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 다시 찾아온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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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이 돌아왔다. 정부는 “철두철미한 방역”을 약속하며 “안심하라”고 말한다. 철저한 방역 작업을 기자들에게 공개하고, 폐기처분된 닭을 농장주에게 시가로 보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질병 전파를 막는 것보다는 ‘보여 주기’에 더 급급했던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이 조심스레 방역 작업을 하는데, 농장주는 그 옆에서 방역원의 지시에 따라 맨몸으로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병원성 바이러스라는 것이 확인되자 너도 나도 방역작업을 기피하고 있어 주변 농장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WHO와 각종 보건 기구들이 분류해 놓은 것을 보면, 한국은 조류독감을 ‘훌륭히’ 통제하고 있는 극소수 나라 중 하나다. 또, 지금까지는 전 세계에서 2백여 명만이 이 질병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한 폭탄
그러나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할 듯하다. 첫째, 조류독감은 더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질병이 아니다. 2006년 초에 이미 철새의 이동 경로를 따라 아프리카와 유럽, 중동에 조류독감이 도착했다. 이제 아프리카말고도 세계에서 가장 환경이 나쁜 지역들인 아시아·중동·동유럽의 농가와 도시 슬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둘째, 인체 감염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2006년 1~8월 조류독감 감염자 수는 2005년 전체 감염자 수와 맞먹는다. 특히, 지난 9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주에서 조류독감에 걸린 가족들에게서 사람 사이의 전염이 확인됐다.
셋째, 동남아시아·일본·한국의 조류독감 감염자 중에는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런 경우, 검역 체계에 포착되지 않는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지난 2년 동안 전염병의 대유행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가 치료약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고수하고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그 배타적 권리를 지켜준 덕분에 이제 타미플루에 내성을 지닌 바이러스도 등장했다.
인체 감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는 새로운 백신을 약속하고 있지만 저명한 의학 잡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어브 메디신〉최신호에서 몇몇 과학자들은 현재 밝혀진 두 가지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그 중 하나의 세 가지 아군(Subtype)이 모두 생물학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어 백신 개발이 상당히 지연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국·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 정부는 인구의 20~30퍼센트에게 나눠 줄 타미플루를 확보했지만, 가장 발병률이 높은 타이·베트남·인도네시아 등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비싼 약값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한국도 WHO 권고량에 훨씬 못 미치는 2퍼센트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6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대응계획’을 보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신종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할 가능성이 높고 … 외래환자 9백7만여 명, 입원환자 23만여 명, 사망자 5만 4천여 명에 이르는 대재앙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타미플루를 비롯한 각종 의약품의 특허권에 도전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고, 빈민들을 광범하고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전 국민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것만이 최악의 사태를 막을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충돌하는 대책들이다. 조류독감 백신 개발과 저렴한 공급은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기 위한 강령에 포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