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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배틀 로얄

완전 실업자 1천만 명, 등교 거부 학생 80만 명. 가상의 시대 일본 정부는 신세기교육개혁법 ‘배틀로얄’을 제정한다. 이 법률은 전국의 중학교 가운데 한 학급을 무작위로 선택해 무인도에 가두고 1명만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만든다.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열심히 싸워서 가치 있는 어른이 되는 거다.”

이 영화는 2000년 일본에서 개봉돼 신드롬을 낳았다. 일본 정치인들이 히스테리하게 비난을 퍼붓는 바람에 영화가 더 돋보였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것을 정치인들에 대한 항거로 생각했다.” 이 영화를 단지 쇼킹하고 엽기적인 소재를 좇는 선정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배틀 로얄〉은 경쟁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대한 은유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 생존 경쟁 등 약육강식의 경쟁이 지배하는 이 체제가 바로 〈배틀 로얄〉의 세계다. 그리고 전쟁은 최후의 경쟁이다. 모든 경쟁과 살인과 야만이 전쟁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배틀 로얄〉이 보여 주는 학살과 야만의 비극은 모두 전쟁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입시지옥과 경제 위기는 사람들을 자살로 내모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영화에서도 몇몇 아이들은 친구들을 죽이길 거부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배틀 로얄〉의 본부를 공격하려는 ‘게릴라’ 학생들과 “다들 모여서 힘을 합치자”고 호소하는 학생들처럼 반란이나 단결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본부가 투입한 ‘용병’ 학생에게 제거된다.

〈배틀 로얄〉은 우리가 사는 세계처럼 경쟁 그 자체도 불공정하다. 무기는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자동소총을 쥔 학생이 있는 반면 냄비 뚜껑을 든 학생도 있다. 아빠가 부자인 아이들과 실업자의 자식들에게 세상은 출발부터가 불공정하다. 주인공 슈야의 아버지도 실업자였다. 어머니도 가출했고 아버지는 끝내 “슈야, 힘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타고난 킬러처럼 다른 급우들을 살해하는 여학생도 죽는 순간 이렇게 말한다. “난 그저 빼앗는 쪽이 돼보고 싶었어” 겁에 질린 살인과 어처구니없는 죽음 사이로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나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흐른다. ‘레퀴엠’(진혼곡)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장면들은 아이들이 간직한 사연들을 소개한다. 이 장면들은 비극을 더 극대화하면서도 비극의 원인을 결코 아이들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는 아니다. 결말도 여러모로 엉성하다. 현실에서 누가 우리에게 〈배틀 로얄〉의 규칙을 강요하는지,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등 영화에 없는 해답들은 이 잡지의 다른 기사들이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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