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만감: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의 발흥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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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순위는 경제 전쟁이고 바로 다음 순위는 진짜 전쟁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아직은 전쟁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재식민화에 실패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그루지야 확보를 위한 대리전까지 치를 만한 여유가 당장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고사 작전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무기로 칠 여유 역시 이라크 독립군 덕분에 생기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만약 유라시아 자원 확보 전쟁을 비약적으로 확대시킬 의사와 여력이 생긴다면 아마도 지금의 러시아는 7년 전의 유고슬라비아 사태 때와 달리 아예 응전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로 보안기관 출신 지배 그룹의 통제 체제가 그 나름의 안정성을 취한 것이고, 또 그 정도로 군수복합체의 유지 및 확대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루지야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곧 미·일과 중·러 블록 사이의 전면적인 직접적 충돌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충돌의 장기적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고 결국 양쪽이 대치 중인 한반도에서도 상태가 가일층 긴장될 것이다. 그런데 폭탄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이미 그루지야의 무고한 백성이 고통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루지야 출신의 약 1백만 명이 러시아 영토 안에서 살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광풍이 벌써 일어나기 시작했다.
NL계통에 속하는 분들은 대개 이북 정권을 나름대로 지원하고 있는 중·러 블록에 대해 좀 너그러운 듯하다. 물론 미·일 블록에 비하면 유라시아의 영토 제국형 야수들은 아직 약체이고, 이라크라는 외부 지역의 재식민화를 도모하는 미국의 "웅비"와 달리 주로 영토 내의 민족적·종교적 타자(체첸·위구르 등)의 억압 및 말살이라는 훨씬 더 제한된 과제에 집중할 뿐이다. 즉, 미국과 달리 자국 영토 밖으로 아직도 군사적 팽창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을 긍정시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인 듯하다. 이제 그루지야를 잡아먹어도 된다는 듯한 태세를 갖추는 러시아도 그렇지만, 티베트와 백두산 지구의 "개발"에 힘쓰며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대폭 축소시키고, 차후 이북 영토의 인수인계의 이념적 기반인 "동북공정"까지 진행하는 등 "제국적 발흥"준비를 갖추는 듯한 중국도 미국보다 약체라 해서 좋게 볼 세력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중국은 논할 것도 없지만, "민주"의 외피가 있는 러시아만 해도 그 관헌들이 주민들을 다루는 법(거리에서의 불심검문 등)을 보면 미·일에 비해서도 거의 야만적이라 생각된다. 물론 단-중기적으로 이 "젊은 야수"들이 당장 세계 체제의 주도 세력이 될 수 없겠지만, 차후에는 세계 질서의 재편을 크게 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안위가 심히 걱정된다. 그러기에 국내 언론들이 대체로 무시하고 넘어가지만, 그루지야 소식은 재음미해볼 만한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