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한 반대를 입증한 제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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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4차협상을 앞두고 노무현 정부나 범국본 모두 관심이 제주로 향했다. 노무현 정부는 9천여 명의 전경을 제주도에 긴급 배치했다. 경찰은 5백여 대의 차량과 헬기 등 각종 장비를 동원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제주해경 소속 경비함정을 이용해 모의 훈련까지 벌였다.
이번 협상에서 감귤도 개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제주도민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또, 범국본 제주본부는 협상장으로 가는 도로 양편에 “한미FTA 반대”가 적힌 노란 팻말을 수천 개나 걸어놓을 만큼 협상 반대 운동을 위해 꼼꼼히 조직했다.
4·3항쟁
10월 23일 협상장 주변 농민 집회에서는 1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모여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원정투쟁단 2천여 명을 포함해 제주도에서 1만 명이 넘는 규모의 인원이 모인 것은 1948년 4·3 항쟁 이래로 처음이었다.
2천여 명의 원정시위대와 1만 명의 제주 농민들이 협상 기간 내내 중문단지를 향해 행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평화적 집회와 시위를 노무현 정부는 폭력으로 가로막았다. 하중근 열사를 살해한 바로 그 시위 진압 경찰들이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시위대들은 입을 모아 “경찰력으로만 유지되는 정부”라며 노무현을 비난했다.
이런 방해와 폭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들은 협상 기간 내내 시위를 벌이면서 한미FTA 반대 목소리를 힘차게 제주에서 울려퍼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