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의 난관에 부딪힌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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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상에서 한국측이 기대한 미국측의 관세장벽 낮추기 문제에서조차 양측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상품 양허안에서 농산물 개방, 자동차 관세 등 세제 개편, 섬유 개방폭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져나왔다.
그럼에도 김종훈은 미국이 상품관세 분야를 70~80퍼센트 개방하기로 한 것을 두고 ‘상당한 성과’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이는 전체 수출액 3백80억 달러 중 7.6퍼센트인 29억 달러(2조 7천5백억 원)에 해당하는 비중일 뿐이다.
반덤핑이나 세이프가드를 다루는 무역 구제에서도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측은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면서 반덤핑을 없애 무역 구제 효과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측 협상단은 이 쟁점을 다룰 권한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미FTA 덕분에 미국 수출이 크게 증대될 것이라던 노무현 정부의 홍보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측이 히든 카드로 갖고 있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도 북한 핵실험 여파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한미FTA의 진정한 목적은 무역 증대 효과보다는 ‘외풍’을 이용한 구조조정에 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 이해영 정책연구단장은 “미국과 한국이 70~80퍼센트의 관세 철폐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사실, 이런 공산품 관세 철폐보다 비관세 장벽에서 뭘 주고 받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측 대표인 웬디 커틀러도 “한국이 한미FTA를 통한 규제완화, 시장개방 등으로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은 지적재산권·투자·전자상거래·경쟁·서비스투자 등의 분야다. 협상 전에 미국측은 인천공항공사 등 5개 공기업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또, 협상 과정에서는 산업은행 등 13개 국책은행의 한미FTA 적용, 우체국 보험과 택배서비스 개방 등 11개 부문의 개방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여론
그러나 여기서도 약간의 ‘가지치기’는 있었지만, 진전된 내용은 거의 없었다.
협상에 진전이 없자 외교통상부가 지적재산권 협상을 조속히 타결짓기 위해 법무부와 특허청의 관련 부처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폭로됐다. 외교통상부는 또, 보건복지부에 다국적 제약회사의 요구를 들어 주라는 권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약값 인상으로 서민들의 부담이 대폭 늘어날 텐데도 말이다.
3차협상에 이어 이번 협상에서도 이른바 ‘성과’가 없었던 첫째 이유는 한미 양국 자본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 때문이다. 공기업의 사기업화, 규제완화 등을 두고 한미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둘째이자 더 중요한 이유는 한미FTA에 대한 한국민들의 반대 여론이다. 10월 30일 현재 범국본으로 취합된 한미FTA 반대 서명자가 85만 명에 이르고, 찬반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이 절반을 넘기도 한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50만 명이 넘는 반대 서명을 받았고, 부산시당은 하루에 5만 명을, 울산시당은 3만 명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측 협상단이 쉽게 양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FTA 반대파들이 이 소동을 벌이는 동안 대통령, 국무총리, 관계 장관, 집권당 대표들은 어디 가서 숨었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 한미FTA 협상은 ‘일반적’ 협상 절차로는 내년 3월까지도 타결되기 힘들 전망이다. 이 때문에 다음 협상에서 빅딜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간첩단’이 한미FTA 반대 운동에 관여했다며 반대 운동의 흠집을 내려는 야비한 공격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미FTA 반대 운동은 양국 민중의 권익을 침해할 한미FTA를 좌절시키기 위해 11월 22일 국민총궐기를 포함해 강력한 운동을 건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