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블랙호크 다운 - 넉다운이 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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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호크 다운 - 넉다운이 된 진실
정건
넉다운된 진실〈블랙호크 다운〉은 감독 스스로 인정했듯이 9·11 테러 이후 애국주의 흐름을 타고 박스 오피스의 성공을 노린 전쟁영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 등 이전 영화들에서 보여준 스펙터클과 시각적 이미지를 훨씬 더 발전시켰다. 이 영화에서 그런 재능을 전투의 공포·폭력·혼돈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 육군 최정예 부대 델타 포스 ―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상의 테러 조직 ― 와 레인저 부대가 벌인 군사작전을 다루고 있다.
1993년 10월 3일과 4일, 6백만 달러 짜리 무장헬리콥터 블랙호크 2대가 소말리아 민병대가 쏜 싸구려 로켓 유탄에 맞아 추락했다. 적진에 떨어진 미군과 소말리아인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9명의 미군이 죽고 1천 명이 넘는 소말리아인들이 죽었다. 미국 정부는 깜짝 놀랐고 서둘러 미군을 소말리아에서 철수시켰다.
영화 속에서 이 작전의 총지휘관은 “도시 전체가 그들[미군병사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안달한다. 그러나 도대체 왜 도시 전체가 자기들의 은인이자 보호자를 자처하는 미군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고 기를 쓰고 덤볐을까? 〈블랙호크 다운〉은 아주 교묘하게 이 질문을 피해간다.
오만
영화 전편에서 이 질문은 완벽히 사라졌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이 영화는 편리하게도 미국과 UN의 학살을 망각해 버렸다. 역시 주요 쟁점인 미군 주둔 문제도 소말리아인들이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에 파묻혀 스리슬쩍 넘어간다. 이것은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이 광신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미국의 선동을 떠오르게 한다.
용감한 미군?
〈블랙호크 다운〉은 ‘용감한 미군 병사들’의 신화를 보여준다. 전투가 끝나고 델타 요원은 이 짓을 하는 이유가 오직 “전우애”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영화의 주인공 레인저 하사(조시 하트넷)도 “전우애”를 찬양하는 말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미군 병사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심지어 소말리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사살하다가 총알이 떨어져 그들에게 몰매 맞는 블랙호크기의 조종사마저 동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필사적이다. 원작인 마크 보우든의 책에서는 접할 수 있는,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사격과 학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제작진은 모가디슈 거리에서 군중이 미군 시체들을 질질 끌고 다니는 장면―1993년 10월 4일 오후부터 CNN이 30분 간격으로 계속 방영한 장면―을 영화에선 일부러 생략했음을 인정했다. “너무 충격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좀비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백 명의 소말리아인들이 미군에게 살해되는 장면들은 전혀 “충격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미군과 싸우는 수천 명의 소말리아인들이기 때문이다. 미군 병사들이 느끼는 공포와 비극은 잘 묘사된 반면, 소말리아인들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검은 피부의 살아있는 시체(좀비)들처럼 묘사된다. 〈블랙호크 다운〉은 여느 전쟁영화와 마찬가지로 “적”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실제로 민병대원으로 모가디슈 전투에 참여했던 소말리아인은 영화를 본 뒤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에는 우리 언어, 음악, 문화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 거리와 건물을 카피하고 소말리아인의 호전성을 끝도없이 보여 주었다.”〈블랙호크 다운〉은 “전쟁이 지옥”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이 전쟁이 비록 실패했지만 미국이 벌인 “좋은 전쟁”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 제일의 깡패국가 미국이 “선한 의도”로 “좋은 전쟁”을 벌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는 미군과 소말리아인의 정확한 사망자 수를 대조하는 자막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영화잡지와 평론가들은 대부분 이 영화에 면죄부를 준다. 더 나아가 미국 대외정책을 냉소·비판한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블랙호크 다운〉은 기껏해야 미국의 다른 전쟁 영화들처럼 극우 고립주의자들―팻 뷰캐넌, 제시 헬름스 같은 자들―의 견지에서 점잖게 말할 뿐이다. “미국은 자신의 일에나 신경 써야 한다.” 그러니 “타 국민들의 전쟁에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블랙호크 다운〉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정당화하는 영화다. 반전영화는커녕 워싱턴의 매파들을 비웃는 영화도 아니다. 최근 헐리우드가 내놓은 〈에너미 라인스〉, 〈콜랙트럴 데미지〉처럼 역겨운 인종주의·애국주의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원재
누가 “공공의 적”인가? 최근에 개봉된 영화 ‘공공의 적’을 보면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강력계 형사 강철중은 믿는 거라곤 주먹밖에 없다. 그는 돈 받고 지명수배자를 풀어주고, 마약조직에게서 마약을 훔치며, 피의자들이 허위 자백을 할 때까지 죽도록 패는 등 깡패보다 더한 악당이다. 그러나 가진자들과 권력자들의 뻔한 거짓말과 파렴치한 위선에 분노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강철중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오히려 솔직하고 시원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 그가 영악한 펀드매니저이자 사회의 엘리트인 살인마 조규환을 막무가내로 쫓아다닌다. 잘 나가는 증권사 이사인 조규환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을 쓴다. 그는 식당에서 부딪혀 자기 옷을 더럽힌 사람을 죽이고, 증권에 투자한 돈을 고아원에 보내겠다는 부모를 죽인다. 사실, 형사 강철중과 살인마 조규환은 같은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나 강철중이 조규환을 만나자 악이 선으로 바뀌어 버린다. 조규환이 하루아침에 수백억 원을 벌어들이는 신흥 자본가에다 돈 때문에 부모도 살해하는 패륜아라는 사실은 가진 게 주먹밖에 없는 강철중을 관객의 편으로 만들어 준다.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온갖 게이트의 주범인 정치인, 사장들에 대한 분노가 평소 내면에 깔려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사회의 엘리트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패륜적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공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살인마를 응징하는 악질 형사를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를 안다면 그런 대리만족감은 순식간에 사리질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며 관객들도 ‘나쁜 놈은 죽여야 한다’는 마음이 절로 들도록 다소 선동적인 분위기를 담았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원조교제나 성폭행으로 잡혀들어온 사람들이 아주 말짱하게 경찰에 잡혀오는 것을 보면서 막 화가 났다. 사채업자든 패륜아든 공공의 적은 아예 때려 없애자는 거다. 영국 갔을 때, 길에서 경찰이 몽둥이로 행인 한 명을 죽도록 때리는 걸 봤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들이 맞을 짓을 했다며 웃고 지나가던데, 난 이런 공권력을 기대한다.” 반자본주의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고 민중에게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공공연히 행사하는 경찰에게 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강우석 감독의 선동은 영화를 보면서 느낀 통쾌함을 오싹한 공포로 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