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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간 박노자, 일본을 말하다

요즘 일본에 머물고 계시니까 일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싶은데요. 요즘 한국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아베 총리 시대의 개막과 관련된 것입니다. 아베의 등장이 일본 국내와 지역적·세계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아베는 고이즈미 노선과 나름의 차별을 보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야스쿠니 참배 등을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고이즈미 노선은 많은 점에서 중간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는 평양에 가서 나름으로 대북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물론 그것은 북한 주민에 대한 가상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요, 중국이나 한국 자본이 북한에 쳐들어가기 전에 일본 자본이 선점했으면 하는 일본 자본의 판단이 있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고이즈미는 강경 친미보수와 현실 적응적인 접근 사이에서 끊임없이 왔다갔다했는데, 아베의 경우에는 미국에 편승해 미국의 영향력이 감퇴해 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대신하려는 전략이 훨씬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군사적으로 미국과 더욱 일체화하는 쪽으로 갈 것이고, 평화헌법 파괴 속도를 조금 가속화하려는 것 같고, 일본 재무장 속도도 높이려는 것이지요. 이것은 미국이 동아시아보다 중동 쪽으로 주의를 돌릴 때 미국을 대신하는 지역 패권 국가의 구실을 적당한 시기에 미국한테서 위임받으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됩니다.

물론 아베가 당장에 전쟁을 일으킨다든가 중국이나 한반도를 침략하겠다든가 하는 급진적 발상은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움직임이 중국 집권 세력에게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결국 중국과 무장 경쟁의 광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한반도의 상황을 한층 더 긴장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꼬일대로 꼬인 한반도 상태가 더욱 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이즈미와 차별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의 우경화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아베는 고이즈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일본의 우경화가 아베의 등장과 함께 새삼 시작된 것은 아니니까요. 일본의 우경화는 냉전 해체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 지배계급의 대응이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의 우경화가 아베의 등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입니다. 제 생각에, 우경화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운영 논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장기 주기 (週期: cycle)의 시작은 아마 1945년일 것입니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면서 미국이 유일 강자로 나타났고 전쟁으로 파괴된 세계에서 자본의 이윤율이 꽤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조금씩 낮아지다가 1970년대 중반에 장기 주기의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이 때 이윤율이 급격히 저하돼 자본주의 핵심부 세력들은 대응 논리를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경우에는 그것이 군사적 케인스주의였습니다. 군산복합체에 대규모 투자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은 그런 논리로 갈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패전국으로서 일본은 군대다운 군대를 명실상부하게 만들 수 없었고, 군산복합체가 비교적 약한 데다 주로 미국에 묶여 있었던 것이죠. 일본의 대응책은 토건 국가 정책이었습니다. 토건에다 대규모 투자해 자민당의 풀뿌리 지지를 좀더 획득하는 구조였죠. 그런데 이것은 1992년에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낮아지고 거품이 터진 뒤에는 생명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 장기적 이윤율 저하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일본 집권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 두 가지죠. 하나는 중국과 동반 상승하는 것입니다. 중국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편승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투자하고 공장 이전하고 무역을 확장시키면서 말이죠. 일본은 정밀기기 등 제조업에서 미국보다 강력한 측면이 많습니다. 일본이 장기 침체를 지금 약간 벗어난 것은 상당 부분 중국 덕입니다. 집권층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대응은 미국 닮아가기인데, 그것은 바로 군산복합체에 투자함으로써 경기 부양 정책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중국의 부상에 편승하자는 논리와 군산복합체를 만듦으로써 일본 경제를 핵심부에서도 좀더 높은 지위로 만들자는 논리,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 측면도 있고 상호 부정적 측면도 있는데, 아마도 아베 신조는 후자의 방향으로 좀더 급격하게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 지배계급 내에서 후자의 방향에 대한 지지는 어떻습니까? 일본 지배계급 전체가 21세기 전략의 확고한 방향을 후자로 정했다고 보십니까?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는 대중국 전략을 놓고 여전히 이견이 존재하는데요.

이 문제는 생각보다 좀 복잡합니다. 일본은 이익집단 사이에서 이해관계 조정의 절차가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지배계급의 한 분파가 독자적으로 정국을 이끌어가기도 어려운 상황이구요. 일본에서는 총리의 권력이 그렇게 막강하지 않습니다. 총리 옆에 있는 집단들과 끊임없이 조율하면서 정국을 이끌어나가죠. 패전으로 육군과 해군이 망가진 뒤 가장 힘이 있는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 재무성 (財務省)인데 ― 우리로 치면 재정경제부죠 ―, 이쪽 관료들은 경제인들과 연계돼 있고 이들은 아주 급격한 군사화에 제동을 거는 입장입니다.

메이지 쿠데타(1868년) 이후로 일본이 국제적으로 미국, 영국 등의 중심부 패권 세력과 길이 갈라져 독자적 행동을 취한 기간이 1931년부터 1945년까지 딱 14년이었습니다. 14년 동안 독자적인 블록을 만들어서 행동을 취했다가 망가지기 직전까지 간 것이죠. 당시 미·소의 갈등 구조가 아니었다면 회생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 통치자들은 급진적인 행동에 아주 신중한 것 같습니다. 결국 일본은 세계적인 대세가 어디로 가는지에 의해 좌우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미·중 갈등 구조가 심화될 경우에는 아베 신조와 같은 사람들에게 힘이 실리겠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긴밀히 관련이 있는데요, 일본의 우경화와 미일동맹의 강화가 동북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주십시오.

'적대적 공존'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이나 미국에서 강경 민족주의 세력 ― 사실 근원을 생각해 보면 강경 침략주의 세력이죠 ― 이 부상하는 만큼 중국에서는 민족주의 전략에 정당성이 부여됩니다. 지금 공산당 권력자들에게 권력의 명분을 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하나는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의 생존입니다. 두 가지가 연관돼 있지만, 성장의 열매를 따먹는 사람이 아주 제한돼 있다 보니 대다수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것이 성장 그 자체보다는 민족의 생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재무장과 미일동맹의 강화가 중국을 위협하는 이미지를 강력하게 내비치면 내비칠수록 중국 집권자들의 민족 생존이라는 코드가 좀더 많은 설득력을 갖게 되고, 중국 공산당 지배자들의 입장이 강화하는 쪽으로 갈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내부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 중기적으로는 사회적 모순을 성공적으로 봉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일본과 중국의 은근한 경쟁 속에서 한반도 양쪽 정권도 국민에 대한 동원 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생산·선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가 파산 가까운 상태에 있는 북한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위협이 정권의 생존을 담보하는 구실을 합니다. 일본의 재무장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표현되는 중국의 대한반도 야욕이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한국에서도 성장과 부국강병 논리에 정당성이 부여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이용하고 있는 애국주의가 강화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기본적인 계급 갈등을 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여부는 논란의 초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나라든 순국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데, 야스쿠니 참배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요?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함으로써 무엇을 보여 주려 하는 것인지 얘기해 주십시오.

대내적 측면도 있고 대외적 측면도 있는데요, 우선 대외적 측면을 보죠. 중국을 침략한 세력가들이 야스쿠니에 묻혀 있지 않습니까? 도조 히데끼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도 만주 침략의 거두 중 한 사람이었구요. 그래서 그들에게 제사 지낸다는 것이 결국 일본이 저질렀던 중국 침략에 정당성을 주는 의례적인 행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야스쿠니 참배를 중국의 영토적 주권에 대한 일종의 도전의 의례적 표현, 즉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의례로 보고 있는 것이고요. 동아시아에서는 의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일본이 더 강력하게 재무장의 길로 가서 중국과의 경쟁이 아주 높은 수위에 도달할 경우에 지금 미국에서도 은근슬쩍 거론하고 있는 징병제 문제가 일본 내에서 재거론될 수 있는 것이죠. 징병제는 개인들의 내면을 망가뜨리고 개인들의 심신을 망가뜨리는 체제인데, 그것이 오랫동안 없던 사회에 그것을 강요하려면 이데올로기적 광풍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침략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명해가면서 은근슬쩍 이런 제도가 재도입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야스쿠니 참배의 대내적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한 정치·군사 개입을 강화하려 할 텐데요. 이라크에는 이미 파병까지 한 상태이고요.

제가 요즘 일본어 신문을 읽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Japan Times〉같은 신문은 쉽게 읽을 수 있고요. 그런데 거기에 실린 북한 관련 기사들을 보면 그것은 악마화의 극단적 수준이에요. 사실은 일본 기자들이 미국 기자들보다 북한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데, 다 알면서도 북한이 일본을 위협한다는 식으로 써대고 있는 것이죠. 개입을 한다면 이 지역에서 가장 만만한 것이 북한이죠. 경제적으로 봐서도 그렇고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점도 그렇죠.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서 북한에 개입할 여지가 불행히도 아주 높습니다.

아베는 평화헌법말고도 교육 기본법 개정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고, 우익적 교과서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는데요. 역사학자로서 아베의 역사 왜곡, 역사적 거짓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것은 여러 나라의 지배자들이 맨날 하는 거짓말의 종류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일본의 왜곡 교과서를 보면 러시아의 일반적인 국사 교과서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 나라가 일으킨 침략 전쟁을 해방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이죠. 제가 학교에서 공부했을 때의 교과서를 생각해도 소련 군대가 동유럽을 장악한 것을 두고 해방 전투라고 부르고, 북한 지배를 획득해서 친소 세력을 이식시킨 것도 해방이라고 부르죠. 지금도 그렇고요.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의 집권 세력들이 늘 하는 얘기이고, 그 자체로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패전당한 나라로서 일본은 반세기 정도 그런 얘기를 못 하게 돼 있었던 것이죠. 소련이나 미국과 달리, 일본은 [옛] 국가가 해체된 것이죠. 그래서 다른 제국주의 야수들이 늘 하고 있는 말을 일본 교과서는 반세기 동안 해대지 못해 왔던 것입니다. 자제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그대로 해대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 교과서 수준으로 거의 올라가고 있는 것이죠. 그 자체로는 새로울 게 없지만 옆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별로 듣고 싶은 얘기가 아닌 것이죠.

요즘 일본에 대해 말하면서 전후 세대가 모두 우경화하고 있는 것처럼 싸잡아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본인들 전체가 똑같은 것처럼 말입니다. 일본에 계시니까 일본 우경화에 대한 일본 시민들, 또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응은 어떤지 얘기해 주세요.

사회단체들은 당연히 반발하죠. 그리고 가끔 성공하기도 합니다. 아주 유명한 왜곡 교과서인 부소사 교과서 채택률이 처음에는 1.6퍼센트였습니다. 대다수 학교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그것을 막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일본 사회 안에서 반대 세력은 약소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일본은 서구에 비해서 대단히 원자화된 사회입니다. 일본인들은 대개 단결력, 즉 국가나 자본을 제외한 사회 자체의 단결력이 좀 낮습니다. 단자화된 개체로서 존재하는 인간이 국가나 자본에 아주 많이 의존한다는 얘기죠. 제 느낌으로는 시민단체들은 오랫동안 합법적으로 존재해 왔고 상당 부분 체제에 흡수돼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일본 자본주의 체제의 어떤 부분에 대한 의문은 제기해도 체제 전체에 대한 도전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좌파 세력으로 일본 공산당이 있는데,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원 수로 보자면 자민당을 능가하기도 하죠. 공산당 지방의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존경심이 많습니다. 부패 스캔들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요. 공산당의 정치자금은 출판과 당비를 통해 비교적 투명하고 선진적인 방법으로 조달됩니다. 이것이 공산당의 생명력을 담보하고 있죠. 그런데 공산당은 대규모 노조에 기대지 않고 있어요. 일본의 노조는 개량주의 중에서도 자본의 순치 전략에 거의 그대로 놀아나는 개량주의에 가까워요. 공산당과 연계돼 있는 대규모 노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공산당은 지방 풀뿌리 사회 차원에서는 여러 좋은 구실을 하고 있지만 국가와 자본의 움직임을 단독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비록 힘이 부족해도 일본 지배집단에 도전하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존재해 왔습니다.

한국에 계실 때는 누구보다 날카롭게 한국 사회를 파헤쳤고, 노르웨이에 가신 뒤에는 한국 독자들에게 노르웨이의 명암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일본에 머무신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한국의 진보세력이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박노자 교수의 통찰을 소개해 주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 일본에 산다 해도 일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어느 정도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일본 지식인들이 제국주의적 과거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다른 핵심부 세력에 비해 과거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 많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패배를 경험했고, 전쟁 과정에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보다 일본 국민이 훨씬 더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 지배자들은 1930년대에 한판의 도박을 한 것입니다. 중국 침략도 그렇지만 미국에 도전한다는 것이 성공률이 낮은 도박이었는데, 여기서 볼모로 내몰린 게 일본의 피지배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피지배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 조선인들이 더 고통받았지만 말입니다. 이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적 과거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국가와 자본이 이것을 계속 희석시키도록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인상을 하나 더 말하자면] 일본은 어떤 면에서는 거의 못 믿을 정도로 서구보다 더 서구적인 근대의 모습을 취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친절이 그런데요. 친절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단련이거든요. 서비스업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죽여가면서 자본이 원하는 쪽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죠. 일본의 친절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철저하죠. 백화점에 가면 직원이 자동으로 90도 절을 한다든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고객과 얘기할 때 일정한 목소리 톤과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은행에서나 "고객님" 같은 단어를 쓰지, 버스 운전사나 서비스업 중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런 단어를 잘 쓰지 않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어디에 가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대를 "오갸쿠사마"(고객님) 하고 부릅니다. 일본 자본의 노동자 순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아류가 본류보다 무섭다랄까요? 서구의 노동자들도 친절도를 이 정도로 유지하라는 요구를 받지는 않죠. 일본 지배자들이라는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보다 노동자들을 훨씬 순치시키는 것이죠.

앞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요, 한국 통치자들은 이런 일본 움직임을 비난하면서도 파병을 시도하거나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군사력 증강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이어 레바논, 그리고 미국의 압력이 없는 동티모르에도 파병을 시도하고 있죠. 이런 움직임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지배계급은 미국의 보호막 아래서 자라 왔고, 지금도 미국의 보호막을 완전히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떠날 만한 실력이 돼 있지 않다는 것이 저들의 판단이예요.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라는 보호막이 한국 지배자들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해치기 시작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 문제입니다. ‘햇볕정책’은 한국 지배계급의 장기적 이해관계를 가장 잘 대변한 대북 정책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고 대북 긴장을 무리하게 심화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한국 지배계급에게 미국은 더는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보호막이 되지 못하죠. 그런데도 한국 지배계급은 그 보호막에 오히려 더 열심히 매달리려는 작태를 보이기도 하죠. 한미FTA도 그렇고, 파병을 무작정 연장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미국한테 충성을 보이면서 대북 압살 공세를 풀겠다는 것인지…. 하지만 어쨌든 이중적이죠. 미국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미국 정책에 더는 100퍼센트 만족도를 보이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북아 지역 안에서는 중국이라는 세력이 한반도에 대해서 나름의 장기적인 야욕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이라는 후진 지역을 놓고 중국 자본과 한국 자본이 경쟁하고 있는데 이 경쟁에서 이미 중국 자본이 이기고 있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초기 자본 구축을 중국이 맡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미 중국과는 은근한 경쟁 관계가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일본 침략의 경험이 있는 나라인데, 일본 재무장이 시간 문제라는 것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무력 경쟁이 따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 지배자들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적인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써 중국과 일본 관계의 복잡한 구도 속에서 어떻게 한국 자본이라는 집단이 생존할 수 있는가를 한번 계산해 보려는 것이죠. 크게 보자면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동북아 지역에서 조금씩 일본의 패권으로 대체돼 가는 상황에서 한국 지배자들이 군사력 증강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화와 함께 민족주의가 약화되리라는 다양한 주장들이 득세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계에서는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학계는 나머지 사회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많은 면에서 자율성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학계에서조차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유럽을 제외하면 소수일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분명히 소수입니다. 이들을 제외하면 민족주의는 약화되기는커녕 굉장히 강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박정희 식의 주입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그러니까 성장국가·개발독재의 국가주의적 민족주의가 성공한 아(亞)제국주의 소비 사회의 승리주의적 민족주의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정희 식 민족주의는 구성원들한테 국가를 위한 무조건적 희생을 요구했는데, 지금 한국 젊은이들의 민족주의는 소비주의적 요소가 많습니다. 민족주의 자체도 소비하려 하고요. 이순신이나 연개소문, 주몽을 다룬 사극을 보면, 말하자면 민족 영웅들을 소비하는 거죠. 예를 들어, 지난 월드컵 때는 한국 중간계급의 자녀들이 소위 붉은 악마가 돼 독일에 가서 응원을 했는데 이것이 소비주의적인 면이죠. 한국에서는 유럽 관광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나마 일부 재력이 되는 젊은이들이 가서 한 것이죠. 소비주의적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좀더 정상적인 자본주의적 민족주의입니다.

또, 박정희 식 민족주의는 열등감이 빚어낸 민족주의이기도 하죠. 미국과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죠. 그리고 은근히 북한에 대한 열등감이기도 하고요. 지금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즉 대한민국주의는 북한에 대한 무한한 우월감을 갖고 있고, 좀 못사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갖고 있고, 우리가 한번 일본이나 유럽과 힘을 겨뤄보자는 식이예요. 한국 민족주의자들은 중간계급 소비의 양과 질로 미국·일본이나 유럽을 한번 능가해보자는 강력한 욕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이 이런 변화의 배경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1990년대 접어들어 한국의 중간계급 일부가 소비 수준을 거의 서구나 일본 정도로 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대기업 관련자, 거대 관료집단 안에서는 나름으로 안정성을 누리기도 하죠. 지금은 신자유주의로 조금씩 안정성이 감퇴되지만 말입니다. 대기업 경영 집단이나 중소기업인, 대학·관료기관 종사자들은 자신들을 서구·일본인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했고, 불쌍하고 못사는 '아시아놈'들을 깔보기 시작했죠. 한국의 민족주의는 여러 가지 면들이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못사는 사람들도 베트남에 가면 20만 원짜리 여행으로 여자를 몇 번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이기도 하죠. 민족주의는 원래 남성 우월주의·군사주의와 연관이 돼 있는 것이고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죠.

이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소련은 연방 해체와 함께 세력이 약화됐는데, 중국은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서북/동북공정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북공정은 북한을 겨냥한 측면이 있는데요.

네, 북한 정권의 파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은 북한 정권의 붕괴라는 게 한국 지배자에게도 중국 지배자에게도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입니다. 붕괴한 다음에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확고한 대응 방침이 없는 것 같아요. 대략 봤을 때 한국에서는 이북의 관료집단을 미리 어느 정도 포섭해서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이북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죠. 문제는 이북이 망할 때 우리가 이북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행사할 만큼 이북의 관료집단을 포섭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그런데 포섭을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도 미국이 견제하고 있죠.

중국은 이북의 관료집단, 특히 군 집단 속에서 친중국적 요소들을 키워서 친중국적 정권을 세운다는 구상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붕괴라는 게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갑자기 내파될 것인데, 내파될 경우에는 중국도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양쪽에서는 사실 북한의 내파를 연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죠. 문제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변수죠. 미국과 일본은 북한 붕괴를 유도하려 하고 있으니까요. 중국은 북한이 붕괴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북 영토에 대한 간접 지배의 역사적 논리로 지금 동북공정을 하고 있는 건데, 문제는 이북 영토에 대한 간접 지배의 역사적 명분을 만들었다 해도 실제 그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예측 불가능합니다.

최근 일본 큐슈 대학 한국학연구소에 머물고 있는 박노자 교수가 9월 말 며칠 일정으로 한국을 들렀다. 한국과 노르웨이에 사는 동안 이 나라들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며 신선하고 급진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했던 박노자 교수한테서 일본에 대해 들어 봤다. 일본의 우경화와 동북아 불안정이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한국의 군사력 강화와는 어떻게 연결돼 있는 것인지 박노자 교수의 통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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