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질주하는 전쟁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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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질주하는 전쟁광들
김인식
끝없는 전쟁. 이것이 조지 W 부시가 바라는 것이다. 1월 29일 국정 연설에서 부시는 이렇게 경고했다. “지금 수천 명의 위험한 킬러들이 살인 방법을 배워 재깍거리는 시한 폭탄처럼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흔히 상습적인 범죄 국가들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뒤이어 부시는 그 “어디”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 북한·이란·이라크. 그는 이들 국가를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이 세 나라의 상호 관련성은 분명치 않다. “축”(axis)이라는 단어는 제2차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 독일, 이탈리아를 적대국으로 규정하며 사용했던 것(이른바 추축국)이다. 부시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즉,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야 만다는 것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국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치는 나라들은 죄다 짓밟고 싶어한다.
부시는 국정 연설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언급하지 않았다. 빈 라덴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시가 그토록 “사살하거나 생포하고” 싶어했던 인물이다. 알카에다 조직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라크·이란·북한으로 이뤄진 “악의 축”을 끄집어 냈다. 미국의 전쟁광들은 부시의 연설에 재빨리 호응했다.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이란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용인했다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은 북한을 공격 대상에 올려 놓았다. 이유는 북한이 미사일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무기 수출액은 북한보다 454배나 많다.(미국 중앙정보국은 북한의 연간 미사일 수출액을 1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전 주한 미 대사였던 제임스 릴리도 파월의 주장에 동조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간교하고 속임수에 능하다. 특히 미국인들을 대할 때 그렇다.” 하고 말했다.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 표적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9월 11일 테러 직후부터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와 전면전을 벌일 구실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부시의 전쟁 몰이는 초당적 합의를 끌어 냈다. 코네티컷 주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조지프 리버먼은 이라크를 끔찍하게 증오한다. 그는 최근에 “바그다드의 사담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는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2월 4일에는 미국과 영국 전투기들이 이라크 북부의 방공망을 맹폭격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에 대한 첫 폭격이었다.
“악의 근원”
미국은 세계 제일의 무기 수출국이다. 그런 미국이 어떻게 이라크 같은 나라들을 비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시가 색출하겠다는 “악의 근원”은 바로 미국 정부에 있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이라크에 대한 경제 봉쇄를 단행해 50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을 죽였다. 이라크 같은 나라들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은 넌센스다. 미국의 군비는 세 나라의 국민총생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러나 부시는 이런 사실에는 아무 관심 없다. 그는 오로지 전쟁의 북소리를 울리는 것에만 관심 있다. 지금 부시 정부는 전쟁 준비에 요란법석을 떨고 있다. 미국 정부는 1천만 달러(1천3백억 원)짜리 TV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광고는 테러리즘과 마약 복용이 서로 관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약 판매 수익이 결국 테러 집단의 수중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이 나라들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은 냉전 시대의 군비를 유지할 명분이 사라졌다. 새로운 명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미국 국방부는 다음의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 군대는 “깡패 국가들”, 즉 북한·이란·이라크에 맞서 두 전장에서 동시에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9월 11일 테러가 일어나기 몇 달 전에 미국은 “윈윈 전략”을 포기했다. 그러나,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미국은 두 군데의 전쟁 자체를 포기했다기보다는 “가능한 한 광범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쟁의 개념을 완전히 수정하고 있다.”따라서 “악의 축”이나 “테러와의 전쟁” 같은 부시의 언사들은 항구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사 계획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9월 11일 테러 훨씬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부시 정부는 국방 예산을 지난해보다 480억 달러(62조 4천억 원)나 더 늘렸다.(올해 미국 국방 예산은 3960억 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514조 8천억 원이다.) 부시는 노동자들이 그 대가를 치르도록 하려 한다. 먼저 직업 훈련과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위한 기금은 대폭 삭감됐다. 부시는 “승리”에 도취돼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해방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줬다고 말했다. 메스껍게도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지금까지 적어도 4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2월 중순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대한 폭격을 재개했다. 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는 잔혹한 지방 군벌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미국 기업주들의 신문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이렇게 보도했다. “잘랄라바드, 칸다하르, 마자르-이-샤리프 같은 주요 도시들은 지금 군벌들과 중무장한 민병대원들의 기지가 됐다. 군벌들의 검문소들이 나라 전체를 갈라 놓았다.”10년 전의 내전이 다시 시작됐다. 카불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시가 말한 전쟁의 목적은 성취되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지도 못했고 죽이지도 못했다. 전쟁은 그 지역에서 더 큰 불안정을 낳았을 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을 자극해,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전쟁 위기가 고조돼 있다. 미국은 이미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고 추정되는 조직들을 상대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 고문단을 필리핀에 파견했다. 필리핀 군대가 아부 샤아프(이슬람주의 게릴라 단체)를 공격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미국은 3만 정의 M16 소총, 8대의 헬리콥터, 해안 경비정, 650명의 요원들, 1억 달러(1300억 원)를 필리핀 군대에 보냈다. 이 모든 것은 1백 명도 안 되는 아부 샤아프를 사냥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동남 아시아에서 예전의 지위를 되찾고 싶어한다. 10년 전에 미국은 수빅 만의 해군 기지와 클라크 공군 기지를 필리핀에 넘겨 줬다. 이제 미국은 그 지역에 다시 군대를 주둔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리 되면 이 지역에서 경제적·군사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 간의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분열의 목소리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하고 말했다. 2월 초에 부시는 1991년 걸프 전쟁 이래 최대 규모 해군 동원을 명령했다. 부시의 함대는 언제든지 예멘·소말리아·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가 전 세계에서 전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하자,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들조차 이를 비난했다. “워싱턴이 억류한 관타나모의 아프가니스탄 포로,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부시의 중동 외교 정책에 대해 유럽연합(EU) 15개국의 여러 지도자들이 세계 유일 강대국을 비판하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 2002년 2월 12일치.) 독일 외무부 차관은 “우리 유럽인들은 이라크와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한 군사 행동에 대해 경고한다” 하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이라크가 테러에 연루돼 있다는 징표나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도 부시의 전쟁 대상 목록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최근에 영국은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영국 외무부 장관이 이란을 공식 방문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부시의 발언은 미국이 지금부터 이란을 이라크와 똑같이 다루겠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위험하면서도 확고하지 않은 증거에 기초한 정책이라는 유럽 정부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힐 것이다.” 하고 논평했다.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독주를 비판했다. 더욱이 “유럽인들은 ─ 특히 프랑스는 ─ 워싱턴이 제출한 역할 분담에 심한 거부 반응(이해할 만한)을 보일 것이다. 미국은 싸우고 유엔은 격려하고 유럽연합은 뒷돈을 대는 세계 전망에 불편한 심기를 느낄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2월 11일치.) 한편, 부시는 한반도의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동맹국 노릇을 했던 중국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비판했다. 러시아의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이란·이라크·북한[에 대한] … ‘악의 축’이라는 낙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대중의 ‘햇볕 정책’은 심각한 모순에 빠졌다. 김대중은 미국과 한나라당의 호전적 압력 ─ “상호주의와 철저한 검증” ─ 과, 아래로부터의 거센 반미 정서에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김대중은 이번에도 대중 운동을 단속하는 식으로 미국과 한나라당의 압력에 타협하고 있다. 그는 “반미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다시 반전 운동을 건설할 때
미국의 다음 공격 대상은 이라크가 될 것 같다. 미국은 애초에 세 나라를 한묶음으로 언급했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이라크를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시간 문제인 듯이 보인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2월 초 뮌헨에서 열렸던 나토 국제안보정책회의에 항의해 1만 명이 모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평화 운동가들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반군국주의 시위를 준비했다. 바이에른 주 정부는 행진을 금지했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주 정부의 금지 명령을 거부했다. 경찰의 가혹한 탄압을 뚫고 나토 회의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였다. 비슷한 시기에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7만 명이 모여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뉴욕에서도 2만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부시는 “자유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9월 11일 이후 부시와 그의 “악의 축” ― 딕 체니, 존 애슈크로프트, 도널드 럼즈펠드 등 ― 은 세계 민중의 자유를 유린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폭격하고 굶주리게 만들었다. 알카에다 포로들을 야만적인 관타나모 포로 수용소에 가뒀다. 미국 내에서는 시민권과 이민자들을 공격했다. 한반도에서는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전 세계에서 전쟁을 벌이려는 미국의 위협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이 반전 운동에 참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