민들 여론이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 일주일 만에 싹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바뀐 거죠. 그러면서 헤즈볼라의 인기가 무지하게 올라갔습니다. 이런 일은 "나세르 이후 처음이다", "아랍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겁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부터 레바논 남부를 불법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쫓아낸 세력입니다. 이 때[2000년]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 없이 자진해서 철수한 첫번째였습니다. 헤즈볼라는 자신들이 '2000년에 한 번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쫓아낸 세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 한 번 중동 최강이라는 이스라엘과 맞붙어 견뎌냈다는 거죠.

1라운드

또 하나,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상당히 올라갔죠. 이란은 사실 아랍이 아닙니다. 중동 지역 국가이지만 페르시아인들이죠. 종교도 중동 지역 국가들이 대개 수니파인데 [이란은] 시아파이고 하다 보니 이제까지 아랍을 대표하는 그런 구실을 못 해 왔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에 이란이 지원한 헤즈볼라의 승리 때문에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졌고, 그러다 보니 지금도 핵 협상에서 오히려 '[미국과] 한 번 세게 붙어보자'는 식으로 나온다는 거죠.

문제는 미국 처지에선 여기서 끝낼 수가 없다는 거죠. 오늘[9월 1일]도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된다"고 했다는데, 1라운드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핵 문제를 가지고 이란을 계속 압박하겠죠.

그럼 과연 미국이 [이란] 공습을 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죠. 다만, 이제 이란이 아랍 지역, 중동 지역 반미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그러다 보니 지금 일부에서는 '이라크에서도 헤즈볼라 같은 조직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반미 성향 성직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헤즈볼라 같은 군사적·정치적 세력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죠.

어쨌든, 앞으로 긴장은 더 고조된다고 봅니다. 결국 미국은 중동을 다 자기 세력권에 넣겠다, 다시 말해 세계 석유의 60퍼센트, 천연가스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동 에너지 자원을 통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란만 잡으면 중동 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으면 유럽이건 일본이건 중국이건 미국한테 꼼짝 못한다'는 생각인 거죠. 그래서 이란을 없애지 않으면 미국 네오콘들의 이른바 '새로운 중동'구상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거죠.

문제는 이런 겁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한 번 일으키고, 이라크 가서 일으키고, 레바논 가서 일으키고, 그리고 이제 이란을 위협하며 중동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도 정권은 교체했지만 이른바 친미 성향의 안정적 정권을 수립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게 미국의 딜레마입니다. 친미이긴 한데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는 거죠.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 총리인 카르자이의 별명이 ‘카불 시장’이에요. 카불만 통제하고 있지 나머지 지역은 통제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야 1991년 걸프전과 그 뒤 경제제재로 완전히 쓰러지기 직전의 나라를 툭 건드려서 넘어뜨린 거지만 이란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란은 미사일로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을 두들길 수 있다는 거죠.

경제제재를 한다 해도 이란에 대해서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이미 30년 가까이 해 왔거든요. 그러면 이제 무력 충돌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굉장히 큰 유혈극이 벌어질 거고 중동 지역 사람들은 또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